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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2014, 9, 7
빌4 : 16-20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의 유례는 영국에 살던 청교도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독일로 이주해 갔다가 거기서도 여의치 않자 다시 미국의 신천지로 이주해 갔습니다.
그들이 함께 농사를 지어 그해 가을에 곡식을 추수했는데 그 양이 너무나 턱없이 적은 량이라 모두 앉아서 낙담하고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추수한 곡식으로는 한 해 동안 먹고 살기 너무나 부족한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낙심되어 침묵하고 앉아 있을 때 한 청년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굶기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를 먹이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먹이실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 신천지까지 온 우리들이 한해 추수한 곡식이 적다고해서 낙심하고 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1년을 먹기에는 아주 부족한 양을 추수했지만 이 곡식의 1/10을 하나님께 드려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그해 농사지은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면서 찬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추수 감사 주일의 유례입니다.
우리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한 너희가 내 앞에 나올 때에는 빈손으로 오지 말라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일 뿐 아니라 우리가 감사헌금과 각종 헌금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거할 곳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십일조와 건축헌금 그리고 감사헌금 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물질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이런 물질들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재물로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여러분들의 쓸 것을 채워 주시리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받으십니다.
우리 교회 재정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넓히면서 아직도 일억 이천의 빚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내 마음에 항상 부담으로 있습니다.
우리 전 성도가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드려서 그 동안 많이 갚았습니다.
그런데 작정헌금에는 상환기간인 5년 동안의 이자도 계산에 넣지 않았고 또 교회 인테리어 값도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작정하고 교회를 그만 둔 분도 계시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현재 이자만 해서 매월 22일에 60만원 정도 나갑니다.
그래서 이자만 아니라 원금도 조금씩이라도 갚아 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마음에 와 닿은 대로 건축헌금을 책정하시고 우리 같이 조금씩 짐을 나누어 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짐을 지신 만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학개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학개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을 짓다가 그만둔 그 성전을 다시 건축을 시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면서 성전을 지으라 하시면 그리하면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을 가죽과 금과 은과 놋과 보석을 가져오라고 가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그들이 가진 금과 은과 보석과 좋은 가죽을 넘치도록 많은 양을 가져왔기 때문에 모세가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필요한 것을 그들은 마음을 다해서 넘치도록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드리는 곳은 특별히 마음을 쓰고 계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순종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물질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필요 때문에 너희에게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가 하나님 앞에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에게 풍성한 물질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의 의의 열매를 위해서 물질을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물질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재물이라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말을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로 우리들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7-8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도 풍성하게 하여 너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금석이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는 대로 그대로 하십시오.
물질 때문에 시험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물질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13절까지의 말씀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는냐?
너희가 만일 남에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는냐?” 하실 때의 참된 것은 “영적인 것 혹은 하늘에 것”을 의미합니다.
재물에 충성하지 앉는 사람은 하늘의 것이여 영적인 것을 받지 못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뒤로 돌아서면 곧 잊어버릴 수 있는 말씀입니까?
물질은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것 즉 영적인 것을 얻지 못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분들은 믿음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또 “너희가 만일 남에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남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하실 때의 “너희의 것”은 우리가 가진 물질로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것으로 예비 되었던 것을 얻지 못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난주와 이 번 주 큐티 시간에 히브리서를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이 부분은 볼 때마다 내게 충격을 주는 말씀이요, 나를 다시 한 번 각성 시키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주 동안 내내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큐티는 하는 집사님들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3장 7절-8절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였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조상들이 40년 동안이나 나의 행사를 보았으나 그들의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그들에게 맹세하여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노예로서 종살이 할 때 그들의 너무나 힘든 노역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께 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 애급의 바로 왕과 그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10가지 재앙으로 큰 위협을 보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여 보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나라 전체가 큰 위협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들이 애급에서 나와 광야 길로 가는 길에 큰 홍해가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 홍해바다를 가리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홍해바다를 가리키자 홍해물이 갈라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수 있는 길을 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다 건너고 뒤 따라 오던 애급 군사들은 다시 흐르는 홍해 물에 매몰되어 모두 다 몰사하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선창에 따라 소고치고 뛰면서 하나님의 찬양했습니다.
그 때 그들이 노래하고 뛰기 때문에 땅이 울리고 진동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따라 3일 동안을 신광야 길을 갔지만 물을 만나지 못했고, 마라에 도착해서 겨우 물을 찾았지만 그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는 물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우리가 물이 없어서 죽게 되었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우물곁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해서 마라의 그 쓴 말이 모든 백성들이 마실 수 있는 단 물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온 양식이 떨어지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먹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늘에서 내린 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에만 내린 하늘에서 내린 양식이었습니다.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던 하늘에서 내린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을 이렇게 하늘에서 내리시는 신비한 양식으로 먹이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간 신광야 길은 낮이면 뜨거운 햇볕으로 길을 갈 수가 없고 밤이면 또 갑자기 추워져서 활동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낮이면 뜨거운 햇볕을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 인도하셨고, 밤이면 갑자기 날씨가 춥기 때문에 불기둥으로 그들의 추위로부터 보호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 때 메추라기 떼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 하셨고 광야 길을 가던 중에 물이 없는 곳에서는 모세로 하여금 바위를 지팡이로 쳐서 그 바위에서 신선한 물이 나오게 해서 사람들과 짐승들이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광야길을 가면서 길이 험하다고 불평하고 자기들이 먹고 싶은 음식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광야에서 불뱀을 보내서 불평하는 백성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 광야의 불뱀의 독은 약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야 그들이 회개하고 모세에게 구해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리로 뱀의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높이 세우라 하시고 누구든지 뱀에 물린 자는 나와서 장대의 구리 뱀을 보는 자마다 살리라 하셨습니다.
뱀에 물린 자들은 모세가 세운 그 구리 뱀을 보고 불뱀의 무서운 독에서 벗어나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광야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언제나 먹을 것과 육신이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없으면 불평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요단강 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었는데 40일 만에 그들이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땅에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벽은 크고 튼튼하고 견고하며 그들은 잘 훈련된 군사들이요, 그들은 키가 장대하여 우리들은 그들에 비한다면 메뚜기 같다고 하며 우리가 그 성에 들어가면 그들에게 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그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성을 얻고 그 땅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백성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은 듣지 않고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울고 또 밤새도록 울면서 우리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매장지로 삼으려하느냐 차라리 우리가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났겠다 하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 가나안 문턱까지 와서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유해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는 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 왔습니다.
아마 역사 이래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그들만큼 분명한 많은 경험을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또 그들만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문턱에 와서 믿음이 없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평하고 모세를 불평하면서 울다가 다시 광야로 나와서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처럼 하나님을 많이 경험한 그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했단 말입니까?
그들은 광야를 건너는 동안 계속해서 자기들의 육신의 것만 생각하고 육신의 것만 하나님께 구하고 찾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반드시 배워야할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언제나 육신의 것만 생각하고 육신이 것만 좇고 육신을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교훈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역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말씀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내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중심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이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 순종하는 주님 중심의 순종하는 삶이 아니고, 아직도 육신 중심의 내 유익을 위한 삶이라면 우리의 신앙을 다시 뒤 돌아 보아야 합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정욕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들이라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까지 가장 어려운 것은 정욕과 탐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유병언이를 보십시오.
그는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사람입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 나오는 매스컴에 보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말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탐욕적인 생활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복음은 잘 알고 있었지만 돈에 대한 탐욕에 언제나 미혹되어 살았고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 같습니다.
나는 이를 보면서 크게 경각심을 같습니다.
요즈음 내 가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말씀은 히브리서 3장 7-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였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또 믿는다 할지라도 육신이 언제나 우리를 주장하고 언제나 육신의 정욕과 탐욕에 미혹되어 끌려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고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보다 더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편 24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참 모습을 시편 24편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찾고 주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이 신앙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