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가려고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고 채비를 했다. 얼마 전부터 잘 쓰고 있던 러닝벨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아 요 며칠간은 매번 전화기를 손에 쥐고 달렸다. 오늘은 갑자기 이 전화기가 짐처럼 느껴져 자신에게 물었다.
- 이 전화기가 꼭 운동을 하는데 필요할까?
보통은 운동을 하며 전화기로 음악과 팟캐스트를 듣거나 보이는 풍경이나 내 모습을 찍는걸 일종의 루틴으로 삼고 있었다. 그 루틴이라는게 날 옥죌 것 까지야... 내려 놓고 나가기로 했다.
손에든 허리에든 뭐가 걸거치는 것이 없으니 가볍고 편하다. 로드러닝은 지루하다고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지낸 요즘이다. 막상 사진이나 뭘 들어야겠다는 마음의 강박에서 벗어나니 자유로운 몸과 마음이 되어 한걸음 한걸음 씩 한 호흡 한 호흡에 집중하며 달릴 수 있었다.
내 안으로 집중하니 머리도 맑아지며 오히려 생각이 뚜렷해짐을 느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명상지도를 해야할 지... 고민이 많은 요즘인데 (산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자연 속에서 하는 명상으로 특화하고 싶다) 동작명상 중에서도 세부적으로 어떻게 강의 계획을 짜야할 지 큰 그림이 잡힌 것 같다.
8km 지점에서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팔을 넓게 벌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여 내리는 비를 맞이했다. 더웠는데 잘됐다. 온 몸으로 비를 맞는다. 분무기에서 뿌려지는 듯한 비인데 언제 온 몸 전체에 이런 형태의 물뿌림를 맞아볼 수 있을까 생각한다. 팔에 맺힌 빗방울과 땀방울을 바라본다. 방울들이 꽤나 자기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팔치기를 할 때마다 변화하고 이동하는 방울들의 모습를 바라보았다.
동호회 일로 번아웃 초기단계이다. 그럼에도 명상을 하는 생활과 매 주 토요일 사랑스러운 교수님과 도반님들과 함께하는 수행 덕분에 이 상태와 고통도 알아차릴 수 있다. 그저 감사하다.
앞으로 전화기를 자주 두고 나가야겠다.
없으니 하지 않아도 되더라.
첫댓글 보월님, 달리기 명상 아주 좋은 명상 체험 입니다.
******무엇인가 가지고 가야한다는 익숙한 습관적 행동을 알아차리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서 달리니 한결 가벼운 몸,
그리고 호흡과 발 보폭에 주의 집중, 비를 맞으면서 부정적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의 긍정적 시각 상쾌한 자신만의 느낌,
아주 좋은 체험을 잘 쓰 주었습니다.
******평소 무엇인가 쫏기는 듯한 모습에서, "동호회 일로 번아웃 초기단계이다."고 알아차림 하였다면,
"너무 완벽하게 더 잘해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그저 해 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