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만명 육박하다가 작년 2만명 이하로 떨어져…
금융위기로 불황 '큰 영향'… 기대만큼 교육효과도 못봐
일부 서툰 영어에 스트레스, 외로움에 탈선 등 부작용도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던 초·중·고 조기 유학생이 지난해 큰 폭으로 감소해 조기 유학 유행에 브레이크가 걸린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 ▲ 해외 유학 떠나는 초·중학생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던 조기 유학생이 지난해 30% 넘게 감소하면서‘조기 유학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채승우 기자
연간 조기 유학생 수가 2만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4년 이래 6년 만이다.
◆유학업계는 이미 '불경기' 체감
1999년 정부가 '조기 유학 전면 자유화' 조치를 발표한 이후 조기 유학을 경험한 학생들은 지금까지 15만명에 이른다. 조기 유학 찬성론자들은 학생들이 일찌감치 외국어와 국제 감각을 익히고, 다른 나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반면 조기 유학은 '기러기 가족' 같은 가족 해체와 외화 낭비 등 사회문제를 유발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명과 암을 함께 갖고 있는 조기 유학이 감소세로 접어들면서 유학업체들은 그 여파를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서울 대치동에서 10년 넘게 유학원을 운영한 박모 원장은 "최근 2~3년 사이 학생 수가 20~30%는 줄어든 것 같다"며, "해외 대학·대학원 지망생 수는 그대로지만 국내 대학 진학이 어려워 '도피성 유학'을 꿈꾸는 고교생이나 1~2년간 어학 연수를 가려는 초·중학생들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대치동 김모 유학원 원장은 "유학업체 종사자들은 몇 년 전부터 모이면 입버릇처럼 '어렵다, 어렵다'고 하다가 이제는 다들 '죽겠다, 죽겠다'라고 한다"며 "경기 불황 때문에 유학 가려는 학생이 줄어든 것 같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조기 유학, 생각만큼 효과 없더라"
조기 유학 감소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가 직접적 원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조기 유학 보내 봤자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더라"는 경험담에서 비롯된 비판론도 유학생 수를 줄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6학년)을 둔 학부형 김모(38)씨는 지난해 1년간 아이를 캐나다 사우스 델타(South Delta)의 초등학교에 혼자 유학 보냈다. 김씨는 아이를 현지인 가정에서 홈스테이시키면서 전화 통화나 인터넷 화상 채팅 한번 제대로 못 했다고 했다.
유학 보낸 시골 마을의 인터넷 환경이 좋지 못했고, 유학원으로부터 "아이가 집 생각나고, 한국말을 자주 하면 영어가 안 느니까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소식은 현지의 유학원 관계자가 매주 유학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주는 '생활 보고서'로 접하는 게 전부였다.
김씨는 "아이가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사느라 굉장히 외로웠고, 서투른 영어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수업 따라가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며 "요샌 한국에도 좋은 학원이 많은데 둘째는 굳이 무리해서 외국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미국 미네소타의 지인(知人) 집에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혼자 유학 보냈던 박모(39)씨는 "보호자가 없어 아이들이 탈선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현지 홈스테이 가정이 아이들 먹을거리에 신경을 안 써서 애들이 햄버거만 사 먹다가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더라"고 말했다.
●조기 유학의 역사
1990년대 중반에 붐 일기 시작… 2000년 중반에 '전성시대'
조기 유학 붐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조기 유학 1세대(1994~2000년)로 꼽히는 세대는 '세계화 열풍'과 함께 등장했다. 1993년 집권한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국정 과제로 내세우자 해외파 인재 수요가 폭증했고, 하버드대 최우등 졸업상을 받은 홍정욱(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의원이 23세에 쓴 자서전 '7막7장'이 히트를 친 것도 조기 유학의 꿈을 부추겼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주춤했던 조기 유학이 다시 붐을 일으킨 것은 2000년 정부가 '초·중·고등학생 조기 유학 전면 자유화 조치'를 발표, 예·체능 실기가 뛰어난 학생 등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되던 조기 유학 자격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면서부터였다.
조기 유학생은 2005년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섰고, 2006년엔 유학생 수가 전년보다 약 50%나 증가한 3만명에 육박하며 '조기 유학 전성시대'를 맞았다.
이같은 조기 유학의 상당 부분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불법이다. 교과부 '국외 유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업무·유학 등으로 해외에 나가는 부모와 함께 가는 경우가 아닌 초·중학생 유학은 모두 불법인 '미인정 유학'에 해당된다. 미인정 유학생은 해당 학년 출석 일수의 3분의 1 이상 결석하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미인정 유학을 갔다 와도 제재가 없는데다 학교 현장에선 학기 중 유학을 떠난 아이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시기인 2월 중·하순쯤 귀국하면 간단한 학력 테스트만 치른 뒤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제한 없이 조기 유학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