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송도 나도 희도학교를 졸업했읍니다
유일한 대구 성내 학교지만
작은 학교라
친구 4명이 남았습니다
얼마전에 남은 초등학교 친구와 저녁을 하자고 약속을 했읍니다.
오늘은 대구 사이버 회에 참석하여 정식 입회를 하려고 나와 약속까지 했읍니다
그런데
새벽 심근 경색증으로 119가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두었답니다.
예송은 경북중학교를 나오자 대구사범을 가서 초등학교 교원이 되었음니다
빈틈 없는 전형적인 샌님이었읍니다.
도대체가 벗어난 생활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가 생활은 사진 촬영과 음반 모우고 음악 감상하기
사진은 대구의 중견 작가이고 음악에 대한 지식은 해박한 전문가입니다.
아들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회계사이고 딸들도 잘 삶니다
집안도 안정되고
이제는 생을 즐길 때
무거운 카매라를 양 어깨에 매고 삼발을 들고 사진 촬영에 몰두하였고.
교회 장로인 그는 충실한 기독교 생활에 삶을 의지했습니다.
난데 없이 딸에게서 부음을 듣고
죽음을 체험한 바 있어 죽음에 늘 초연했는데
도라서니 나도 모르게 왈칵 울음이 나올려 했음니다.
슬픔보다 외로움을 느끼는 눈물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삶은 무었인가.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만나기도 하는 것이 삶이 아닌가
오늘 아침 정말로 감정이 묘합디다.
아직은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이 때가 좋은 때인 것 같읍니다
예송 잘가시오
첫댓글 예송을 기리는 마음 함께 합니다. 예송이 못다한 생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그의 명복을 기원합시다.
素愚형 나는 예송이 중학교 졸업때 싸인지를 전송해 주었을때 한없이 고맙고 즐거웠고, 얼마후 목병으로 말을 잘못한다하여 운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예송형의 명복을 빕니다. 대구 오거든 국빕이라도 한 그릇 같이 하자던 예송의 말이 귓전에 맴도는데 그리도 바삐 가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