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파 파조인 15세 이효지의 현손이자 장흥 입향조인 19세 수의부위공(貴秀)의 재실이다. 매년 음 10월 15일 16세 봉선대부공(成諧), 17세 봉익대부공(椽), 18세 봉정대부공(淸吉), 19세 수의부위공(貴秀) 등 4위 시제를 모신다. 재실 뒤 야산에는 3위 단소와 수의부위공의 묘소가 위치한다. 지난날에는 단소에서 시제를 모셨으나 현재는 재실에서 모신다.
공도공파 파조 14세 이문화(李文和)는 여섯 분의 아들을 두었다. 15세 첫째 孝仁(대구·용인·삼가), 둘째 孝義(함안·창원), 셋째 孝禮(청양·안의), 넷째 孝智(장흥·김천), 다섯째 孝信(부여·금산), 여섯째 孝常(경주)으로 각각 분파하였다.
이중, 장흥파는 파조 15세 효지(孝智)~16세 성해(成諧)~17세 연(椽)~18세 청길(淸吉)~19세 귀수(貴秀)로 이어지며, 귀수(貴秀)는 장흥의 입향조 이다.
귀수(貴秀)는 세분의 아들을 두었다. 20세 첫째 적(適), 둘째 달(達), 섯째 우(遇)다.
이중, 적(適)은 명교파(明敎派)로 보성군 회천면 명교리, 달(達)은 용계파(龍溪派)로 보성군 회천면 신리, 장흥군 부산면 용반·금장, 장동면 만년·용곡, 장평면 축내·청룡·우산·봉림·용강, 관산읍 지정, 완도군 등, 우(遇)는 남면파(南面派)로 장흥군 용산면 어서, 회진면 덕산, 장동면 만수, 용산면 금곡·어서·묵촌·접정, 관산읍 신동 등에 각각 세거하면서 대분파 하고 성촌되어 오늘에 이른다.
금계사는 신실 1동, 내삼문 1동, 강당, 1동, 외문 1동, 묘각 칙효재 1동, 관리사옥 1동, 강당건립헌성비 1기, 이건비 1기, 기적비 2기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재원(財源)은 논 90두락, 임야 8정이며 인천이씨 장흥종회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후손들 중, 현대의 대표적 인물은 이진원(제3대 장흥향교 전교, 월평), 이수평(제6대 장흥향교 전교, 월평), 이병교(제10대 장흥향교 전교, 금장), 이경근(제16대 장흥향교 전교, 월평), 이남기(제19대 장흥향교 전교, 용곡), 이충근(제23대 장흥향교 전교, 월평), 이화근(제30대 장흥향교 전교, 축내), 이춘흠(진도군수, 청룡), 이영권 3선 국회의원(어서), 이득배(흥우산업 회장, 지정), 이창주(동양화가 조선대 미대 학장, 우산), 이태균(제35대 장흥향교 전교, 금장), 이금찬(장흥군의회 의원, 접정), 이문갑(서예가, 묵촌), 이길온(국민건강보험공단 호남·제주본부장, 만년), 이남주(광주법원 서기관, 완도), 이병량(장흥군의회 의원, 축내), 이정빈(서울대 의학박사, 용반), 이성관(아동문학가, 만년), 이명흠(장흥군수, 용곡), 이봉준(서예가, 만수), 이남석(회령농협조합장, 명교), 이봉렬(부천세무서장, 만수), 이한성(시조시인, 접정), 이재주(서울법원 이사관, 접정), 이진성(헌법재판소장, 용곡), 이승옥(강진군수, 용곡), 이병혁(문학박사, 접정), 이승우(소설가, 신동), 이기명(물리학박사 서울대 교수, 용반), 이종민(서예가, 만년), 이충식(전남도의회 의원, 어서), 이승련(부장판사, 어서), 이상현(부장판사, 어서), 이대흠(시인, 만수) 등 이다.
찾아가는 길은 부산면 소재지 삼거리에서 부유로를 이용하여
장흥향교는 조선 건국 후 1398년 창건되어 전주, 남원, 광주, 나주향교 등과 호남 전통의 향교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장흥향교에 관한 교임록(校任錄)은 1764(甲申)년 이전의 기록은 멸실되어 현존하지 않습니다.
향교의 수장(首長)을 재장(齋長)으로 호칭 되어오다가 1909년부터는 직원(直員), 1948년부터 현재까지 전교(典校)라고 호칭합니다.
1764년~현재까지 장흥위문에서는 장흥향교 수장을 47분이 지냈습니다. 이중, 1948년 전교로 바뀐 후 현재까지 8분의 전교를 배출하였지요..
장흥군 내 인천이씨 문중은 선대에서 위문과 혼사(婚事)의 연을 많이 맺어 왔습니다. 향교 전교를 8분을 배출하여 장흥위문과 유도발전에 앞장서 참여해오면서 협력 및 경쟁 관계에 있는 명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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