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군사박물관
군사박물관 입구
앵발리드 Invalides란 부상군인을 뜻한다고 합니다
루이 14세 때 앵발리드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군사박물관 입니다
양쪽 건물에 군사박물관이 있고, 첨탑 돔 아래 나폴레옹과 유명 인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군사 박물관답게,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복자 나폴레옹의 동상이 건물 가운데 있습니다
실패한 정복자이긴 해도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전략가 였습니다
박물관 안에는, 근세까지의 주요한 프랑스 군 장비들이
방대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중무장한 기마병
철갑옷
적을 제압하는 무기 개발에 있어
서양이 동양보더 훨씬 더 지능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찍부터 저런 대포를 가지고 전쟁에 단련된 후
관심을 밖으로 돌렸으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을 보고 반대편 출구로 나오면, 돔 성당의 입구가 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 그리스도상 앞
지하 1층에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습니다
여신들이 둥글게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형상입니다
자연채광인 듯 했는데, 찬란한 황금빛이 비치는 성당이었습니다
천장 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1769.8.15 ~ 18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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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날 유럽 대부분 나라들을
자신의 영향력아래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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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란 말은
삶에 있어 불굴의 태도 그 자체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 아래 사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도전이란 명목하에 대단한 희생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796년 이탈리아 원정 에서부터
1815년 위터루 전쟁에서 패하여 유배될 때까지
약 20년간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나폴레옹으로 인하여
매년 전쟁위협에 시달렸거나
그와 직접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상대국이 그럴 정도면, 그 긴 세월 전쟁에 동원된
프랑스사람들은 죽어야 끝나는 도전을 계속 요구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야망이 넘친 황제 그 자신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으므로.
그가 태어난 코르시카 섬과
1814년 對佛동맹 연합국에 패한뒤 유배된 엘바섬
나폴레옹이 16세때 졸업한 프랑스 군사 사관학교 Ecole Militaire
군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여, 27세때 사단장이 되었답니다
그가 황제시절 (1804 ~ 1814) 머물렀던 '퐁텐블로' 궁전
궁전내부 회랑
궁전 도서관
퐁텐블로 궁전의 나폴레옹 침실
1815년 워터루 전쟁에서 패한 후,
나폴레옹이 유배된 남대서양 한가운데 세인트 헬레나섬
)
(아래부터는 인터넷 사진을 참조했습니다 세인트 헬레나 Saint Helena 섬 그의 유배지 '롱우드' 지역
오늘날 프랑스에서 비행기로도 10시간 남짓 소요되는 절해고도라
이곳을 배로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유배된 롱우드의 주택
유배주택 내부 식당
단장되어 깔끔한 모습이지만, 퐁텐블로 궁전에서 생활하다
이런 곳에 머물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식탁에 앉은 그의 모습
당구장
유배되어 당구나 치며 놀아라 했겠지만, 당구 칠 마음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야전용 침대 같은 그의 침구
그는 유배된지 6년만인 1821년, 52세때 이방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패전국의 전범이었으므로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후 그가 묻혔던 롱우드 유배지 인근의 묘터 프랑스 정부는 1840년 영국의 동의를 얻어
나폴레옹의 유해를 세인트 헬레나 이곳에서 파리 앵발리드로 안치하였습니다
그의 두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와 아들 '프랑수아 조제프'
그의 아들은 21세로 단명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외모를 많이 닮은 듯 합니다
나폴레옹 상 (루브르 박물관)
실패한 비운의 정복자이긴해도
나폴레옹은 어린 남자애의 꿈을 키우는 데는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습니다
사회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황제의 자리에 까지 올랐고
국가 자원을 조직화하여 그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놀라운 리더쉽과
특히,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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