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
마가복음12:28-34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가복음 12장은 십자가를 3일 남겨놓고 바리새인과 헤롯당과 사두개인들과 논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질문을 하면 예수님이 답변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들의 질문은 어떤 진리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이상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공모하여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하는 질문이 대표적입니다.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바리새인들이 비난할 것이 확실하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헤롯당이 비난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롭게 책잡히지 않으면서도 올바른 교훈을 주는 말씀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의 질문은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책잡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진지하고 뭔가 가르침을 받으려는 순수한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답변하시는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계명이 크냐는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님은 성실히 답하십니다.
네가 왜 나를 시험하느냐고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서기관의 질문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고 겸손하고 뭔가 배우려는 진지한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 서기관이 했던 어느 계명이 크냐는 질문은 많은 율법학자들의 공통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613가지의 계명을 갖고 있었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계명을 다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이들은 이 계명을 요약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힐렐이라는 유명한 랍비는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에 율법의 전체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하기 싫어하는 일을 당신 이웃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 전체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것의 주해에 불과하다. 가서 배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영국의 바클레이라는 신학자는 613가지 계명을 다윗은 11가지 법칙으로 요약하였고(시편15편) 이것을 이사야는 6가지로 요약하였다.(사33:15)
이 6가지를 미가가 ‘공의를 행하며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3가지로 요약하였고(미가6:8)
다시 한 번 이사야는 두 가지로 요약했는데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사56:1)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하박국은 하나로 요약했는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 학자의 연구의 결과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계명의 핵심을 찾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가를 아는 것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13가지를 요약하면 무슨 내용이 됩니까? 이 계명 중에 가장 큰 핵심적인 계명은 뭡니까?’
예수님을 찾아온 서기관도 여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는 이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쉐마를 인용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답변을 우리는 자주 들어서 아주 당연한 것같이 생각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쉐마의 가르침은 아주 당연했습니다.
가장 큰 계명으로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말씀인 이웃사랑의 계명을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함께 나란히 두 개의 큰 계명으로 놓았던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사랑의 계명이 크고 위대하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이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서기관을 향하여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덕담인지 책망인지 조금 애매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온 것 같아서 축복의 말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바꿔보면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 있다는 책망의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가능성은 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다고 생각했기에 이 서기관이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이 서기관이 멀지 않는 상태에서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이 주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 질문을 한 서기관이나 대답을 하신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마음으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자 했던 서기관을 향하여 다른 축복의 말씀대신에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십니다.
지금 서기관의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다는 것이고,
예수님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좋으시고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 나라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가장 좋은 나라, 가장 온전한 나라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사 체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신경계통의 유명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에벤 알렉산더가 ‘천국의 증거’라는 책을 썼는데요,
저자는 임사체험을 한 후에 하나님 나라를 믿기 이전에 알던 세계를 ‘지렁이의 눈으로 본 세계’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눈 뜨고 나니 그 이전에 알았던 세계가 얼마나 좁고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았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황홀함의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알렉산더 박사는
자신이 보아 알게 된 그 세계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안타까워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남은 인생의 가장 큰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김영봉 목사 설교 인용)
그런데 이 증언은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실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는 진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외치셨던 진실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진실입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신앙인들이 여러 경로로 체험하고 깨달은 진리입니다.
그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도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은 그 나라를 기대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고 너무 땅에 일에만 신경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사라지고 있고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에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아니 얼마 있지 않아서 이 땅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오늘이 11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만 이제 가을도 깊이 접어들었습니다.
11월의 늦가을이 지나면 추운 겨울이 찾아오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사계절의 변화와 동일합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면 인생의 겨울이 찾아오게 마련인데 이 흐름을 누가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지 못하게 한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닙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요즘, 인생의 변화를 잘 준비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와 종착점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잘 하지 못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2.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관점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멀지 않다는 말은 가까이 왔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기입니다. 고지가 보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고지에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미완성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남았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인데 아직은 아니라는 말은 조금 더 노력해야 하고 조금 더 힘써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 서기관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능성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서기관은 다른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나 사두개인처럼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께 질문했고 그 대답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공감을 표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멀지 않는 모습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서기관이 멀지 않은 모습에서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 서기관은 지금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 사랑의 계명임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아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가야 하는데, 조금 더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오직 행함으로써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행할 때,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이 그 진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120
요한일서 4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느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아프리카 밀림 선교의 개척자였던 리빙스턴은 25동안 선교하다가 자기 생일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리빙스턴이 죽은 지 삼 년 후에, 당대의 유명한 설교가 드럼몬드가 아프리카 선교지를 찾아가서 원주민들,
특히 리빙스턴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가 당신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습니까? 선교사님한테 어떤 설교를 들었습니까?
그에게서 배운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가 여러분에게 남긴 인상 깊은 교훈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의 질문에 원주민들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르쳐준 성경공부 내용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설교 메시지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리빙스턴의 선교는 사랑의 선교였고 사랑을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밀림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 수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은 세상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사랑이었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랑 그 사랑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사랑은 이기심으로 속속들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의 얼굴을 한 증오이며 집착이며 폭력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그리고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를 보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사랑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분의 순도 100%의 사랑을 경험해야 하고 그 사랑에 취해보아야 하고 그 사랑에 항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누리는 축복을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경험하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