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도토리 풍년이다.
산책길이든 자전거 길이든
산 기슭으로 인접한 도로 위에도
도토리 나무 밑에는
가을 열매가 여기 저기 뒹군다.
버리기 아까워, 옛날 웅호에게 보냈던 편지를 기억하면서
다시 주워서
묵을 만들었다.
그때는 너무도 많이 만들어(두 푸대) 여기 저기 나누어 주고
먹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주 작게
한 박아치 분량만 주워서
껍질을 까고, 물에 3일 동안 불여서
믹서기 에 갈아서
약짜는 명주 보로 힘껏 짠 다음에
밤을 지낸 다음에
살포시 침전된 것만 남기고
위에 분리된 까만 물을 버리고서
다시 맑은 물을 남아 있는 것의
두배정도 다시 붓고
소금과 마지막에 한 숫갈의 참기름을 넣엇
뜸을 들이고 나서
예쁘 그릇에 부었더니
참 맛있는 도토리 묵이 되었다.
일 주일 내내 먹었다.
다음은 웅호에게 보낸 도토리 묵 이야기 이다.
함께 나누면서, 삶의 지혜를 다시 기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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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와 벌레
(부제: 좋은 열매와 때)
참 오랜만에 묵상을 나눈다
몇 년 전에,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한 주 동안 살면서 만났던 하나님을
사이버 세계에서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올 해는 이렇다 할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가을 산은 온통 열매로 가득 차 있다.
도토리, 밤, 은행, ....
늘, 점심을 먹고 나면, 사무실 뒷편 보덕봉을 오르던 습관대로 오른다
추석이 다가오는 주일에, 우연히 산 기슭 아래에 있는 온실 뒷편을 갔었는데
그곳에 한 바구니의 도토리가 쌓여 있었다.
불현듯, 돌아가신 고모님이 생각났다.
늘, 추석이나 설날에, 성묘길에 봉림 뒷골 고모님 댁을 찾으면
반가운 얼굴과 넉넉한 손으로 손수 빗어 만든
메밀묵과 도토리 묵을 내 오곤 하셨다.
처음 어렸을 때는, 묵 맛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커서, 객지에 나가 선술집에서 묵을 먹기 시작하면서...
고향의 고모님의 묵 맛의 진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 도토리를 주워다 추석 때에, 도토리 묵을
만들어 달라고 어머니께 부탁을 해 보자!
이런 마음에 도토리를 줍고, 인터넷에 들어가
도토리 묵을 만드는 것을 찾아 보니,
의외로 도토리 묵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부탁하는 것 보다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2주 정도 도토리를 부지런히 주워 모았다.
주으면서 다람쥐 밥을 빼앗아 먹는 느낌이 들곤 하였지만, 그래도 풍성하게 도토리가 많았다.
다람쥐랑 나랑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면서 나누어 먹는 기분으로 주워서 모았다.
포도박스로 한 상자를 가득 모았는데, 이것을 까서 물에 불려서 가루를 만들어 녹말물을 내어,
묵을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 인터넷의 친절한 조리표 때문에 그런대로 묵을 만들어서 여기 저기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도토리 묵을 만들면서, 느꼈던 점은
도토리나 밤에 벌레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백개가 넘는 천여개를 하나씩 하나씩 골라서 껍질을 벗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토리 하나 하나를 고르면서 알게 된것은,
도토리의 색깔이 선명하고 윤기가 있는 것이 좋은 도토리로, 벌레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열매가 맺힐 때, 그 안에 곤충들이 알을 낳아, 자연스럽게 벌레의 먹이가 되도록 하였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어떤 점에서, 이것이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벌레가 없는 것이 좋다.
그 좋은 열매를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은, 도토리에 구멍이 없으면서, 색깔이 선명하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그 안에 벌레가 없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50 이 넘은 나의 얼굴은 세수하고 나면 꺼칠하다
그래서, 늘상, 처자는 세수하고 나서, 화장품을 바르라고 일러 준다.
그러나, 50년 동안 바르지 않는 습관 때문에, 세수하고 나서, 로션이나 크림을 얼굴에 찍어 바르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다.
그런데, 좋은 도토리를 고르면서 알게된, 열매의 색깔과 윤기의 의미를 내 자신에게 적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안에 상처와 고통과 죄악으로 멍들어 있어서,
나의 얼굴이 지난 50년의 삶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위선적일지라도,
색깔이 곱도록하고 윤기를 내도록 노력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관점으로 벌레들을 생각해 보았다....
어느 정도 어른 벌레가 된 것들이
밤 이나 도토리의 딱딱한 껍질을 구멍내고 밖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이들이 왜 밖으로 나오나, 먹이가 떨어져서 그러나 생각 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며칠동안 관찰해 보니, 또 다른 먹이를 찾아서,
도토리나 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들은 아기 벌레에서
어느 정도 커서, 이제 어른 벌레가 되어서
땅 속으로 겨울을 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으로 생각되었다.
만약에, 내가 주운 도토리나, 밤이 그대로
산 속에 있었다면, 지금 쯤, 밖으로 나온
제법 큰 벌레들은 땅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 지새우고, 다음 해에, 또 다른 성충으로 자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자...
내 안에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미물도
자기의 때를 알아서,
도토리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데...
왜, 우리 인간들은
자기의 때를 분별하지 못할까?
나의 때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도토리 안에서, 주어진 먹이를 먹으면서, 그안에서 자라면서,
그 안에서 편안한 세계를 만들면서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
나의 다음 세상은 어떤 것일까?
미물인 벌레도,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본능에 따라, 밖으로 나왔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정리한다....
2009. 10.19
첫댓글 난 도토리 주워다가 물에 일주일 넘게 담가놨다가 말리는데 어느날 깜짝 놀랬다. 밖에 벌레들이 우글우글거리는거야. 그렇게 오래 담가놨는데도 살아있는걸 보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기가 막히더라고. 난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빻을려고 생각하는데 베드로처럼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구만. 좋은 정보에 감사하네
난 기다리고 있다오.
도토리묵 먹을날을~~~
@박복순 그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면 나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아주 어린 추운 겨울 어느날 , 메밀묵~~~~! 하고 "따뜻한 두유"사려 외치는 가난스런 추억의 외침이 들리는 건 메밀묵과 도토리 그리고 상수리 의 연상작용이 두유처럼 우리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넉넉한 가을을 기대해 본다.
역시, 니는 살림꾼이구나... 글 속에서, 정보를 깨 내다니 ^^
근디, '정보' 라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
(일하면서 너무도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서 그런가 ^^)
요즘은 도토리묵을 제대로 먹어 본적이 없어.
어딜가서 먹어도 예전의 엄마가 만들어주신 그 향과 맛이 안 나더라구.
그런데 베드로가 직접 주워서 만든 완성작은 얘기만 들어도 침이 넘어간다. 아! 막걸리는 당연 마셔야지!
베드로야!
그대는 산으로 가야겠다.
지리산 자락으로 가서 산장이나 하면 어떨까?
산 한바퀴 휘잉 두루고 내려와서
장작불에 도토리묵 쓰고.
이마에 땀 닦아 내면서 장작 패고.
산 짐승들과 남은 먹거리 나워먹고!
봉식이 베드로가 아닌 산주리로 남아 있을 때 지리산에서 불렀던 노래말 "천왕봉 높은 자락 남녘 땅을 감아 돌고 사월초라 외로운 달 칠선골에 비출~때 사랑 미움 다버리고 산을 찾던 나의 벗아 지금은 어느 곳에 깊은 꿈이 되었나".사람의 느낌은 엇 비슷하나 보다.곡은 선구자에 그 가사만 얹어 놓으면 되고, 노고단의 털보아저씨처럼-- .산행을 마치고 도토리묵에 거시기 한잔이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것제!!
@woonghokim 웅호야 잼없는 미국에서 살지말고 천왕봉 자락에 황토방 하나 짓고 봉시기랑 도토리묵 만들어라. ㅎㅎ
넘 높은곳에 말고.
친구들중에 산 사람 한명쯤 있으면 참 좋겠구만!
니는 우째 그렇게 사람 맴을 확 꿰뚫어 보고 있다냐 ^^
그렇제... 시를 쓴 사람들은
뭣보다 사물 뒷편에 있는 의미를 확 잡아 채는
그 뭔가가 있것제 ^^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자연과 함께 사계절을 느끼는
너무도 좋은 대한민국이 좋~~~타 ^^
산을 향했던 그리움이
이제는 사람으로 향하고 있응께...
^^
그래도, 나는 산과 강과 자연이 넘 좋은것은 사실이여 ^^
그래
이제야 비로소 봉시기의 글을 읽는 감동을 맛 보는구나
넓은 도화지에 진솔한 이야기를 맘껏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도 긴글은 낱장에는 쓰지말고 김제평야 같이 넓은 글쓰기란에 써다오
글쓰기란/ 그 곳의 낙서는 그래도 거기가 소통의 장소임을, 넉넉한 너의 맴으로 이해해 주길 ----
김제평야 ^^
야
갑자기, 김제평야를 뙤약볕에 걸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글을 크고 넓은 히말라야를 바라 본 그 눈으로
봐 줘서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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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능력! 벌써하는 시간이 2009년으로 향하는 순간, 글을 다시 읽어보는 느낌이 정말 새롭게 다가온다.도토리 만드는 일이, 힘들었다는 기억만 남았을 뿐 , 자연의 순리인 "때"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도하며 기다림의 때를 인내하며 감내하는 사람들에겐 그 "때"가 언제인 지,이미 그 진리를 터득한 사람들에겐 벌써 그"때"는 자연속에 순행하고 있음을 --.
산골짝에 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간다. 어린 동요를 음미하는 순간에도 어김없는 56살 때의 가을은, 넉넉하게 우린 보내고 있다. 맴으로라도
응, 그래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가는 다람쥐 처럼 , 우리들의 도토리를 통한 삶의 지혜로 가을을 풍성하게 지내면 좋겠구나.. ^^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