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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보건사에서 제작한 2009년 달력 7월분에 나온 단고기 등심찜 화보. 단고기요리는 원기를 돋구어주고 내장을 든든하게 하며 피를 잘 통하게 하고 몸을 덥혀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NK | | |
장마철이 지나고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적으로 사계절 중 가장 무더운 삼복(三伏) 더위 기간이다. 초복(初伏)은 지난주 14일, 중복은(中伏)은 24일, 말복은(末伏) 다음달 13일이다.
북한에서도 이 삼복 더위를 두고 흔히 ‘개도 혀를 가로 문다’고 말할 정도로 덥다. 또 이 무더운 여름 한 가운데를 가리켜 “오뉴월 개장국물은 발등에만 떨어져도 보약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과 자주 “삼복 더위에는 단고기(개고기) 국물이 최고인데”라고 말한다.
국내에 온 탈북자들도 복날이 되면 북녘 고향에서 어머니가 땀 흘려 끓여주시던 개고기국 맛이 자꾸 떠오른다고 말한다. 한국에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북한에서는 그리 많지 않다. 고기가 부족한 마당에 개고기라고 기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개고기국을 보양탕, 보신탕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도 보신탕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보통 단고기국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도 처음에는 개고기국이라고 불렀으나 외국인들이 '개장집'이라고 쓴 간판을 보고 혐오감을 보인다는 말이 나오자 김일성이 이름을 '단고기국'이라고 바꿔 부르도록 ‘방침’을 내려 1985년경부터 고쳐 부르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1990년대 중반) 이전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삼복 중에 하루를 잡아 단고기국을 먹었다.
북한 사람들이 단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냐고 물어온다면 필자는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고 답한다. 한국에 와서 주위에서 추천해 준 맛있는 음식을 여러 번 먹어봤지만 북한에서 먹었던 단고기 만큼 맛이 좋고 힘을 나게 하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단고기는 국 이외에도 수육, 단고기 등심찜, 단고기 내포볶음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보신탕 가게를 찾을 때 북한에서 먹었던 맛을 떠올린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며칠 전 탈북자 친구들과 함께 개고기를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그 집 간판에 육개장이라고 써져 있어서 개장국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 육개장을 주문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개고기로 만든 육개장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쇠고기를 고춧가루 와 고사리, 들깻가루를 함께 넣어서 끓여서 한 그릇 내왔다. ‘개’자가 들어갔으니 개고기인줄 알았었는데 일순간 낭패감이 찾아왔다.
북한에도 소고기로 끓인 국이 있지만 육개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소고기국이라고 한다. 과거 1980년대 말까지 광산 노동자나 군 특수부대, 고위 장교들에게는 소고기가 일부 배급됐다. 물론 일반 주민들은 구경하기 힘들다. 개인이 키우지도 못할뿐더러 생산수단을 함부로 잡아먹었다가는 중형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단고기국은 맛이 상큼하고 달기로 유명하다. 남과 북은 개고기국을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북한에서 단고기국을 만드는 과정을 잠깐 보자.
먼저 큰 가마에 물을 가득 붓고 깨끗이 손질한 개고기를 네댓 토막으로 잘라 가마에 넣고 푹 삶는다. 이때 그냥 데치는 정도가 아니라 고기가 뼈에서 절로 떨어질 정도로 흐드러지게 삶는다.
그리고 양념을 준비한다. 북한 단고기국의 맛은 이 양념 맛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개고기에서 곱(기름층)을 뜯어내 칼로 탕쳐서(잘게 다져서) 기름에 볶는다. 거기에 잘게 썬 파와 마늘, 소금, 고춧가루, 내기풀, 참기름 등을 가마에 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보통 ‘죽’이라고 부르는 개고기 양념이다.
그 다음 젓가락으로 가마 안의 고기가 흐드러지게 익었는지 확인한 다음 철망으로 고기를 건져내고 국 가마는 끓는 상태로 놔둔다.
가마에서 푹 삶아진 고기에서 뼈다귀를 추려 다시 가마 안에 넣어 우리고 살코기는 손으로 먹기 좋게 찢는다.
그 다음 대접이나 그릇에 고기를 담고 펄펄 끓는 국물을 부으면 맛있는 단고기국이 된다. 이곳 산해진미를 다 가져다 놓아도 이 단고기 맛과 겨를 바가 못 된다. 오죽하면 단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외국에 가서도 단고기가 먹고 싶어 참지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언제인가 외국에 나가셨다던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그 나라 사람들은 종교 제물로 동물을 신성화하는 나라여서 개고기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지만, 아버지랑 함께 있던 조선 사람들은 개고기가 먹고 싶은 생각에 잠을 청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