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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동인시집 [☆담이야기☆]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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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이야기]
진단시동인회 시집 / 제34집 / 시문학사(2014.12.30)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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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이야기
김규화
1.
담이 말을 걸면 담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그 말을 듣는다
내가 말을 걸면 담은 키 큰 남자같이 바람막이 하고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2.
옥이가 안에서 담벽을 만지며 걸어가다가
돌이가 밖에서 담벽을 만지며 걸어오다가
안 과 밖에서 두 손바닥 마주치더니 같은 쪽으로 걸어간다
두 손이 나란히 같은 쪽으로 가다가
같은 쪽으로 온다
허공에 뜬 달이 한밤 내 내려보다가
마침내 담을 지워버린다
해가 뜨면 달은 다시 제 자리에 담을 새우고
골목길이 앙살을 피우며 담을 따라 휘돌아가고
담장 외 1편
윤인경
내 이름을
한 자씩 지워갑니다
세상에서 불리웠던 내 이름 석 자
저 너머 그리움도 풀어 놓고
먼 길을 돌아 돌아
이제야 탕아처럼 돌아온 집
담장 아래 밝볏 붉은 맨드라미, 분곷
비운 그릇
흐르는 달빛에 흔들어 칼클히 씻은
마알간 영혼
날개 돋는다
묵은 일기장
윤인경
한 시절 너머 소용돌이치는 기억
잃어버린 빛깔을 찾아
거꾸로 가는 시계를 차고 꿈속을 간다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그녀가 그립다
대숲에 이는 바람
강물을 흔들고
말끔히 닦은 거울 같은 이
일렁이는 물밑에서 웃고 있다
돌담길을 걸으며 외 1편
박건자
안식을 책임지는
무겁고 단단한 돌담에
바람이 기어오른다
그 안으로 가는 생각
이유조차 모르고 차단되고 있기에
집안에 아기가 곤히 자고 있는가
말없이 경호만 철저히 하는 돌담
새소리 물소리고 안기는데
내 맘의 관심 끝없이 흐른다
걸어온 길 한참 돌아보는데
담장 안 감나무 대추나무 소나무
바깥 세상 궁금해
까치발 들고 얼굴 내민다
장마철
박건자
어디가 그리 아픈가요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이
모두를 적셔버리네요
깊숙이 묻어놨던
삶의 씁쓸한 얼룩들이
다시 싹틀까 두려워요
이제 그만 울어요
마음속 불덩이는
당신의 눈물로 끌 수 없잖아요
토다풍경 외 1편
신현봉
마을 어귀
빈 논베미 끝에서부터
고요가 밀려오는 늦가을
사금파리의 싸늘한
차가움에 부딪쳐
빛나는 햇살
토담에 기대 서서
마냥 바라보던
허공
희미해진 풍경에
다시 온기를 흐르게 하는
먼 토담
긍정의 삶
신현봉
큰 일
작은 일
고통이나
측량할 수 없는
슬픔 괴로움
기쁨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우익하다고
믿는 것
어느 공간에 머물든지
내 안과 밖에서의
만남들에 대해
감사하는 것
담 안에는 외 1편
이혜선
감나무가 붉 밝히고 서 있는 고샅길을 돌아들면
낮은 토담 아래 옹기종기 채송화
꽃송이들 꼬막손을 마주 잡으며 들어서는
담 안에는
구구구 암탉이 병아리 데리고
거름더미를 헤치고
돼지도 꿀꿀 밥 달라고 긴 주둥이를 내민다
삽살개는 손등을 핥아대고
행주치마 두른 어머니 따라 나오는
밥내음이 연기로 낮게 깔리는 안마당
소 몰고 돌아오신 아버지
소풀 먼저 챙겨주고
슭 묻은 삽을 씻어 헛간에 걸고 나면
평상 위에 호박잎 쌈 구수한
강된장 밥상이 차려진다
밤 깊어 별 하나 내려와
내 눈을 감겨주면
모캣불 연기 따라 깊어가는 꿈마당
담안에는
‘우리’가 있다
옥순도순 품어주는 가족이 있다
색色 먹고 공空을 낳다
이혜선
너와나
줄 위에서 한바탕 잘 놀다가
줄이 끝나면 꿈도 끝나지
꿈이 끝나면 잠도 끝나지
더러는 쥘부채 펴서 아찔한 중심을 잡고
고요한 중심에 발을 내디디면
언제인지 모르는 전생 기억 따라
원시의 숲을 날아가지
푸른 심장 갈피마다 붉은 잎맥 손가락 펴고
잎새마다 한바탕 봄꿈이 피어나지
외줄 위에 앉고 눕고 하늘 솟는 어름사니
쥘부채 갈피마다 퍼져나가는
빛살 안에서 우리 모두 손잡고 춤추지
해도 달도 땅위의 별꽃도 빙글빙글
손잡고 돌아가지, 한 줄기로 녹아들지
이같은
줄에서 줄로 이어지는 어름사니길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이어지는 광대의 길
소란하고 고요한 바람이 가는
나비꿈의 길
옛집 생각 외 1편
박만진
초가집 울타리나무 울타리에
병아리 떼 삐악, 삐악거리면
움츠리던 잔기침들이 까르르 웃으며
개나리꽃도 삐악, 삐악거렸지
기와집 흙벽돌 울담에
까치발선 넝쿨찔레꽃 활짝 웃으면
먼 마을 일벌들이 찾아와
꽃 속의 꿀을 퍼 나르곤 했지
이웃이 사촌이라는 말도 옛말,
담쌓고 벽치는 이즈막 세상에
아파트 10층에 사는 숙맥 중 숙맥은
초가집 울타리나 그리워하고
기와집 울담이나 그리워하지
호미
박만진
어언간 반평생을
밭에서 살던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러져
호미가 되었다
지지난 봄에 산 호미는 물론
퍽 오래된 호미들도
호미 그대로인데
바지런한 젊은 아낙만
호미가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 누구도
할머니를 부르며
호미라 일컫지 않고
호미를 일컬어
할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할머니와 호미는 하나가 되어
고즈넉이? 앉은걸음으로
날이면 날마다
밭을 매고 있다
담 외 1편
김송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담
담 구실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세월만 흘렸구나
허름한 울타리일망정
고초 세워
담 노릇 한번 제대로 해 보자고 다짐해 보는
또 하루의 아침
눈싸움
김송하
걸팡지게 함박눈 쏟아지는 날
숭어 떼처럼 시끌버끌 몰려 뛰어다니던 아이들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리자
파도 밀려들듯 교실로 우르르 몰려들어 와서는
책상에는 앉을 생각도 안 하고
호호 해해 난장이다
아직도 신나는 눈싸움 중인 듯 상기된 얼굴마다
웃음꽃이 함박하다
그러거라
놀면서 하거라
책 속에만 공부가 있는 건 아니지
그게 바로 공부지
담장 외 1편
신규호
허공으로 치켜세운 살바돌 달리의 콧수염이
숭배하는 비주얼로 꿈속에서 자라던 시절이 있었지
매의 날카론 눈매를 닮은 그의 초상을 그려
마음 벽에 붙여놓고 매처럼 날아오를 날을 고대했지
허나, 시를 쓰면서 그와의 사이에 높은 벽 있다는 걸
집작한 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어
초현실의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이상한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던 그의 일탈 같은 삶을 닮고자 해도 그와의 사이에
높은 담장이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지. 정말 몰랐어
목을 조여올 줄 모르고 메의 눈과 콧수염을 소유하고 싶었으니
싸리나무 울타리를 휘감고 나팔꽃 넝쿨이 나팔을 불며
허공을 향해 오르던 유년의 담장도 담장이지만
가시철망이 솟은 휴전선에 왜 그의 시계사 걸려 있는지
차츰 깨달아졌기 때문이지
살바돌 달리와 나 사이에 죽은 가지에 걸려 늘어진 시계가
존재한다는 게 담장보다도 더 나를 슬프게 하지
담쟁이
신규호
벽돌담을 기어오르다
미끄러진 팔에 피가 흘렀지
앙칼지게 움켜쥔 손아귀가 아팠지
왜 아파야 하는 지도 모르고
거듭 기어올랐지
누가 말했지, 너는
타고난 암벽 오르기 선수라고,
악을 쓰면 쓸수록
허공은 사라지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담장은 나날이 더 높아 갔지
손바닥 흡착판에 피는 엉키고
팔과 어깨의 통증만 깊어 갔지
詩 외 1편
김종희
태초에 나는
보이지 않는 빛이었다
떨림으로 존재하던 빛의 발이
투명한 물방울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를 품은 물방울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수없이 오르내릴 때
하늘로 솟구치며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내 마음 치솟아
나는 새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뒤쫓던 시간이
푸른 구름 사이를 가르며
날아가는 내 심장을 빠르게 관통하며
황금빛 영롱한 말을 꾀어놓았다
초롱꽃
김종희
여름이 산골 오두막에서
조용히 문 열어놓고 있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바람 불면 바람 입고
비 오면 비를 입고
날이 열리고 닫혔다
햇빛 눈부신 날은 해를 따라
날을 열고 닫았다
열린 날은 열린 대로
닫힌 날은 닫힌 대로
날이 날로 이어가던 날
열린 문 무겁게 닫혔다
닫힌 문 위로 눈 쌓이고
검은 달빛 그림자 지나간다
바람에게 담을 묻다 외 1편
김가연
지친 한나절을 등에 업고
어둑해진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밤 익는 냄새와 마른풀 타는 냄새가
흙담 너머로 나늑하게 피어올랐다
오래된 향나무가 담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
달큰한 보리밭이 첫사랑처럼 도란거리던 곳
먼 들녘을 지나 온 푸릇한 바람이
훌쩍 담장을 뛰어 넘기도 하던
내 유년의 한 페이지엔
흙냄새 배인 기다림이 있었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바람이 자주 담장을 넘을 무렵
마을에는 빈집이 늘어났다
나의 꿈이 날로 번창하리라 믿으며
세상의 수많은 담을 넘는 동안에도
시들어가는 시간과 허기진 청춘으로
세상의 구석에 슬픔의 씨앗을 던질 때에도
한결같이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 같은 곳
기웃한 날들을 지나 깊은 계절을 건너는 오늘
기울은 흙담을 딛고 하늘을 오르는 담쟁이덩궅을 보며
빈 보리밭을 지나온 바람에게 다시 담을 묻는다
칡꽃
김가연
어머닌 늘
낭떠러지를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칡꽃은 낭떠러지에 집착했다
텅 빈 죽음과 부어오른 삶의 중간에서
날개가 젖은 하늘빛 꿈이 절벽을 오른다
무의식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온갖 실패한 후일담이 안주로 씹혀도
끈질긴 허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몸에 독주를 쏟아 부으며 허기를 달래보지만
문전에서 밀려난 칡꽃은 결국 주소지를 옮겼다
비탈진 절벽을 오르는 일은 나의 일상
물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이며 절벽을 오르는 동안
환청처럼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들렸다
길고 긴 밤을 통과한 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물결무늬 거실바닥을 헤엄쳐다녔다
칡꽃 냄새가 허공을 뒤덮고
꽃무늬 원피스에서 봄이 일렁였다
봄이 절벽을 넘고 있었다
비 이슬 외 1편
김규화
아치형 생나무 회랑을 걸어간다
끝은 보이지 않으나
노란 햇빛과 금부스러기 잎의 나무와
아이들이 어울려 갈갈갈 웃음 소리가 난다
나뭇잎 천장은 아침 10시
나뭇잎 사이로 금빛 촉화살을 길게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조각에까지 스트레이트로 뻗는다
작고 작은 이슬방울이 모여 아래로 기울어진 나뭇잎 끝에서
무서워, 무서워, 하면서 천길 허공으로 떨어진다
회랑을 지나는 사람들이 머리와 어깨로 받는다
비로 떨어지는 이슬방울의 도둑, 도도둑 옹알이 소리
햇빛 닮은 금부스러기 나뭇잎 천장은
끝이 보이지 않으나
둥근 식탁에 모여 앉아 어머니가 주는 햇빛 금가루밥을
비벼먹은 아이들 소리, 이슬 진주처럼 굴리는 소리
세 담쟁이
김규화
담쟁이가 하루종일 흙메질을 한다
돌멩이 섞어 토담을 쌓는다
토담 아래 주저앉아 막걸리타령을 한다
장마가 지쳐 초가의 무너진 토담 속으로
텃구렁이가 슬렁슬렁 기어가 숨는다
창瘡에 걸린 담쟁이가 만신창이로 바라본다
공기뿌리 손으로 아슬아슬 토담을 기어오른다, 담쟁이는
눈빛 나긋이 두 담쟁이를 번갈아 담는다
자줏빛 장과漿果를 제 몸에서 하나씩 떼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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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진단시동인 34집의 테마는 담이다.
담은 안과박의 경계를 지어준다. 한 공간은 담이 있어서 안전하다. 담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담의 종류는 토담, 돌담, 벽돌담, 블록담, 콘크리트담 등 여러 가지다. 일반적으로 울타리나 책책보다는 튼튼하게 만든 것을 의미한다. 시대에 따라 담의 재질이나 쌓는 방식에도 변화와 특징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진단시 동인들의 담은 어떤 모습으로 하고 있을지? 어떤 기능을 하게 되고 또, 할 수 있을 것인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담이었으면 좋겠다.
이 시대에 테마시 동인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용히 자문해 보며 34집을 내놓는다.
2013년 12월
진단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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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진단시 문학선언
— 신보수주의 지향
시 동인지 <진단시>는 1981년 동인회가 결성된 이래 우리것에 대한 관심과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테마시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 운동은 전통과 현대를 접맥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수단으로 역사적 사ㅓ실과 전통적 맥락 속에서 테마를 설정함으로써 우리것의 재발견과 우리 문학의 정통성 유지 및 발전에 기여해왔다고 자부한다.
이에 <진단시> 동인회는 한국 문하화의 혈통을 찾고, 올바른 방향설정을 정립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 운동을 전개한다. 우리는 보수와 혁신의 변증법적 조화를 문화적 지표로 삼고, 이 새로운 시 운동을 <신보수주의<라고 명명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실천적 의지를 천명한다.
1, <진단시>는 복고 취향의 보수성을 거부하고 전통성과 혁신성을 조화롭게 수용한다. 따라서 우리것에 대한 넓은 시각으로 참신한 시적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한국시의 새로운 전통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세계성을 획득한다.
2. <진단시>는 전통적 소재뿐만이 아니라 현실적 삶과 직결되는 현대적 소재까지도 확대 수용한다.
3. <진단시>는 동인 각자의 자의적 실험성을 존중하나 일시적 유행으로 인한 극단적, 해체적 시 향식의 파괴를 경계하며 시 본연의 정통성을 중시한다.
4. <진단시>는 편협한 구구수적 전통주의를 배격하고 세계사의 현대적 경향과 사조를 과감히 수용하되 모방이나 답습이 아닌 우리것으로 재구성하는 <신보수주의>를 지향한다.
5. <진단시>는 지금까지 추구해온 테마시를 통한 애콜 형성을 계속 견지하며 동인 공동 관심사에 대한 동질성 창출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결집한다.
1991년 7월 진단시 동인회 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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