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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 어린이를 안수하고 축복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셨으며 어린아이가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녀양육 뿐만 아니라 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가야 할까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어린아이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이라고 정했습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분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그는 어린이가 가정과 사회, 국가의 장래임을 부르짖으며 어린이날을 지킬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점되어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계속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어린이날을 지킨 것은 1923년부터입니다. 그 이후 1948년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된 후부터는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1. 어린이에 대한 명칭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에 방정환(方定煥)이 어린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우리나라 고유한 말의 늙은이·높은이·착한이라고 하는 낱말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라는 글자는 ‘높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분’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희승(李熙昇)이 엮은 ≪국어대사전≫(1981)에 보면, “어린이란 어린아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서 나이가 어린 아이란 뜻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린이를 일컫는 말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른데, 예를 들면 함경도지방에서는 ‘어린아’·‘얼라’ 전라북도지방에서는 ‘어린놈’·‘어린애’·‘어린애기’·‘어린앳들’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와 동의어로 쓰이는 한자로는 소아(小兒)·유아(幼兒)·해아(孩兒)·동치(童稚)·영해(嬰孩)·유몽(幼蒙)·황구(黃口)·해제(孩提)·해제지동(孩提之童) 등이 있습니다.
2. 어린이의 연령범위
학자에 따라서는 어린이의 시기를 젖먹이 시기와 유아기를 거친 뒤 초등학교 학령기에 이르렀을 때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를 일컫는 아동의 연령 범위를 18세 미만인 자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의 신체적·심리적 발달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0∼2세까지를 영아기, 3∼5세까지를 유아기, 6∼12, 13세까지, 즉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까지를 아동기라 부르고 있다.
어린이는 가정의 꽃입니다. 미래의 희망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기초입니다. 새싹들입니다. 어린이는 약해 보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싱싱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튼튼하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어야 하고 가꾸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른들의 의무이며 부모님들의 의무입니다. 교회와 이시대의 과제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시려 제자들과 같이 올라가실 때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데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던 제자들 사이에 서로가 크다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의 다툼이 심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자기 자식들의 지위를 부탁하였습니다. 각각 오른쪽과 왼쪽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워놓으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역사의 원년을 이루는 그의 삶 속에서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인의 표본으로 교훈하셨습니다(마 18:2, 막 9:36) 言. 어린이의 겸손, 정직, 순수, 깨끗함, 정결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갈 표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들이 예수님의 축복기도를 바라고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13절, 14절, 16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고 하셨으며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게서 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어른들은 예수님께 오는 아이들을 꾸짖고 업신여겼습니다. 사실상 이들은 성년이 되기 전에는 여자들과 함께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어린이는 아직까지 미숙한 존재로 가운데가 아닌 구석이나 밖에 있어야 될 자들로 취급받던 때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실로 놀라운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그 존재적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를 배우시기바랍니다.
첫째, 축복하며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우리가 욕설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욕한 그대로 그것이 잘못 이루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욕을 들은 대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말대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축복한 만큼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저주는 저주한 것만큼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너희 혀를 자갈 먹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도 見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 민족이 광야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하나님은 그 지파의 두령들을 한 사람씩 선출하여 그들이 장차 들어가서 살 땅을 정탐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한 땅은 한마디로 사람이 살아가기가 매우 좋은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신체조건도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탐꾼들 그 누구도 이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대장부들이고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고 신세한탄부터 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지도자를 넘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갈라진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어본 사람들입니다. 바위에서 나온 생수를 마셔 본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원망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아무리 큰 기적을 체험했다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
원망하는 자에게는 원망할 일만 있습니다. 짜증내길 좋아하면 짜증날 일만 생깁니다. 결국 그들은 정탐한 40일, 하루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40년간을 더 광야에서 살게 되었고 출애굽했던 자들은 광야에서 재앙으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부정적인 말의 무서운 결과입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사건하나가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잡아서 재판하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석방시켜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군중들에게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이 피 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유대군중들의 대답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하나님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주후70 년 로마의 디도 장군의 병력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침략하여 110만 명을 죽이고 10만명 이상을 포로로 붙잡아 갔다. 이 포로들은 팔려가기도 하고 더러는 맹수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화려했던 성전도 불타버렸습니다(눅21:5). 그 후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민족이 되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는 600만 명이 독일 나치의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유대인이기에 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부모의 죄가 자식들에게까지 돌아가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자식에게 축복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긍정적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복 받기를 좋아하던 야곱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애굽에 갔을 때 그의 아들 요셉의 두 아들 즉 손자를 축복 기도했습니다. 복은 축복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이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습니다. 그 집이 받아들이면 그 집 것이 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축복은 빈자의 것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자녀들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고 읽게 해야 합니다.
교회출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자녀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자녀와 함께 찬송하십시오. 같이 성경을 읽으십시오. 영적으로 통합니다. 같이 교회에 나오십시오. 부모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아이들도 그대로 따라합니다. 술을 먹습니다. 담배를 피웁니다. 그러나 성경 읽고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 그대로 따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그대로 합니다. 주일 잘 지키면 그것도 따라서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하면 그대로들 따라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훌륭한 자식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님이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있습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는 모세입니다. 그 아들 뒤에는 어머니 요게벳(아버지/아므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뒤에는 어머니 한나가 있고, 어거스틴에겐 어머니 모니카가 있고, 요한 웨슬레 뒤에는 어머니 수산나가 있습니다.
신명기 6:4-9 言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네게 명하는 말씀을 네 마음 판에 새기고 네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라. 집에 있을 때든지 길에 있을 때든지 누었을 때든지 너는 그 말씀을 잘 강론할 것이며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메어서 기호를 삼고 네 미간에 붙여서 표를 삼으라 사람이 드나드는 문설주에다가 써 붙여서 가르치고 그리고 바깥문에도 붙이라.” 저를 따라하세요. ‘네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라’. 토인비는 하나님 없는 교육은 자기를 불행하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다! 고 가르칩니다. 링컨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없는 중등교육은 작은 도둑을 만들고 하나님 없는 고등교육은 큰 도둑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링컨의 어머니 맨슨은 아들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매일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링컨이 9살 때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링컨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매일 성경을 읽어라.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네 인생 삶의 기준을 하나님 말씀에 두고 살아라.” 그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매일 성경을 읽어라. 인생의 위기가 닥치거든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원칙이, 바탕이, 축복이 하나님 말씀에 기인한다고 하는 것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맨슨은 그러기에 링컨의 어머니요. 미국의 어머니요. 세계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터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거룩한 어머니의 사랑의 용광로가 있었다. 라는 얘깁니다.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 없는 가정, 생명이 없는 인생, 집은 있으나 가정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또 재혼함으로 일 년에 우리나라에 갑작스럽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들이 일 년에 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허황된 삶, 허영의 삶, 돌아다니며 쓰고 먹고 마시고 쾌락의 죄를 짓고 음란 패역하고 그렇게 해서 이 무서운 죄악의 문화가 허공을 치면서 우리의 가정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자녀가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썩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정치인? 경제인? 교육인? 그 누구도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구세군 창설자의 부인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한 어린아이를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탄보다 한 걸음 앞서서 하나님 말씀으로 내 자녀를 양육합니다.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한 어린 생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 온 세계를 구하는 것이며 나라와 민족과 나아가서는 무너져 가는 가정과 사회를 구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마귀사탄 유혹에 빠지기 전에, 마귀가 유혹하기 전에 먼저 깨어 기도하고 먼저 말씀으로 기르고 있다. 라고 하는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 정말 큰 감동이 되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네 가지의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사회입니다. 이 넷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비록 형편상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릴 때 인격 훈련이 바로 된 사람은 유익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출석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 안 가는 것은 큰일처럼 여기고 교회 가지 않는 것은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피아노 레슨이나 과외 빠지면 큰일이고 교회는 갔는지 안 갔는지 헌금은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챙기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기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잘못해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정은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자식이건 남의 자식이건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기도하고 믿음의 훈련을 시킵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무한합니다. 30년 후의 상내백 교회는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의 몫입니다. 그들이 장성해서 이 교회를 위해 봉사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합시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올바르게 물려주는 선조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셋째, 사회성 있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독선적이면 안 됩니다. 사랑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에 동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을 줄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 맹목적이면 안 됩니다. 내 자식이 하는 일이 전부 다 좋으면 안 됩니다. 잘못했을 때 매를 들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기지 못했을 때는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Fair Play입니다. 지금은 아이를 적게 낳기 때문에 자식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잘못 교육하기 쉽습니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아이로 자라기가 쉽습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줄 모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주방으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 아들이 쓴 청구서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1. 이번 주 아빠 구두 닦아 드린 것. 5,000원
2. 엄마 심부름 세 번 한 것. 3,000원
3.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것. 2,000원 합계 10,000원
어머니는 웃으며 그 밑에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10,000원과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놓아두었습니다.
1. 너를 몇 달 동안 내 뱃속에 넣고 다닌 것.
2. 너를 그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돈.
3. 네가 아플 때 밤새 울며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간호한 것.
4.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공짜이다.
아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 편지를 읽고서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 위의 것은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은 돌려드립니다. 엄마의 아들.
지금 아이들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봉사할 줄 모릅니다. 정리할 줄 모릅니다. 궂은일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회성이 없습니다. 학교 청소도 엄마가 가서 해주어야 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빗자루를 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걸레를 손에 댈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우며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미움을 배우며 자란다.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 놀림을 당하며 자란 아이는 수줍음을 타게 된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관용 속에 자란 아이는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된다.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자란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안다. 공정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올바름을 배우게 된다. 안정 속에 자란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된다. 기도로 자란 아이는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된다.
성도여러분! 자녀들에게 예배를 가르치고 교회를 가르쳐야 합니다. 봉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1세기 우리나라의 주인공, 이 세계의 주인공으로 양육되는 우리의 자손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 사랑의 하나님~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들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양육하며 저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