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4
이 시대의 대장부로 서라! / 오정호 목사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는 지리적인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과거 역사의 아픔으로 인해 심정적인 거리는 가깝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 어학연수를 떠났던 한국의 청년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일본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일국의 대사가 하지 못한 일을 한 청년의 살신성인이 해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청년을 보면서 "대한의 청년답다". "이 시대의 대장부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남자 성도들이 신앙의 연륜을 더해갈 수록 직장과 가정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형적인 특성, 즉 성적인 특성, 건강, 경제적인 면을 가지고 남자다움을 평가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남자가 자기감정을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슬픔과 눈물의 감정표현은 남성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모습으로까지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 통용되는 남성다움의 기준이 교회안에서도 통용된다면 예배와 훈련, 그리고 성령의 작업하심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할 하나님의 남성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남자 성도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남성다움, 하나님의 대장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윗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죽음의 길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과도 같은 압축된 말로서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2절).
이 말의 의미는
첫째 "강하라!"(Be Strong!).
둘째 "남자가 되라!"(Be a Man!)는 것입니다.
이는 외모적인 남성의 특성이나 경제적,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남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장부가 되기를 원했는데 이 남자다움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너의 하나님의 명을 지키라"고 말합니다(3절).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겠다는 거룩한 결단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왕권을 휘두르는 것이 남자다움의 표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궁극적인 권위가 자신을 다스릴 때에 비로소 남자답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학위, 학문적인 성취, 전문 자격증이 우리들의 남성다움, 대장부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제 늙었습니다(47절).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대장부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자신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대장부가 되기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나이의 종입니다.
오히려 그의 정신과 마음은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매일 새로워진다면 그가 바로 대장부입니다. 자신의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도 대장부가 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은 골리앗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사울왕은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에게 많은 재물과 함께 자신의 딸을 줄것이며 가문의 명예롭게 높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열왕기상 17:25). 이는 남자들이라면 매력을 느끼는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것들보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에 대해 거룩한 의분이 끓어 올랐습니다.
바로 이런 다윗이 대장부였습니다.
적어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위해서 마음을 결단해야 합니다. 대장부의 핵심은 그의 영혼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가 누구입니까? 남자 성도 여러분의 인생을 주도하는 최고의 권위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삶을 주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 다윗이 세상을 떠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나이가 많아지자 많은 왕비와 후궁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열왕기상11:4).
사랑하는 남성도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녀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에게 이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최고의 권위를 갖도록 하십시오.
다윗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아름다운 자였으며 온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을 움직인 것은 왕위에 대한 야망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야망이 주님의 권위보다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야망도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권위가 하나님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 시대의 모든 남자 성도들에게 당부하시는 주님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로 믿고 난 뒤 가족과 부모와 형제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적인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여러분,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낭비하거나 주저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대장부로 쓰임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대의 대장부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까?
스튜웨버의 저서 '남자의 마음을 받쳐주는 네 기둥'에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남자에게 왕(King)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신 권위입니다. 왕의 권위는 나의 인격 속에서 먼저 나를 다스리고 남에게 평안과 안전을 공급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이 권위는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깊은 돌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권위를 상실하면 폭군이 되고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둘째, 하나님은 남자에게 전사(Warrior)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전사의 권위는 보호하는 권위입니다. 남성은 세속화의 물결과 사단의 대적에 대항하여 가정과 교회를 지키는 전사입니다. 그러나 이 권위를 상실하면 겁쟁이가 되고 남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남자에게 멘토(Mentor)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이 권위는 가르치는 권위이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족의 기대를 파악하고 지혜롭게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이 권위를 상실하면 타인에게 책임전가를 하며 열등의식에 빠지거나 우월감에 사로잡힙니다.
넷째, 하나님은 남자에게 친구(Friend)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이 권위가 잘못되면 자녀들을 감시하는 사감선생이 되거나 외톨이가 됩니다. 이 권위는 연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연합시키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믿음의 대장부로서 우리의 가정과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대장부 됨을 인정해주시고 우리를 통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귀한 일을 많이 일으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새로남 믿음의 공동체의 남성들은 세상의 남성다움의 허상을 깨뜨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대장부의 모습을 우리의 모습에 적용하여 대전광역시의 복음화와 가정과 교회에서의 대장부의 사명을 힘있게 감당합시다.
새로남교회는 이 시대와 가정의 형편에 대하여 정죄와 비판만을 일삼는 향방없는 시대정신을 역류하는 하나님의 대장부를 양육하여 훈련하는 현장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과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단뿐 아니라, 창조적인 대안을 세워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선구자입니다. 시대를 양심과 사랑으로 이끄는 사람을 많이 배출함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가정을 건강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로 세우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