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素朴)한 마음
“소박(素朴)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생각하라.[소심심고(素心深考)]” 이는 저명한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저서 ‘학문의 즐거움’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이어서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창조의 기반이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말하였다.
소박한 마음은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있는 그대로 수수한 것이니 나 자신으로 인한 왜곡현상을 일으키지 않아 그 설득력과 추동력이 강해진다. 그러므로 소박한 마음은 건강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소박한 마음은 모든 장식과 치장을 걷어내고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매사에 임하는 것이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겸손한 마음과 통하는 말이 되고, 이것은 앞날에 좋은 결실을 맺는 정신적인 토양이 된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장 12절).
하나님의 경영은 처음부터 크고 세련되게 시작하지 않는다.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후 하나님의 경영은 작고 소박하게 시작되었으니, 믿음의 조상인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는 데서 시작되었다.
소박한 마음은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이니 소박함을 추구하면 본질에 충실하게 되므로 싫증이 나지 않고 오래가게 마련이다. 세상만사에서 본질을 추구하고 이에 충실하면 자연히 소박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변함없는 생명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위대한 것은 꾸밈이 없이 소박함을 그 특징으로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의 대표적 문인화가로 꼽히는 능호관 이인상 선생의 작품들이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가 높은 기예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고결한 본성을 기르는 소박함과 담박(淡泊)함을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던 데에 크게 기인하는 것이라고 평해진다.
그의 작품들에 들어나는 이런 그의 소박한 마음과 인품은 그의 좌우명과도 같은 ‘모루명(茅樓銘)’에 잘 드러나 있다.
작은 누정에 나를 담으니,
고요히 지내면서 명문(銘文)을 짓는다.
문장은 실(實)함에서 들뜨지 않고
행실은 명예를 좇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속됨에 들지 않고
독서는 경전(經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담담함으로 벗을 얻고
옛 것을 스승으로 삼는다.
실천하매 천명(天命)을 어기지 않으니
자나 깨나 맑음 뿐이로다.
<능호관 이인상 선생, 자신의 ‘종강모루(鐘岡茅樓)’에 부친 모루명(茅樓銘)>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거짓과 꾸밈이 없는 소박한 마음과 인품을 사랑하여야 한다. 소박한 마음과 인품은 자신의 내면세계의 성장과 행복을 가져옴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2026. 9.19. 素澹
교만과 겸손
“교만(驕慢)이 오면 욕(辱)도 오거니와 겸손(謙遜)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잠언 11장 2,12절).
다윗임금의 아들 압살롬에 대한 성경 사무엘서의 기록은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
그는 워낙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로 온 이스라엘에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특히 길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길렀는데 매년 그 머리를 손질하면 왕실 저울로 4.5킬로그램 정도의 양이 나왔다고 한다.
압살롬은 숯이 많고, 길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 사람의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그가 반역을 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노새를 타고 도망을 하는 중 그 긴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서 노새는 빠져나가고 자신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어 뒤에 쫓아오는 병사가 창으로 찔러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칭찬했던 그의 멋있는 머리카락이 자신을 죽이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누구든지 압살롬처럼 잘난 체하다가는 창피나 그 이상을 당하는 법이니, 슬기로운 사람은 분수를 지킨다. 어리석은 자는 이웃을 멸시하나 지각 있는 사람은 그의 혀를 조심한다.
파스칼이 그의 저서 ‘빵세(Pensees)’에서 교만에 대해 말하기를 “그대들의 심각한 병 중 하나는 그대들 자신이 신(神)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교만(驕慢)이다. 만일 그대들이 신(神)과 결합한다면 그것은 신의 은총(恩寵)으로 되는 것이지 그대들의 본성(本性)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대들이 겸손하게 된다면 참회(懺悔)로 되는 것이지 본성으로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였다.
생각건대, 우리는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 본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역사상 불멸의 가르침들 속에서 진리를 찾는 길 밖에는 없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용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교만은 인간을 망치는 치명적인 원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장 18절). 특히 주목할 바는,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기라는 우상(偶像)을 숭배하는 교만으로 패망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장 12절).
겸손,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두드러진 성품으로 남을 배려하고 제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맹자도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의 고통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지니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맹자’ ‘공손추상’ 6장).
“처신함에 있어 자신의 몸을 두는 데는 남보다 앞에 두지 말고 홀로 처진 곳에 두어라[居身宜居於獨後之地(거신의거어독후지지)].”<菜根譚(채근담)>.
나무는 높은 가지가 바람을 많이 타듯이, 남보다 앞선 자리에 앉게 되면 남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가 쉽다. 그러므로 자신이 능력과 인격은 정성으로 닦아 나가되 자리(地位) 앉을 때는 뒷자리에 않는 것이 좋다. 자기 몸을 담을 자리는 좀 뒤떨어진 자리에 앉는 것이 안전한 것으로, 물(水)의 겸손(謙遜)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처럼 아래로만 가는 성질, 어떤 그릇이든지 채우는 아량(雅量)을 배워야 한다. 물은 매우 연약하여 무엇에든지 뚫리지만, 많은 량의 몰만큼 강력하여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불(火)조차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겸손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할 물의 덕성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7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하늘과 땅은 장구하다(天長地久). 천지가 저토록 장구 할 수 있는 이유는(天地所以能長且久者) 억지로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以其不自生). 그래서 천지는 장구할 수 있는 것이다(故 能長生). 한 발짝 뒤로 물러서라. 그러면 오히려 당신은 앞에 서게 될 것이다(後其身而身先). 한 발짝 밖으로 비켜서라. 그러면 오히려 당신은 안에 있게 될 것이다(外其身而身存).”
이 말씀은 우리가 천지자연의 이치(理致) 즉 하늘의 이치, 하나님의 섭리에 부합되게 살도록 노력을 다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성품에 대해 온유와 겸손을 말하였는데, 이 온유와 겸손은 바로 자연의 이치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온유란 한마디로 통제되고 절제된 힘을 말하는 것이며, 겸손은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자연의 이치,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이것을 벗어나면 결국은 자신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백강 이경여 선생이 상차(上箚)하여 임금의 잘못을 지적한 글이 있는데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하늘의 이치에 따라 겸손의 덕을 바탕으로 정치를 수행할 것을 주문(奏聞)하였다.
“첫째는 하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임금은 높은 지위에 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옛적의 제왕이 매우 조심하며 상제(上帝)를 대한 듯 행동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 10장 43-44절).”라고 하여 겸손의 덕을 강조하였다.
수도원의 전통을 보면 모든 수도사들이 서원할 때에 서원하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청빈(淸貧)과 순결(純潔)과 순명(順命) 이 세 가지이다. 그런데 수도사들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는데 바로 이것이 겸손(謙遜)이다 (김진홍 목사).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할 때에 첫 번째로 꼽히는데,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성품에 대하여 일러 주셨다. "여러분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십시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심령이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가 주는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1장 29,30절).
이천년 교회역사에서 가장 큰 인물 중 한분인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 제자와 나눈 대화 가운데에 겸손에 대한 대화가 있다. 성 어거스틴의 제자 중의 한명이 어느 날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서원하는 사람으로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이 무엇입니까? 스승인 어거스틴이 답하기를 “"겸손이니라” 겸손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교만(驕慢)이니라” 그러면 교만은 무엇입니까?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이와 관련하여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더욱 극명하게 밝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라고 하였다.
비록 인생의 모든 꿈이 허물어져 살아갈 용기가 없어질 때에라도 홀로 괴로워하지 말자. 하나님 앞에 온전히 겸손하여지고 그를 마음 한가운데로 영접하자.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새 힘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오히려 우리의 가장 위대한 통찰력은 바로 이런 고난의 한가운데에서 발견된다.” <릭 워렌(Rick Warren)목사>
잠언 16장 18절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하였고, 사무엘하 22장 28절에 “주께서 곤고(困苦)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하는 본성이 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