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제 명리학 선생님이신 김태규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우리가 외국에 살면서 가끔 보는 일을 소재로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일들이 생기는지 나름의 의견도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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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삶의 帝國主義者(제국주의자)들인 것이니 2019.12.6
친한 친구 중에 기러기 아빠를 하다가 처지가 무척이나 어려워진 이가 있다.
자녀 둘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다 보니 그만 그렇게 되었다.
첫째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 바람에 영재 고등학교를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둘째는 조기 유학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아내마저 미국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꼭 이십 년이 흘렀다.
수재이던 큰 아이는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얻어 열심히 살고 있다. 원래는 미국에서 경력을 어느 정도 쌓은 뒤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게 그렇게 되질 않았다. 성적이 미흡해서 미국으로 떠났던 둘째는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아예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아내와는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미국 현지에서 다른 인연이 생겨서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좋은 공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친구는 퇴직을 했는데 학비 때문에 모은 돈도 거의 없었고 그러다가 그나마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거의 잃고 말았다. 그 결과 친구는 서울의 허름한 동네로 옮겨서 전세를 살고 있다. 혼자 지내고 있다.
며칠 전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고 두 사람만의 송년 자리를 가졌다. 친구는 볼 때마다 얼굴이 많이 상해가고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친구의 얼굴에는 더더욱 을씨년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문득 중국말이 생각났다, 冷凄凄, 렁치치 렁치치! 참으로 딱한 내 친구여.
난 망했어,
네 말이 맞았어, 네가 그렇게 여러 번 말렸는데 그때 너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짙은 회한이 서린 말이었다. 나름 위로랍시고 얘기했다,
다 팔자야 팔자. 내가 팔자 보는 사람이잖아, 그것도 팔자소관이라고.
물론 해보는 애기였다. 그게 모두 팔자소관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 친구의 운세로 볼 때
2011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현재 가장 어려운 때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덩그러니 전세방에 혼자 지내는 것까지 모두 예정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니 말이다.
돌아오면서 친구의 일을 되새겨보았다. 결국 근 이십 년 전 첫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면서 오늘날의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가 떠나자 다시 둘째 아이가 떠났고 그러다보니 아내가 떠났다.
당시 나와 친구는 사십 대 중반이었다. 당시 나는 꽤나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친구는 반대로 공기업의 중견 간부로서 좋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언
20년이 흘렀다.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마저 든다. 친구는 아이들 잘 키워 보겠다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적으로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세월 동안에 누적된 삶의 피로가 진하게 밀려왔다.
친구는 한창 좋던 그 시절에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어젯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서 다시 생각이 났다.
냉정하게 그간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친구의 그간 행동은 결국 ‘삶의 제국주의적 확장’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아를 확장해가고픈 욕망이 있다.
자녀란 결국 자아의 연장인 법,
아이들을 잘 되게 하겠다는 욕망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또한 자아의 확장인 것이니 생명의 본능이다. 본능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친구의 당초 기대는 수재인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좋은 경력을 쌓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좀 미흡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 돌아와서 어느 정도는 괜찮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그 과업을 다 마치고 나면 아내와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면 되리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친구의 노력이 전적으로 실패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결과적으로 치른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이 세상에는 당연히 그리고 언제나 中央(중앙)이 존재하는 데 자아의 확장은 대부분 중앙으로의 진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중앙 스스로는 자신이 중앙이란 것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으며 아예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겠으나 주변의 존재들은 그 중앙을 갈망하고 중앙으로의 진출을 시도한다. 옛날 표현으론 “大處(대처)로 나아가다”는 말이 그것이고 또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한양으로”란 표현도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중앙 또는 중앙무대에 서서 능력을 보여주고 자웅을 겨루고자 하는 포부를 한 때나마 가져보기 마련이다. 중앙 무대에 서면 주목을 받게 되고 게다가 잘 하기까지 할 경우 인정을 받고 뽐을 내며 살 수 있다.
그렇기에 중앙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없거나 그럴 처지가 아니다 싶으면 결국 어떤 疏外(소외)의 감정을 갖는다.
중앙 무대로 진출하지 못 했다고 해서 물론 패배자는 아니다. 축구로 말하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지 못하면 2부 리그에서 열심히 뛰는 것이고 그도 아니면 3부 리그에서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친구는 왜 미국 저 먼 나라에까지 자녀들을 보냈어야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뛰는 것은 잘 해 본들 2부 리그에 불과하다 여겼던 탓일 것이다. 자녀들이 최소한 미국이란 1부 리그에서 경험을 해봐야 나중에 이곳 2부 리그에서 인정을 더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오늘날 글로벌의 중앙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사실이다. 어떤 마케터의 말처럼 모든 물건이 미국으로 팔려나가진 않지만 미국에서 잘 팔리는 물건은 글로벌 전체로 퍼져나가고 팔려나간다. 그곳이 중앙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하는 룰이 표준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인 것이다.
최근에 와서 애플 스마트폰의 장점은 단 하나밖에 없다.
미국 기업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조립은 중국이든 대만이든 아니면 인도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뭐 같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자체가
2부 리그 소속이 아니라 아예
1부를 바라볼 수 없는 4부나 5부에 속한 나라였다면 친구의 소득으론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 바람에 여전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과 자주 왕래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기껏해야 우리나라로 와서 외국인노동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1960년대 4-5등 국가에서 엄청난 노력을 통해 오늘날
2등 국가 정도는 되었다. 전 세계에서 우리와 같은 역량을 가진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하지만 4-5등에서 치고 달려온 탄력의 관성이 남아있기에 우리의 의식은 어쩔 수 없이 여전히
1등을 지향하고 있다. 이 정도 위치에서 계속 머문다고 해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정도 위상을 지켜나가는 것만 해도 앞으론 벅찰 것 같은데 말이다.
친구는 대단히 선량한 사람이고 인정도 많다. 능력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다만 자신보다 아이들이 더 나은 삶,
더 발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뒷받침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물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있지만 꿈은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성공의 신화와 전설을 새겨온 우리들이었고 동시에 우리가 뱁새인지 황새인지 확인해보기 전에 미리 알 순 없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국주의라 하면 으레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우리 모두 알고 보면 능히 제국주의자들이란 생각을 한다.
사회에 나가 성공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는 당연히 그렇다.
그 성공이란 결국 남보다 앞서는 것이고 경쟁자를 제쳐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때론 불행을 불러오기도 하는 법이다.
(하략)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1854'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
첫댓글 다행히 최근에는 한국의 미국 등 해외유학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전보다 소득이 줄든지 유행이 바뀌든지 했나봅니다.
가정을 위해서는 좋은 일 입니다.
저는 거의 모든 유학 가정의 부작용을 보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그냥 영어 하나 배운다고 여기 아이들 데리고 오는데, 그 댓가가 아주 큰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습니다. 유학을 하고 아이들이 크기전에는 그 댓가를 알 수가 없으니 그렇겠지요.
심하게 말하자면, 헛바람 든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