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게시글)
그 시절 그는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 시절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 시절 그는 무얼했을까?
은이에서 출발했고
사제서품후엔 은이에서
미사집전도
순교후엔
은이넘어 미리내에 잠들어
미리내엔 김대건 성당까지
그 시절
그 때가 짐작이 않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있었다.
증조부, 아버지의 순교에
한국인 최초 사제서품
그리고 순교까지...
그가 머문 그리고 머물고 있는
은이와 미리내를 걷는다.
진즉 가 보고자 했지만
가까워서 교통불편한 그 곳으로
인근의 사람들 거쳐를 돌아둘아 들며
천천히, 느긋히 돌아든다.
불편함 감수하며
같이해준 친구에 감사하며
알길없는 후대가 만든 그의 길을
그의 발차취를 잠시나마 걸어본다.
신자는 아니지만
도로의 길이 맘에 안 들기도 하지만
믿는다는 것으로
박해를 받았던 동네들을
휘둘러봄이다.
3개의 고개에
삼덕고개라는 명칭이 정스럽고
기회되면 산길로 다시 한번
걷고 싶은 길이다.
☆☆☆☆☆☆☆☆☆☆☆
그 길은
청년 김대건의 길이다
약 10k정도로
용인 은이성지에서
안성 미리내성지까지이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신부의 시신을
목슴을 걸고 욺긴 그 길의
마지막 부분이다.
신덕, 망덕, 애덕고개까지
세개의 삼덕고개를 지난다.
정확히 일치할지는 몰라도
그 길이고
마지막 미리내성지엔 묘지도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은이고개는 신덕고개의
해실이고개는 망덕고개의
오두재고개는 애덕고개의 이름이다.
교통이 참 불편하다.
승용차를 이용하자니
미리내성지에서
은이성지가는 길이 깝깝스럽다.
대중교통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용인에 있는 은이성지를
전철, 경전철, 택시까지 이용해서 간다.
안성에 있는 미리내성지에선
버스, 택시, 경전철, 전철까지
(용인행 버스타보려고 3k를 걷기도)
휴, 힘든 길이다.
3-10월의 토요일엔 미리내에서 은이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니
그걸 이용할 일이다.
'은이'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천주교 박해 시기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한적한 성지로 김대건신부 관련된 기념관, 조각상 등이 있다.
은이성지의 김가항성당은
김대건신부와 관련이 깊다.
신부가 되기전부터
신앙활동을 하던 곳이고
신부가 되어서 사목활동도 했으며
순교전 마지막 미사를 한 곳이다.
또한
김대건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상해인근의 김가항성당의 자재를 활용한
건축을 한 곳이기도 하다.
성당의 아래쪽엔 김대건신부의
기념관이 있다.
은이성지의 주변길은
하천을 따라 경안천의 원류를
만나는 길을 걷기도 하고,
신덕고개에서 산길따라
망덕고개는 경유하지 않고
문수봉을 거쳐 애덕고개로 걷기도 하고,
삼덕고개를 다 거치는
청년 김대건길을 걷기도 한다.
또한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영남길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창균과 둘이서
정말 느긋하고 여유있게
(실은 속이 무척 안 좋아서...)
청년 김대건길 약 5시간여 걸었다.
은이성지에서 산길로 한참을 걷다보니
신덕고개이고 내리막을 한참걸으니
용인 해곡동 와우정사부근이다.
이 곳에서 도로길과 마을을 한참 걷다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포천에서 세종가는 도로건설이 한창이다.
올해말이면 완공한다고 하네!
공사장을 가로질러 된 걸음으로
올라서니 망덕고개이다
망덕고개에서는 차도 다닐듯한
임도인지 차도인지 모를 길로
용인의 묵리로 내려선다.
묵리에서 또다시 도로길, 마을길거쳐
장촌에서 다시 산길로 오는다.
차도 다닐수 있는 임도이다.
마침내 마지막 애덕고개에 도착하고
이내 잘 정비된 산길따라
미리내성지로 내려서서
김대건성당에 다다른다.
미리내성지는
김대건성당과 묘지가 있는
천주교의 중요한 성지일것이다.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으로 안성이지만
용인, 평택 등에서도 승용차로는
이용이 편하다.
다만,
안성이 아닌 곳은 대중교통은
극히 불편스럽다.
무엇보다 넓직한 시원스러움이 좋고
마음의 평화롭게 해준다.
미리내성지에선
노곡삼거리까지는
버스를 곧 만나 잘 나왔으나
거기서 용인버스 만나러 난실리까지
3k이상의 먼길을 걸었고
차 시간의 멀어서
택시를 이용해서 송담대경전철역까지
경전철, 전철타고
집을 향한 긴긴 여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