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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탄강
파군교
왕건이 꿈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넜다는 몽탄 설화
나주시 동강면 몽송마을 일대의 전투 전승
다만 이러한 설화는 위치를 보조하는 자료이지, 전투 장소를 확정하는 1차 사료는 아닙니다.
과거에는 영암군 덕진면설이 널리 알려졌다
오랫동안 덕진포해전 장소를 다음 지역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암천 일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도 ‘덕진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음
영암 지역에 덕진포와 왕건 관련 전승이 존재
『고려사』의 ‘목포에서 덕진포까지 전함이 이어졌다’는 기록
당시 영암 일대의 해안선이 현재보다 내륙까지 들어와 있었을 가능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금성전투」 항목도 덕진포를 영암 덕진면 일대로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금성전투
그러나 변남주의 연구는 영암 덕진면의 덕진포가 주로 조선시대에 이용된 포구였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국사편찬위원회 주석은 무안군 몽탄면설을 채택했습니다.
학계의 주요 견해 비교
견해현재 지역근거판단
| 무안 몽탄설 | 무안군 몽탄면–나주시 동강면 사이 영산강 | 『고려사』의 덕포·덕진포 기록, 몽탄 전승 |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의 비정 |
| 영암 덕진설 | 영암군 덕진면 영암천 일대 | 덕진 지명·지역 전승·옛 해안선 |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진 견해 |
| 광역 수역설 | 영암 방면 수로 입구부터 덕진포 인접 해역 | 대규모 함대가 넓게 늘어선 사료 | 실제 해전은 한 포구가 아니라 넓은 수역에서 전개되었을 가능성 |
신성재는 「태봉과 후백제의 덕진포해전」에서 전투가 작은 포구 한 지점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덕진포와 그 인접 해역을 포함한 넓은 수역에서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신성재 논문 PDF
해전의 범위가 넓었을 가능성
『고려사』에는 견훤의 전함이 “목포에서 덕진포까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졌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목포(木浦, 나무 목·물가 포)는 오늘날 목포시를 반드시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나주 영산강 유역의 포구 또는 물길 이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덕진포해전은 한 장소의 짧은 전투라기보다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을 수 있습니다.
영산강을 따라 후백제 전함이 길게 배치됨
왕건 수군이 강의 흐름과 바람을 이용해 접근
후백제 함대가 물러나는 순간 화공 실시
덕진포 인근 수역에서 후백제 선단이 붕괴
견훤은 작은 배로 탈출
연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려사』: 909년 왕건과 견훤의 대규모 해전
『삼국사기』: 912년 견훤과 궁예가 덕진포에서 전투
두 기록이 동일한 사건의 연대 착오인지, 909년과 912년에 각각 벌어진 두 차례 전투인지는 논쟁이 있습니다. 따라서 “덕진포해전”이라는 명칭 아래 서로 다른 전투 기록이 합쳐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점 정리
현재 가장 유력한 덕진포해전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 사이의 영산강 수역입니다. 과거에는 영암군 덕진면이 널리 거론되었지만, 『고려사』의 덕포 기록을 근거로 최근 국사편찬위원회는 몽탄면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확한 전투 지점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실제로는 덕진포 하나의 포구가 아니라 영산강 중·하류의 넓은 수역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