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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3일(주일) 주일설교 마태복음 24:36~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새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주님의 재림은 정한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신약에 300번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적어도 50번쯤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록은 그의 초림에 대한 기록 보다 8배나 더 많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림론이야 말로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리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할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 재림 하십니까? 예수님은 곧 재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정확한 때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13장 32절에 그것에 관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늘 본문 36절에도 ‘그러나 그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하늘의 천사도 심지어 아들도 모른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42절에도 반복해서 주님 오실 날을 알 수가 없고, 43절에는 심지어 예수님은 ‘도둑과 같이 임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일 오실지, 내년에 오실지, 100년 뒤에 재림하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 정확한 날짜를 모르는데 예수님의 재림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맞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깨어 있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36~39절).
오늘 본문 38절과 39절에 보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사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세에 현상을 한 예로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배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전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나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잠자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영적인 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영적인 잠을 자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잠을 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었던 시대에 노아의 가정은 깨어 있었습니다. 그 깨어 있는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삶은 영적으로 보면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에게 문제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에 졸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모든 삶을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해야 하고 말씀 안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성도라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는 고백과 삶이 있어야 합니다. 노아가 그 시대의 사람과 다른 것은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 가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영적으로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에 그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삶이 바로 방황인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방황은 바로 말씀을 떠난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노아와 그 여덟 식구는 자신들이 방주를 짓는 일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심판 받을 사람과 구원을 받을 사람의 차이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살아가야할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저 동물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만 해서는 안됩니다. 본능을 좇아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저 세상의 욕심만 좇아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 성도가 깨어 있다는 말은 영적으로 잠자는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에 깨어 있어야 하냐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이라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과 함께 인격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잠자고 있습니까?
둘째로 깨어 있으려면, 영혼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40~41절)
예수님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지은 원죄로 타락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버려둠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미워하는 것도 관심이 있으니까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가끔씩 매스컴을 통해서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이웃집의 사람이 죽은 지가 한 참 지난 다음에 시체를 발견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어떻게 보면 이웃에 버림당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당하는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당한 아픔은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버림당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비참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잘못을 했을 경우 매를 들어서라도 바른 길 가게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버려둡니다.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의 무관심, 버려두심이 인간에게는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권세를 받아 구원의 길에 오를 ‘한 사람’ 즉 '데려갈 사람'을 오늘도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빋는 사람이 구원받는 ‘한 사람’입니다.
40,41절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영혼구원에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요즘 전도가 아주 힘듭니다. 전도를 하려면 자기 것을 힘써 내줘야 합니다. 그래도 상대방은 우리의 진심을 몰라주고, 때로는 오해받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천사조차 흠모하는 전도를 포기하면 결코 복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라면 당연히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그들을 건져내지 않으면 내 사랑하는 사람은 버림을 받고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전도를 외면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폭염으로 고통받는 어느날 춘천에 사는 한 사업가가 부산으로 출장하면서 아내에게 이틀 후 부산에 내려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이 더무 더워 오지 말라고 다음날 아내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주소를 잘못쳐서 엉뚱하게 얼마전 사고 세상을 떠난 목사 사모에게 발송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모는 그 이메일을 받고 그만 기절 초풍했다고 합니다. 그 메일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보! 이 곳은 너무 뜨겁소, 너무 고통스럽소, 당신은 이곳에 오지 마시오” 우스개 소리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전도가 쉽지 않아도 내가 살 수 있는 한 힘써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는 삶이 소중한 이유는 전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내 자신이 구원받은 최대 증거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표어중 하나가 ‘한 사람이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4개월 조금 더 남았는데, 그동안 전도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기간에 최선을 다해서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저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적용) 나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한 사람입니까? 또한 구원을 위해 내가 복음을 전하며 손과 발로 섬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셋째로 깨어 있으려면,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자녀로 준비해야 합니다(42~44절).
우리는 주님이 강림하실 그 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하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항상 깨어 있게 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불시에 침입하는 도둑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43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도둑은 어두움에, 밤에, 불빛이 없는 곳에서 활동합니다. 그래서 휴가 갈 때 집에 불을 켜놓고 가거나 TV나 라디오를 켜놓고 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도둑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우리도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고 맞이하려면 불을 켜야 합니다. 빛되신 하나님과 같이 우리도 빛의 아들 답게 죄의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25장에 신랑되시는 주님이 오실 때에 기름을 준비하고 불을 밝히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였지만, 기름이 없어 불을 밝힐 수 없었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는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깨어 있으려면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있습니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서경]의 <열명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군인들은 전쟁이 없는 때에도 전쟁을 대비해서 총을 쏘면서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작전이라고 하여 가상적을 만들고 어떤 전투의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모의 훈련을 합니다. 우리도 이런 훈련을 한 두 번쯤 해본다면 어떻까요? 오늘밤 12시에 주님이 오신다고 가정하면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동안 지은 죄를 몰아서 열심히 회개 하는 사람, 그동안 나누고 베풀지 못했으니 자선 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 기도하며 찬송하며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사람, 성경을 읽는 사람, 세상에 너무 빠져 있던 사람은 정신을 바짝 차리는 훈련을 하겠죠, 또한 평소에 기도를 하지 못한 사람은 기도를 열심히 하는 훈련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적용) 나는 주님이 오실 때 데려감을 당하도록 깨어 준비하고 있습니까? 방심하고 있습니까? 주의 날을 대비하는 일에 합당하지 못한 나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한 인생], 윤명호 자매님의 간증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를 예언하였습니다. 복음서는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말세에 교회들에게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다실 오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오늘날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게 위해서 오늘 하나님 말씀의 제목인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잘 받아 저와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잠자지 않고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들이 나의 구원뿐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의 영혼구원에도 힘쓰기를 원하며,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자녀로 준비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