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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디모데전서 3:8~13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의 동료 사역자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지켜갈 목회 지침을 쓴 편지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디모데전서 3장 1~7절까지에 나온 교회 감독의 직분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오늘 저녁에는 교회의 집사 직분자들의 신앙과 인격의 자격 조건들을 살펴보고 그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이 얻는 보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집사 제도가 기독교회에서 처음 등장한 계기는 사도행전 6장입니다. 거기에 보면 예루살렘에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간에 구제 문제로 원망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동안 사도들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 기도하는 일, 다스리는 일 등을 감당할 뿐 아니라 구제하는 일까지 겸하여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소홀하게 된 부분에서 불만이 터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상의한 끝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정하고 구제하는 일을 맡아서 충성스럽게 감당할 일꾼들을 성도들 중에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교인들 중에 성령과 지헤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일곱 사람을 택하여 성도들 중에 어려운 이들에게 구제 물품을 전달할 충성스러운 일꾼 일곱을 성도들의 추천을 받아 안수하여 세웠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님도 있고 사마리아 전도에 큰 역할을 감당한 빌립 집사님도 있습니다. 이처럼 집사들은 교회의 재정 출납을 담당하며 구제 등 사도들을 도와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썼던 빌립보서 편지의 서두에 보면 집사 제도가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1~2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감독들 곧 교회의 주의 종들이 있고 그들을 돕는 분들로서 집사님들이 당시에 교회들마다 직분자로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 지역에 교회들을 세울 때마다 교회의 지도자들로 장로들 혹은 감독들을 세우고 또한 그들을 돕기 위하여 집사들도 세우고 떠나곤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감독 혹은 장로 오늘날로 말하면 주의 종들과 치리하는 장로님들과 그들을 돕는 집사님들이 교회를 섬기는 중요한 직분자들로 초대 교회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권사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것은 디모데전서 5장에서 나오는 참 과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직분자들과 일맥 상통합니다. 그것은 디모데전서 5장을 강해할 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집사의 직분자들은 어떤 분들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도의 지침을 담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로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6가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집사의 직분을 맡을 자는 정중해야 합니다.
8절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라고 말씀하는데, ‘정중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셈노스’는 ‘존경할 만한, 공경할 만한, 귀한, 진지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귀족처럼, 왕족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자태가 그 말과 행동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집사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왕궁을 맡아 잘 관리하는 일꾼이므로, 그 행동이나 태도나 정중하고 고상하고 진지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말과 행실을 가진 사람이 집사의 직분을 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귀한 말씀입니다. 집사님들은 하나님 나라를 대표한다 할 것입니다.
또한 집사는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구이언’이란 영어로는 ‘two-language’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일구이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이 사람에게 하는 말과 저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은 집사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말의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말이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집사는 술에 인박이지 아니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술에 인박이지 아니한 자’를 원어대로 해석하면, ‘포도주에 많이 관심을 갖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술을 항상 마음에 두고 습관적으로 술을 찾는 자는 집사로서 자격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감독의 자격 조건에서도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고 이미 사도가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인이 박힌 것 곧 술 중독자만 아니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당시 포도주는 물이 없는 지역에서 물 대신 마시는 음료수였고 디모데전서 5:23 말씀에서처럼 “위장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로 사용되는 용도로 쓴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물도 많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음료수가 수없이 개발되어 있고 몸이 아플 때 먹을 수 있는 약도 수없이 있는 마당에 굳이 포도주와 술을 찾는 것은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 술을 찾는 것은 술에 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감옥에서 써 보낸 편지에 이렇게 분명히 밝혔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이 말씀의 경고대로 취하려고 마시는 술은 방탕한 것입니다. 방탕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9,10 말씀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주 중독으로 고생하던 분들 중에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맑은 정신으로 주 예수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습니다만, 계속하여 술을 즐기는 방탕한 삶을 지속하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술에 대하여 성경에서 끊임없이 경고 있음을 기억하고 이를 멀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또한 집사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더러운 이’라는 말은 ‘아이스크로-케르데스’라는 말인데, 이는 ‘부끄러운 이익’이라는 말입니다. 더러운 이득을 좋아하는 것이 바로 ‘더러운 이를 탐하는 행위입니다. 집사가 되는 사람은 깨끗한 이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돈 문제에 있어서 당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장사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집사 직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술 장사를 한다거나 조직폭력배와 연루된 일을 한다거나 세금 포탈을 하는 일들을 통하여 이득을 얻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집사 직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돈을 사랑하여 연보에서 돈을 훔치며 예수님도 은 30량에 팔어넘기는 악을 행했습니다. 교회의 집사는 돈에 있어서 깨끗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일하여 깨끗한 이익을 얻는 자라야 합니다.
또한 집사는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집사는 교회에서 재정 출납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 마음이 정직해야 합니다. 그 양심이 깨끗해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보냄을 받아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을 짊어지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이 모든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해방되어서 구원받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는 이 놀라운 소식이 바로 복음 진리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이 분명히 그 심령에 있어서 합니다. 이렇게 양심이 깨끗하고 복음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자라야 하나님의 집에서 집사로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둘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하나님의 집을 맡아 섬기는 집사로서 부적격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깨끗하지 아니하면 결국은 탈이 납니다. 주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비밀을 갖고 있지 않아도 탈이 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임이요 영혼 구원을 위한 조직이기 때문에, 세상 조직과는 존재 이유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적인 상황에서 믿음의 비밀이 있는 교회 일꾼일 때만이 수긍할 수 있는 결정의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탈이 나거나 믿음의 비밀이 그 속에 없을 때에는 교회가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디모데가 사역하고 있던 에베소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디모데전서 1:19,20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양심이 망가진 사람, 옳고 그름과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한 판단 기능이 마비되어 이기적이고 이중적이고 표리부동하고 탐욕스럽고 독선적이고 다른 이들을 속이고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사람들이 교회에 직분자가 되면 큰일납니다. 또한 믿음의 비밀이 없는 사람 곧 사도들이 보고 들었던 대로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 진리를 믿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판단과 인간적인 철학과 종교적 지식을 가지고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이 교회의 직분자가 되면 교회는 풍지박산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내면 인격을 잘 살펴서 정직하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깨끗하며 양심이 살아 있으며 사도들이 전해준 성경적 진리를 그대로 믿고 그 진리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그 복음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각오가 있는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을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아멘.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조건이 붙습니다. 그것은 시험을 해본 후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시험한다’라고 했으니, 일정 기간 그 사람을 검증해보는 기간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검증하는 기간 동안에 하자를 발견할 수 없을 때에야 일을 맡겨 집사의 직분을 감당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독의 자격에서도 새로 입교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의 깊게 신중하게 살펴서 하나님의 집의 일꾼으로 적절한지 검증한 후에 세우라는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에베소 교회에서 현재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도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3년 기간 동안에는 열심을 다하고 충성스럽게 보였던 일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그곳을 떠난 후에 시간이 얼마 동안 흐르자 그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면서 교만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교리적으로도 사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이미 부활이 지나갔다는 식의 말을 감히 할 정도로 그들은 크게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비록 완전할 수는 없지만 늘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믿으면 안됩니다. 우리 자신을 항상 쳐서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변질될까 늘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사모하는 선한 마음도 있어야 하지만, 야고보 선생이 가르친 말씀 곧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야고보서 3;1)
말씀을 명심합시다. 정말 직분 받기를 두려워하며 울면서 사양하였던 모세와 같은 겸손함을 갖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항상 넘어질까 두려워하면서 직분을 맡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받은 직분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일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제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여기서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이 여자들이 집사 직분을 받을 자의 아내인지, 아니면 여자 집사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라는 단어가 8절에 사용된 것처럼 여기서 언급되는 ‘여자들’ 역시 분명히 교회에서 일정한 사역을 감당하는 직분자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비록 남자 집사님들처럼 임명을 받지는 않는다치더라도 남자 집사님들이 감당하는 사역들 중에 여자들이 감당해야 할 부분을 맡아서 동일한 일을 처리하는 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 집사님들과 함께 재정 출납을 함께 하면서 과부 성도들을 돕는 일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이분들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여자 집사님이라고 불리지 않았을지라도 그런 분들을 여기서 언급한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섬기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 여자 직분자들 역시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남자 집사님들처럼 정숙해야 합니다. ‘정숙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아까 남자 집사님들이 ‘정중해야 한다’는 8절 말씀에서 나오는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 일을 감당하는 여자 직분자 역시 품위가 있고 하나님 집을 맡아 섬기는 성스러운 일꾼의 자태가 있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진실하고 품격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자 직분자는 모함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원어로 보면 뚜렷한 이 ‘모함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불로스’로서 마귀, 참소자를 가리킵니다. 마귀는 입만 열면 남을 모함하고 중상 모략하고 이간질을 하는데, 절대 그렇게 마귀 노릇처럼 남을 비방하고 입방아를 하며 이간질을 하는 사람을 세워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모든 일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재정 출납하며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이 여자분들은 특별히 그 일에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그 집의 사정을 다 알고 사람들을 볼보는 일은 많은 말거리가 나올 수도 있고 그 일을 신실하게 해야 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믿음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도가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신실해야 합니다. 믿음직스러워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는 다시 남자 집사직의 조건으로 돌아가서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언급합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교회의 감독이나 집사나 다 교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에 가정 생활에서 아름다운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들 역시 이처럼 가정을 잘 돌보며 책임감 있게 섬기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 집사님이나 여자 집사님이나 삶의 귀중한 사명의 자리인 가정에서 충성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갈 때 덕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성도들 중에서 남자 집사나 여자 집사로서 임명을 받은 자들은 교회에서 섬기도록 봉사의 일로 부름받았는데, 그렇게 하나님의 집을 섬긴다고 해서 세상적인 보수가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집사로서 헌신 봉사할 때 하나님은 알아주십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은 알아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상해주신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맡은 집사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헌신하여 잘 감당할진대 어떤 은혜와 보상이 주어지느냐면 두 가지를 사도가 말씀합니다.
한 가지는 아름다운 지위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위’라는 헬라어 단어는 ‘바스모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계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층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초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잘 감당한 자에게 더 아름다운 지위를 주신다고 한 계단 더 높여주신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여러 비유 중에 이르신 말씀과 상통합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누가복음 19:17)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교회를 위하여 성도님들을 섬기도록 애쓴 모든 수고를 주님은 알아주시고 반드시 보상하시되 더 아름다운 지위를 주시고 장차 지극히 아름다운 하늘의 면류관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또한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자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담력’이란 ‘파르레시아’라는 단어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리킵니다. 집사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성도는 믿음이 담대해져서 주님 앞에 구할 때에 자유롭게 담대하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충성스러운 자기 집의 종들에게 그 구하는 바를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듯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은 지극히 고상하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지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 교회의 집사 직분, 권사 직분, 장로의 직분, 주의 종의 직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집을 우리가 묵묵히 잘 섬기면, 장차 주님 앞에 우리들은 세상 임금의 영광보다 더 아름다운 지위를 얻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구하는 것들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들어주시고 우리의 집들을 아름답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고귀한 교회의 직분들을 소중히 여기고 부르심받은 자리, 부르심의 섬김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봉사 잘 하다가 주님 뵙는 저희 모두가 됩시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