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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건강칼럼 (514)... ‘결핵 비상’ 상황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결핵(結核) 후진국의 늪
최근 대형 병원에서 ‘결핵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달 서울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여성 간호사(32)가 결핵 확진을 받았으며, 이달에는 삼성서울병원 소아혈액종양병동 간호사(27)와 고려대 안산병원 신생아중환아실 간호사(23)가 정기 건강검진에서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광주 전남대병원이 결핵을 앓다가 숨진 환자의 시신을 4시간 넘게 응급실에 방치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신고 된 결핵 감염자는 3만2181명이며, 이 중 보건ㆍ의료 분야 종사자가 387명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결핵 환자가 하루에 100명꼴로 감염되고 있으므로 의료기관 종사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적극적인 역학조사와 초기 치료를 통해 결핵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結核) 발생률이 1위인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20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결핵 후진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결핵환자 수는 84.9명으로 OECD 평균인 12.0명의 7.2배가 된다. 미국은 4.1명이므로 20배가 넘는다.
필자는 1965년 1월 25세 때 유엔공무원(UN official)으로 임용되어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에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기에 유니세프는 보건(保健)사업과 영양(營養)사업에 많은 지원을 했다. 당시 보건사업의 주요 지원분야는 결핵(Tuberculosis), 한센병(Leprosy), 모자보건(MCH) 사업이었다. UNICEF가 보건사업을 지원할 때는 WHO와 협력하여 추진한다.
‘결핵 퇴치사업’으로 결핵 예방접종약(BCG)과 결핵치료약(INH 등)을 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하여 전국 보건소 등에 배부했다. 또한 BCG 집단접종을 위한 기동력으로 폭스바겐(독일), 랜드로버(영국) 자동차를 도입하고, BCG백신을 보관할 냉장고(당시 농어촌에는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석유를 사용하는 ‘석유냉장고’를 제공)를 전국 보건소에 지원했다.
UNICEF의 최근 ‘북한 인도주의(人道主義)지원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7월 북한 아동 170여만 명을 대상으로 영양 강화식품, 비타민, 긴급구호 약품 등을 제공했다. 보고서는 올해 영양실조(營養失調)에 걸린 북한 어린이 600만 명을 포함해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질병에 걸린 북한 주민은 11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은 결핵의 진단ㆍ관리ㆍ치료 전 과정이 열악한 상황이다. 외국의 결핵퇴치운동 단체들은 북한의 결핵환자 수를 120만 명으로 추산하지만, 체계적인 조사가 불가능한 북한에서 실제 환자 수는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주민들의 영양상태가 나쁘고 비위생적 환경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져 결핵 감염은 쉽고 치료는 어려운 실정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은 결핵퇴치를 위한 증표와 같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 홀벨(Einar Hollbelle)이 제안한 크리스마스 씰이 국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1904년 12월 10일 첫선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일제(日帝)강점기인 1932년 황해도 해주요양원에 근무하던 캐나다 선교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에 의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다. 그리고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결핵(TuberculosisㆍT.B.)은 기원전 7000년 경 석기시대(石器時代) 화석에서도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전염병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병이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Robert Koch)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했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장기적으로 천천히 진행되거나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결핵은 주로 폐결핵(肺結核) 환자의 미세한 침방울 혹은 비말핵(droplet nuclei)에 의해 결핵균이 공기로 퍼져나가 다른 사람의 폐를 통하여 감염이 시작되며, 다른 장기(뇌, 후두, 뼈, 위장관, 복막, 콩팥 등)를 침범하여 결핵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핵균에 감염된다고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대개 접촉자의 30% 정도가 감염되고 감염된 사람의 10% 정도가 결핵 환자가 된다. 발병하는 사람들의 50%는 감염 후 1-2년 안에 발병하고 나머지는 그 후 일생 중 특정 시기, 즉 면역력(免疫力)이 떨어질 때 발병하게 된다. 우리나라 결핵환자 중 20대와 30대 젊은 환자가 많은 이유는 다이어트, 학업, 취업 등의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가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활동성 결핵 발생의 원인에는 감염(최근 1년 이내), 흉부 X선상 섬유화된 병변의 존재, 에이즈(AIDS), 규폐증(硅肺症), 만성 신부전(腎不全) 및 투석, 당뇨, 면역 억제제 투여, 위장 절제술 및 공회장 우회술 수술력, 특정 장기이식 시기, 영양실조(營養失調) 및 심한 저체중(低體重) 등이 있다.
폐결핵의 호흡기 증상으로는 기침이 가장 흔하며 객담(가래) 혹은 피가 섞인 혈담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전신 증상으로는 발열, 야간 발한, 쇠약감, 신경과민, 식욕부진, 소화불량, 집중력 소실 등과 같은 비특이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체로 기침과 가래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결핵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결핵은 발병하는 부위(폐, 흉막, 림프절, 척추, 뇌, 신장, 위장관 등)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림프절 결핵은 전신 증상과 함께 목 주위 혹은 겨드랑이 부위의 림프절이 커지면서 동통이나 압통을 느낄 수 있다. 척추 결핵은 허리 통증을 느끼며, 결핵성 뇌막염은 두통, 구토, 의식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대개 2주 이상 지속되는 호흡기 증상 및 전신 증상이 있는 경우 진단적 검사를 시행한다. 결핵균의 감염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투베르쿨린 피부반응검사(Tuberculin Skin Test), 활동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흉부 X선 촬영, 결핵균 확인을 위한 객담(喀痰) 도말검사 및 배양검사를 시행한다. 혈액검사에서 적혈구 침강속도(ESR)의 증가, 백혈구 증가, C반응성 단백질(CRP) 증가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흉부 전산화단층촬영(CT), 기관지 내시경 검사, 중합효소 연쇄반응법(PCR)을 이용한 결핵균 검사, 약제 감수성 검사 및 신속 내성 검사 등을 시행할 수 있다.
결핵 치료의 원칙은 감수성 있는 살균 제제를 선택하여 약제 내성을 방지하기 위해 다제(多劑)병용요법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며, 최고 혈중농도를 위해 1회 전약 투여를 권장하고 있다. 현재 결핵치료에 사용하는 항결핵제는 9-10종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4가지 약물(아이나, 리팜핀, 에탐부톨, 피라진아마이드)을 두 달간 매일 복용한 후, 피라진아마이드를 제외한 3가지 약물을 4개월에서 7개월 정도 추가로 복용하는 표준 단기 화학요법을 적용하고 있다.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생후 1개월 이내 비시지(BCG) 접종을 해야 한다. BCG 백신(Bacillus Calmette-Guerin vaccine)은 우형 결핵균의 독성을 약하게 하여 만든 것으로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결핵에 대한 면역을 갖게 하는 백신이며,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된다. 만 6세 이상 기침, 가래 등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거주지에 관계없이 보건소를 방문하여 검사를 받아야 한다. 보건소는 연중 무료 결핵검진(結核檢診)을 실시하고 있다.
결핵 예방접종인 BCG 주사는 살아 있는 균이 피부에 들어간 뒤 우리 몸이 면역 반응을 보이면서 곪고 물집이 생긴 뒤 흉터가 남는다. 접종주사는 속칭 ‘불주사’라고 알려진 피내(皮內)접종(주사식)과 작은 바늘이 9개 달린 주사기로 두 번에 걸쳐 놓는 경피(硬皮)접종(도장식)이 있다. ‘주사식’ 접종은 정부 지원으로 무료 접종을 할 수 있으나 ‘도장식’ 접종은 본인 부담금(7만-8만원)을 전액 내야한다.
1990년 일본에서 도입한 도장식(圖章式) 접종은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 신생아 10명 중 7명꼴로 도장식 주사를 맞고 있다. WHO는 ‘주사식’을 권장하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만 ‘도장식’을 선호하고 있다. ‘도장식’은 주사를 놓을 때 적절한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 약물이 체내로 다 들어가지 않아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으며, 너무 세게 놓으면 오히려 흉터가 남기도 한다.
이종욱 박사(李鍾郁, 1945년生, 서울대 醫大 졸업)는 WHO 본부 예방백신국장, 결핵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결핵ㆍ한센병ㆍ소아마비ㆍAIDSㆍ인플루엔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도전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질환은 다양하며, 모든 감염성 질환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백신 접종이다. 이에 이종욱 박사가 미국 과학 잡지(Scientific American)로부터 ‘백신의 황제(Vaccine Czar)’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기구 수장인 세계보건기구 제6대 사무총장(Director-General of WHO)으로 2003년에 선출되어 근무하던 중 2006년 5월 22일 WHO 총회 준비 중 급환(蜘蛛膜下出血)으로 6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한국정부는 2006년 5월 이종욱 박사의 공적을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일했던 ‘아시아의 슈바이처’ 故 이종욱 박사 서거 10주기 추도식(Commemorative ceremony of the 10th anniversary of the passing of Dr. LEE Jong-wook)이 지난 5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의 UN 유럽본부에서 거행됐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결핵을 ‘과거’에 유행했던 질환으로 생각하고 나와 상관없는 질병으로 여기고 있지만 자신도 언제든지 결핵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결핵은 아직까지도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이며, 전 세계 인구의 약 30%를 넘는 20억 명이 결핵균에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결핵환자는 2015년 기준 40,847명(인구 10만 명당 80.2명)이며, 신환자(新患者)는 32,181명(10만 명달 63.2명)으로 집계되었다. 2015년에 신고 된 새로운 환자 중 폐결핵환자는 25,550명이며 타인에게 결핵균을 전염시킬 수 있는 전염성을 보이는 도말양성 결핵환자는 9,309명으로 집계되었다. 사망자는 2010년 2365명, 2011년 2364명, 2012년 2466명, 2013년 2230명, 2014년 2305명으로 집계되어 매년 2천명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우리나라 국민의 3분의 1이 잠복(潛伏) 결핵환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는 10%, 20대는 20%, 30대는 30%씩으로 연령이 늘어날수록 잠복 결핵환자가 늘어난다. 잠복 결핵환자 중 5-10%가 결핵이 발병하므로 이들도 치료 대상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치료하여야 한다.
결핵은 부적절한 치료와 환자관리 소홀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즉 치료를 중단하거나 실패가 많아질수록 재발과 광범위한 전파에 따른 결핵 발생률이 증가할 수 있다. 이에 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는 ‘비순응자(非順應者)’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비순응 사유로는 연락 두절이 가장 많다. 하지만 보건소 결핵 전담관리요원(간호사)의 상담과 가정방문 등으로 많은 비순응자가 다시 치료에 복귀하므로 전담요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핵은 법정전염병(法定傳染病)이므로 결핵 발병 시 결핵예방법에 따라 2주간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으며, 치료를 거부하는 비순응자에게도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인력 부족, 인권 문제 등으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에 일부 보건소는 영상통화로 결핵약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지만 전담인력 부족으로 인하여 어려움이 많다.
지난 2009년에 이른바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하였으며, 지난해는 메르스(MERSㆍ中東呼吸器症候群)가 유행하여 온 국민을 혼란에 빠트렸다. 이들 신종 감염병(感染病)으로 인한 사망자는 메르스 38명, 신종 인플루엔자 약 260명쯤이다. 한편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은 한해 2천 명이 넘는다. 메르스나 신종 인플루엔자는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컸기 때문에 보건당국이 많은 예산을 투입해 사망자가 적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결핵퇴치 사업에 좀 더 많은 예산과 의료 자원을 투입하면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
WHO가 결핵퇴치에 가장 주목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OECD 회원국가 중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 모두 1위인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결핵 후진국’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514). 2016.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