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사역교안 2024.10.16(수)
제 목 : 용서, 끝까지 용서 하라.
본 문 : 마1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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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용서하라’ 라는 히브리어 용어인 ‘쏠리하’, ‘나사’, ‘키페르’ 등은 다같이 ‘죄를 사하여 주다’, ‘깨끗하게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로는 ‘아페시스’, ‘아페어미’ 등은 각각 ‘범죄에 대하여 너그럽게 봐주다’, ‘부채에서 풀어 주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용서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것인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용서라는 말을 이해할 때 그저 한 두 번 타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정도의 미덕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용서하되 끝까지 용서해 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죄 한 자에 대해 우리가 왜 그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Ⅱ. 내 용
1. 왜 끝까지 용서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1) 딤전1:13~15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❶사람마다 용서가 좋은 것인 줄을 알면서도, 실제로 용서를 실천하는 일은 무척 어렵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니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❷그러나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그런 큰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면 이제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❸이런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빚진 동관의 비유를 들려 주셨습니다(23~35절).
❹주인으로부터 큰 빚을 탕감 받아 살아 난 종이 자기에게 그보다는 훨씬 적은 빚을 진 동관을 잡아다가 윽박질러 감옥에 가두는 일은 어불 성설입니다(30절).
❺그런데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받은 자들이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2) 용서를 통해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마18:21~22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물었다. 주님, 형제가 제게 죄를 지었을 경우에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라.”
❶흔히 우리는 말하기를 보통 사람은 한 번도 남을 용서하기가 어렵고, 덕을 훌륭하게 닦은 사람은 세 번 정도까지 용서 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❷이렇게 보면 베드로가 말했던 일곱 번 정도의 용서는 진정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❸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횟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한히 용서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❹즉,‘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라는 말씀은 490번이라는 정확한 수치상의 횟수가 아니라 무한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❺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백 번이라도 남을 용서하고 천만 번이라도 용서를 청하거든 그를 기꺼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❻그 이유는 충심어린 우리의 용서 행위를 통해 우리 중심에 계신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가 전달됨으로써 그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서 만 달란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❶ 첫째로, 종이 주인에게 만 달란트를 빚졌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도 갚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❷주인이 종에게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거저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의 종의 간청을 듣고는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주셨습니다.
❸둘째로, 27절에 보면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라고 하였습니다.
❹이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순수한 용서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❺반면 데나리온이란 로마의 은전으로 보통 근로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의 돈입니다. 한 달란트는 최소 60데나리온에서 최대 만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봅니다.
❻따라서 본문에서의 만 달란트와 100데나리온의 비율은 최소 6,000배에서 최대 100만 배에 이르는 것입니다.
❼그러니까 본문의 비유 속에서의 악한 종은 최소한의 비율로 말하자면 자기는 100억 원을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단돈 1만 원 빚진 동료를 옥에 갇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과 한 몸,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1) 엡1:21~22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❶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22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비유한 것입니다.
❷‘머리’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며, 교회의 주인이 되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❸교회는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대항할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❹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백성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다스리실 때 힘이 아닌 사랑과 온유, 거룩함으로 통치하십니다.
❺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영적 몸인 이웃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용서’ 하지 않고는 한 몸을 이루 수 없습니다.
❻머리 되시는 주님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절)
Ⅲ. 적 용
1. 용 서
1) 64번과 65번중학교에 입학하여 우연히 65번인 내 짝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내 짝은 반에서 힘깨나 쓰는 녀석이었기에 약간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어 냅다 주먹을 몇 번 날렸습니다. 65번은 맞더니 당황해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인지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솔직히 전 몹시 떨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보나마나 맞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어떻게 수업 40여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종이 울리자 65번은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난 속으로 “난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더군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의외였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전 맞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어른이 된 지금도 내 마음에 분이 가득하고 억울함을 느낄 때면 65번이 생각납니다. 그때 65번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상처 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던 짝의 그 용기가 부럽기만 합니다.
Ⅳ. 결 론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