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0.日. 먼 산이 흐린데다 미세먼지 50이라니 국제기준으로 환산하면 80정도 되겠네
08월27일, 오늘의 이름은 日요일.
같은 뉴욕이 아니라고요, 혹시 브루클린을 아세요.
어떤 이름이나 지명들은 발음을 하면 입이 즐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 주변의 이름으로는 연신내나 세검정이 그렇다고 본다. 연신내.. 연신내.. 또는 세검정.. 세검정.. 하고나면 입안이 푸른빛으로 개운해지면서 부드러운 청량감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뉴욕에도 그런 지명이 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 브리지로 이어져있는 브루클린이 그러하다. 브루클린.. 브루클린.. 하고 말을 하면 짧은 단어 안에 소리의 굴절屈折과 음률이 감고 휘도는 낙차落差가 입안을 매끄럽고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브루클린을 처음으로 기억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1990년에 개봉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 라는 영화제목에서였다. 마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을 통해서 토마스 해리스Thomas Harris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192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작가는 십대 시절 결핵으로 치료를 받던 중 합병증으로 폐 수술을 받았다. 이후 평생 급성 폐질환에 시달리며 진통제와 헤로인에 20여 년간을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하던 그는 소설을 써보라는 한 작가 친구의 권유에 ‘알파벳을 아니까 어쩌면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휴버트 셀비 주니어Hubert Sellby Jr.가 쓴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가 출간된 것은 1964년이지만 영화화된 것은 1989년 독일 감독 울리히 에델에 의해서였고, 이 영화는 원작소설인 책만큼이나 신랄하고 거침없는 고전영화로 자리를 잡았다. 다음은 셀비의 원작소설을 2016년 한글 번역해 출간한 책의 소개 글이다.
‘더럽고, 잔인하고, 처절한, 그들만의 이야기’
‘1950년대 미국, 브루클린 하층민들의 삶을 담아낸 고전’
‘또 다른 아메리카’인 그곳에서 사는 인간들의 분노와 고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최초의 작품인 ‘브루클린으로 가는 비상구’는 전후 미국 소설 가운데 손꼽히는 고전이 되었다. 힘없고, 집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셀비의 신랄한 초상화는 출간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지독할 정도로 무섭게 현실적이다. 1950년대 뉴욕은 범죄와 마약의 소굴이었고 그중 브루클린은 악전고투惡戰苦鬪의현장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지금의 예술가 거리가 되기 이전의 진짜 브루클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서로를 등치고 벗겨먹는 이들이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 나들이를 자제하고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허비로 도배를 하고 있는 TV뉴스를 보면서 침대에서 뒹굴뒹굴 편히 쉬었다. 2017년6월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100개국 이상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세 달이 지난 뒤 적도 카리브해상에서 온난화로 증폭된 허리케인 허비가 텍사스를 강타하고 뒤이어 발생한 어마가 플로리다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했을까? 파리기후협정은 산업화 이전 수준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도C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감축 비용 1000억 달러 중 미국이 750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했다. 경제인 출신의 트럼프가 보기에는 미국 한 나라가 전체 비용의 75%를 부담하는 것은 공평한 조약이 아니라는 것과 미국 산업보호라는 명분을 앞장 세워 민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트럼프가 신뢰가 가는 지도자나 손가락이 짧고 호감이 가는 인물이 결코 아니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비난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파리기후협정서 안에 들어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단계적 감축’ 이라는 문구 안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복잡한 이해가 엇갈리는 내용이 함축되어있다는 것이다. 같은 정책이라도 오바마가 하면 선의적善意的이고 트럼프가 하면 이기적利己的으로 보이는 것은 정치적인 제스처나 정치적 소통의 역량이기도 하겠지만 표현방식이야 다를 수 있으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국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TV 뉴스를 보거나 신문 칼럼을 읽고 있으면 트럼프도, 시진핑도, 앙겔라 메르켈도 국제사회현안과 정책을 토의하고 협조와 논쟁을 해야 하는 상대일 뿐이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숨 쉬는 세상은 상당히 달라보였다. 아무려나 벌써 감쪽같은 시간이 은근하고 조용하게 오전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슬슬 일어나서 딸아이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딸아이에게서 서울보살님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내가 그쪽으로 갈까? 그래서 서울보살님이 문자를 보냈다. 아니, 우리가 네 아파트로 갈게. 호텔을 나섰더니 요 며칠간 한결같이 이어지는 뉴욕의 맑고 상쾌한 하늘에서 푸른 햇살이 시원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러던 것이 월요일을 지나고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화요일에는 아침부터 날씨가 찌붓하게 흐리더니 정오를 전후해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맑고 화창하던 뉴욕 하늘에서도 비가 내린다. 그렇지만 미세먼지는 거의 없었다. 그 도시의 공기의 질을 알아보려면 복잡한 장치가 따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하얀 와이셔츠나 하얀 속옷을 하루나 이틀쯤 입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70년대의 서울에서는 하얀 와이셔츠를 이틀이나 혹은 사흘 쯤 슬쩍 입고 넥타이를 매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하루만 입어도 하얀 와이셔츠 목 언저리와 소매 끝이 새까매져버린다. 공기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은 산업화가 되었다는 말이고 산업화가 되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의 혜택을 받아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말인데 풍요의 이면에 환경오염環境汚染이나 자연훼손自然毁損이라는 엄청난 대가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초반부터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가동이 되자 소비消費가 또는 과소비가 미덕美德이라는 말이 정부나 관계당국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천천히 2nd Ave를 걸어 올라가 딸아이 아파트에 도착을 했다. 이제는 E.73rd st주변 동네가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처럼 낯익어보였다. 쉑쉑버거 매장은 E.86th st까지 잠시 걸어가야 한다고 해서 가까운 이탈리아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은 뒤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의 Dumbo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한 삼십여 분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자마자 바로 내린 지하철역에서 길 위로 나오면 그곳이 바로 Dumbo 지역이었다. 그러니까 Dumbo란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이니셜 약자로 맨해튼 다리아래 지역이라는 뜻이다. 마침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라 여행객차림의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어쩌다 가족단위의 소풍객들도 눈에 띄어서 강가의 작은 공원과 유서 깊은 건물들로 꾸며진 이곳이 뉴욕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쪽 편의 브루클린 브리지를 따라 물결 팔랑이는 이스트강 너머로 맨해튼의 감성 돋보이는 고층빌딩과 스카이라인을 바라다보는 풍경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치 맨해튼이라는 배가 수많은 초고층빌딩을 싣고 대서양을 향해 물살을 헤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열린다는 빈티지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브루클린 브리지 위로 지하철이 지나갈 때면 철교의 진동 따라 부르르~ 울리고 있을 것 같은 다리 아래 붉은 건물들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왜 5,60년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철둑과 인구론人口論이 생각나는지 몰라, 하여튼 가난한 동네는 아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조건들이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미쿡이,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하고 생각을 했다. 우리도 다른 여행객들이 하는 것처럼 브루클린 브리지 철 교각사이로 보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유명하다는 피자집과 아이스크림집과 카페와 붉거나 베이지색의 낡은 건물들 사이를 슬금슬금 돌아다녔다. 그런 뒤 나는 딸아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그럼 브루클린에서 여기 Dumbo 지역 말고는 더 구경할만한 곳이 없겠니? 그러자 13년차 뉴요커다운 딸아이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곳은 얼마 전부터 비싼 맨해튼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장소가 되었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직은 낡고 황폐할 뿐이에요. 그래도 그 낡고 황폐한 곳에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고통스럽게 모여 사는 또 다른 아메리카에서 문학과 예술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알려면 딸아이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직 많은 시간들을 견디어내면서 세월을 지켜보는 나이가 되어야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늘에 솟아있는 태양의 각도가 그리 기울지는 않았으나 이제 맨해튼을 되 집어 지하철로 횡단하여 이스트강 건너편인 퀸즈 지역의 플러싱까지 돌아보려던 욕심을 버리고 일단 호텔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음 어딘가에서 독특한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런 뒤 브루클린 브리지 위를 달려가는 지하철 진동 따라 주기적으로 부르르~ 떨고 있던 브루클린의 Dumbo 지역 땅으로 올라왔던 지하철역으로 또 다시 내려가 땅속의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51st에서 내려 마트에 들려 수박을 한 상자 사들고 호텔로 돌아갔다. 원통형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들어있는 깍두기처럼 네모나게 잘라놓은 수박이 시원한 게 달고 맛이 있었다. 그렇게 수박을 먹고 신문을 보고 잠깐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이 어느 틈엔가 코를 붕붕~ 골면서 잠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50년대의 브루클린으로 돌아가 관광객도, 여행객도, 예술가도 없이, 그들만이 고립된 채 낡고 황폐하게 살아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또 다른 아메리카‘의 빛과 그림자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