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 특집 시 모음> 김규동의 ´노동하는 부처님´ 외
+ 노동하는 부처님
부처님은
왜 말이 없으신가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사연 지녔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왜 잠들지 않으시나요
잠자기엔 너무 많은
일이 밀렸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겨울 날씨에도 뻘뻘 땀을 흘리시며
안개 자욱한
사바세계의 길을 걸으신다
부처님 부처님
동에서도 서에서도
부처님 섬기는 소리 자욱한데
부처님은
동그라니 깊디깊은 정적만 놓아두고
남으로 북으로
분주히 떠도신다
휴전선도 마음대로 왕래하신다
공해와 비바람에 찢긴
일하는 부처님의 옷깃에
새로 돋은
저녁별이 찬란하다.
(김규동·시인, 1925-)
+ 해인사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조병화·시인, 1921-2003)
+ 돌부처
비 바람 눈 서리
얼굴 때려도
해(日) 오고
달(月) 갈 때
마음 씻어
연화반석 위에 핀
혜안(慧眼)의 미소
부귀도
권세도
구름이라 이르네.
(이춘우·시인, 경북 영덕 출생)
+ 나무부처
불영사 넘어가는 길에
거대한 굴참나무가 누웠다.
지금도 넘어지면서 쿵 하는 소리가
산을 울리는 것 같다.
가지와 뿌리는 벌레들에게 다 주고
반쯤 썩은 몸통에선 다시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까치들이 우짖는 산비탈에는
그 아들 손자의 손자뻘 되는
굴참나무들이 관세음보살처럼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있다.
비바람과 눈보라의 고행 끝에
흙으로 돌아간 굴참나무,
이젠 나무부처가 되어
극락정토에 누웠다.
(권달웅·시인, 1944-)
+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보니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 저 힘,
부처가 연꽃에 앉아
번뇌하는 기도 같다
(임영석·시조시인, 1961-)
+ 부처님의 웃음
오랜 수행으로 깨달은 부타
人生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부처님의 잔잔한 微笑
世上 악은 물러나고
오직 참만이 흐르나니
부처님의 미소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을 화평하게 한다.
세상사 모두가 마음속에
있어 참마음 찾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웃으신다.
나쁜 마음은 慾心에서
나오나니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부처님의 웃음을 가진다.
부처님 웃음은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
虛荒에서 벗어나
마음을 참으로 하면
부처님의 웃음을 웃을 수 있나니
진실한 웃음은
眞正한 福을 가져다주니
小慾으로 부처님 웃음을 본받자.
(박태강·시인, 1941-)
+ 마음의 열반
삶을 살아감에
부끄럼이 없고
마음의 병 또한
걸림이 없었으니
두려움마저 없어
잘못된 망상은 떠나고
마침내 우리는
삶의 정점에 이르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마음의 열반에 이르네.
(강봉환·시인, 1956-)
+ 열반
눈만 뜨면 온 세상이
부처 안의 우주이건만
이유 없는 아픔에 까닭 없는 설움
합장하고 선 중생 내려다보시는
화안 미소에 몸둘 바 몰라
가슴속 울음 접습니다
경내의 나뭇가지들 자신의 현으로
노래하고, 높이 솟는 불경 소리
가없이 퍼질 때 님의 뜨락에
날개 접고 오수를 즐기고 싶습니다
잠깐이나마 그대 품안에 들고나면
보이지 않던 사랑 보이고
들리지 않던 기쁨 들리지 않을런지요
고통스런 얼굴 펴지고 진한 한기
사라지지 않겠는지요
곰곰이 생각해도 아직 깨닫지 못한 일
미미하나 조금은 깨우치지 않겠는지요.
(김희숙·시인)
+ 연꽃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또르르 또르르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굳은 의지
썩은 물 먹고서도 어쩜 저리 맑을까
길게 뻗은 꽃대궁에 부처님의 환한 미소
혼탁한 세상 어두운 세상 불 밝힐 이
자비의 은은한 미소 연꽃 너밖에 없어라.
(이문조·시인)
+ 연못가에서
넓죽한 잎 펼쳐 놓고
어서 오게
하시는데
연꽃 말씀 받아 오실
그런 분
안 계신가
저 위에
사뿐
올라앉을
이슬방울 같은 사람
(박종대·시인, 1932-)
+ 부처를 찾지 마라
산중 절에 가서
쇠의 몸에 번쩍 번쩍 금옷 입힌
부처를 찾지 마라
길가 교회에 가서
흙으로 빚고 돌로 조각해 놓은
예수를 찾지 마라
살과 피와 뼈 만들어 주고
숨쉬게 해준
네 아버지 어머니가 부처다
무덥고 추운 세상
두 어깨를 펼치고
이파리 무성하게 드리워
그늘 짙게 만든 느티나무 같은
장작이 되어 뜨겁게 불타오른
아버지가 부처다 예수다
연약한 장미꽃 한 송이로 피어
일편단심 붉은 마음 던지며
쓰레기같이 더러운 세상
향기 나게 만드신
어머니가 보살이다 마리아다
이 땅에서 미륵을 찾지 마라
저 하늘에서 천사를 찾지 마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로부터
낳은 네가 낳은
너의 아들과 딸이
장차 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다
악마와 싸워 이길 천사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로부터
부처를 찾아라 예수를 찾아라
세상의 모든 자식으로부터
미륵을 찾아라 천사를 찾아라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자기답게 사는 길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것.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衆生)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 불교이다.
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려는 뜻에서이다.
자기에게서 시작해 이웃과 세상을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건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법정·스님, 1932-2010)
* 엮은이: 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