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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애론
역사의 교훈, 적선의 역설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큼은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 통사를 서술하는 까닭이다. 정신이 존속해 멸망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으리라. 박은식의 『한국통사』 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국통사에서 언급한 '역사는 신(神)이요, 나라는 형(形)이다'는 말은 언제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형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역사만 잊지 않으면 망한 나라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박경애의 수필을 읽으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주로 일본의 과거사 왜곡, 부정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 설득력과 당위성을 높이는 목적으로 제시되지만 출처는 불분명하다. 굳이 신채호라 한 것은 신채호가 유명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도전에서는 단재 신채호가 쓴 말이라 했고, 위대한 유산에서는 윈스턴 처칠이 한 말로 나왔지만 누가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의는 겨우 힘들게 이기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 모든 정의가 이기는 것은 아니고, 또한 매번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은 정의와 진실의 편이어서 결국에는 힘들겠지만, 정의는 이기고 가까스로라도, 진실은 밝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연착하는 기차와 같다고 한다. 그 서슬퍼런, 엄중한 역사적 교훈 앞에서 수필가인 박경애도 우리 평론가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우리에겐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용서 자체가 안 되는 일은 용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참으로 박경애의 수필 <원 달러>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공산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안타까운 참상이 녹아 있다. 평화의 소중함과 더불어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킬링필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잊거나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이며,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이 수필은 한국전쟁의 참상도 함께 조명하면서 ‘원 달러’를 통해 적선의 역설을 묘파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Ⅱ.
박경애 수필의 출발점은 ‘떠남’에서 시작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자기 사고의 한계를 벗어난 사물을 만날 때가 있다. 만물에 민감한 촉수를 가진 작가는 대상이 눈 가까이로 다가올 때, 그 순간 감동으로 이어지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캄보디아 여행을 통해서 물 위에서 수상가옥을 지어놓고 사는 베트남 난민의 절박한 삶을 본 것이다. 박경애의 연민이 녹아든 이 여행경험이 수필화된 데는 일상적 삶의 구속으로부터 그녀 역시 자유인이 된 데 있다. 캄보디아로 따나지 않았다면 톤레샤프호수에서 보았던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캄보디아 여행을 통해서 역사의식과 연민의 시학을 건저올리는 데 이때 톤레사프호수 위 고무 대야를 탄 한 소녀의 ‘원 달러’ 란 외침을 듣는다. 여행을 떠나서 타자를 만남으로서 비로소 한 편의 수필이 완성됨을 볼 때, 작가에게 여행은 문인으로서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제일의 질료라 하겠다.
정휴 스님은 “사람도 물도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인생은 강물처럼 흘러야 새로운 만남을 체험할 수 있다. 고정된 틀로써는 전체를 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고집을 갖게 되며 본질을 직관하는 시력이 약해진다. 왜냐하면 고집은 정신적인 군살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떠남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썼다. 수필 <원 달러>에는 ‘베트남 보트피플 난민의 비애’가 묻어나는 글이다. ‘떠남’으로써 얻는 호사보다 그녀는 타자들의 신음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이는 평소 공생공영의 철학으로 역사의식을 강조하며 타자의식을 수필의 전면에 내세우는 박경애의 작가의식이 빚어낸 의식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그녀의 수필은 단순히 국내의 생태문제, 환경파괴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떠남을 통해서도 외국에 가서도 현대 사회의 모든 병폐를 연민의 시학, 사회의식으로 바라보며 인도주의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남다르다고 하겠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둘러본 후 톤레사프호수로 가는 도중에 구걸하는 어린아이를 본다. 관광객이 많아진 후 부쩍 늘어난 모습이라고 한다. 저 나이쯤의 어린이는 학교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부모가 가난하여 학교 공부를 시킬 형편이 아닌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예 동정심 유발로 구걸을 시키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자그마한 몸피와 꾀죄죄한 몰골인 아이가 연민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잊고 지낸 지난날의 추억을 소환한다. 6.25 전쟁 후 먹거리가 부족할 때 미군들이 던져주는 껌이나 초콜릿의 단맛에 빠져 멀리서 먼지 날리며 달려오는 차를 향해 “기브 미 어 껌!”, “기브 미 어 초코릿!”을 얼마나 애타게 외쳤던가. 허기로 타들어 가던 입이 맛보았던 그 달콤한 단물을 어이 잊을까. 빛바랜 추억 속 장면과 구걸하는 어린이 모습이 어찌 이리도 우리 옛 모습과 같을까.
- <원 달러>에서 -
박경애의 여행수필은 ‘떠난 자’만이 누릴 수 있던 행복이 노정되어 있기보다는 역사의 교훈을 주제의식으로 구현하기 위한 사유가 더 많다. 견문의 투영보다도 역사문제와 아동의 인권에 대해 언급하는 바, 그녀는 늘 의식적이다. 캄보디아 여행에서 본 베트남 공산화와 관련된 난민을 연상하고, 난민들의 황폐환 삶의 잔영을 ‘원 달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저 나이쯤의 어린이는 학교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박경애의 탄식이 난민의 현실을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수필은 아동의 인권과 휴머니즘에 대한 의식을 기반으로 창작된 것이다. 이러한 인권의식을 통해 작가는 호수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상가족과 아동의 삶을 인권의식과 연결시켜 이슈화하는 데 성공한다. 최소한 박경애는 휴머니즘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거나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의식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 중에도 독특한 자신의 방식으로 휴머니즘을 깊이 있게 형상화하여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이 수필은 기행수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해외 여행에서 마주친 난민문제와 인권문제와의 만남으로 성립되는 소중한 작가의식이 정겨운 강물처럼 출렁이고 있어 감동을 주기도 한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의 비참한 아동들의 '기브 미 어 초코릿' 구호를 소환하여 역사가 던져준 교훈을 되새겨 보게 한 점이 좋았다. 이 작품은 판에 박은 듯한 안내문 같은 정보 전달, 소개 형태의 기행 형식에서 탈피하고 있어 예술적 감흥을 준다. 텍스트에 담긴 인간적 감촉, 개인적 체취가 강하게 풍겨 기행수필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쪽배가 수상 가옥들 사이를 골목 누비듯 조용히 노 저으며 간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쪽배보다 조금 큰 배 앞머리에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인형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고, 조금 뒤떨어진 곳에는 젊은 엄마가 서서 느리지만 조용히 노를 저으며 우리 주변을 크게 맴돈다. 호수 골목 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둥근 고무 대야 속에서 두 손으로 노를 저으며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쪽배와 여자아이가 탄 고무 대야가 닿을 듯 말 듯 한다.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얼굴이 바로 어깨 옆이다. 애써 눈길을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지만,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고 흘깃 어린 여자애를 바라본다. 작고 어리고 연약한 제비 한 마리가 애처롭게 어미를 쳐다보듯 간절한 눈빛으로 내민 검지 하나로 “원 달러!”라고 한다. 가이드가 말한 대로 여자애 바로 뒤에 따라 오는 또 하나의 고무 대야 여자애가 있고, 어디에선가 지켜보는 매의 눈이 두렵다. 끈적이는 눈빛 거미줄을 외면하며 고무 대야를 겨우 피해 가는데, 어느샌가 다가온 뱃전의 가녀린 어린아이의 간절한 작은 한 마디가 또 “원 달러!”이다.
- <원 달러> 중에서 -
떠남의 형태는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다면, 그녀는 항상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식이 있는 프로 작가다. 문학은 그 자체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인간적 진실과 그 형상화를 통해 문학적 가치를 확인받는 것이다. 그녀의 의식은 물 흐르듯이 고요하게 흐르다가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큰 소리를 내다가 격렬한 몸짓으로 변화한다. 박경애의 작가의식은 이미 여러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녀가 누구보다도 작가의식으로 글을 써내는 데는 한 편의 글을 써도 힘이 있는 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정신을 작가의 소명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애써 눈길을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지만,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고 흘깃 어린 여자애를 바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호수 위 ‘구걸 소녀’에 대해 적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적선의 역설과 조우할 수 있다. 수필이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일은 아름다운 것의 발견을 통해 그렇지 않은 것을 추방하는 일이다. 당연히 고양해야 될 가치인데도 사라져 갈 때,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도록 가치화하는 것이다. 평자는 ‘쪽배에 타기 전부터 가이드가 당부의 말을 반복한다. 쪽배에 다가오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주지도 받지도 말라고 경계의 날을 세우게 한다.’ 고 한 현장의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작가는 원 달러를 그 소녀의 손에 꼭 쥐어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적선의 역설 앞에서, 가슴 아파한다. 작가는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황톳빛 호수 위 작은 고무 대야 속 어린 여자아이를 잊을 수 없다. 그토록 애절한 눈빛을 살면서 몇 번이나 보았을까. 눈빛 거미줄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사로잡히고 만다. 여자아이의 눈빛이 이끄는 캄보디아로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 <원 달러> 발단부에서
끈적이는 눈빛 거미줄을 외면하며 고무 대야를 겨우 피해 가는데, 어느샌가 다가온 뱃전의 가녀린 어린아이의 간절한 작은 한 마디가 또 “원 달러!”이다. 바다 같은 호수, 호수보다 더 넓고 깊은 곳이 굶주린 이의 허기진 배가 아닐까. 많고 많은 서러움 중에 배고픔만 한 게 또 있을까. 애절한 눈빛 거미줄을 거두어 줄 해결책이 정녕 없는 것일까.
- <원 달러> 결말부레서
이 수필에서 문학적 성취가 빛나는 부분이라면, 주제의식이 전개예고된 발단부와 결말부 주제의식의 의미화 부분을 들 수 있다. 발단부와 결말부는 수필 구성의 6대 요소에 속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이 두 지점을 서로 연관지어 수미상관으로 처라한 것이 눈길을 끈다. 발단부와 결말부에서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눈빛 거미줄’인데, 작가는 눈빛 거미줄에서 ‘애절함’과 '절박함'을 건져올리는 데 성공했다. 우리의 인지시스템은 문장보다도 하나의 단어에 더 강력하게 반응한다고 볼 때, '눈빛 거미줄'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 그 전파력과 상징성은 크지 않을 수 없다. ‘바다 같은 호수, 호수보다 더 넓고 깊은 곳이 굶주린 이의 허기진 배가 아닐까.’라는 표현은 이 수필의 압권에 해당한다. 굶주린 이의 허기진 배를 호수보다 더 넓고 깊은 곳‘에 비유하는 솜씨가 손맛을 안겨준다. 여기에 깃들어 있는 것은 적선해야 할 입장에서 갖는 슬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식이다. 수필가 박경애는 인류애의 차원에서 생활고에 고통받고 있는 난민들의 한스런 삶에 대해 말함으로써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작가는 적선 불가라는 막막함 속에서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고자 한다. 사건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경우, 수필은 그 사건의 결과로부터 출발하는 만큼 수필에서는 반드시 소재의 자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재를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그를 자기 식으로 인간화하는 것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 것이 <원 달러>라 하겠다.
Ⅲ.
삶이 지니고 있는 허위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 수필의 소명이기도 하다. 여행을 하면서 삶의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녀는 떠남을 통해 존재의 근원적 깊이에 더 가까이 가 닿으려는 보편적 욕망을 수필 '원 달러'를 통해 풍요롭게 보여주고 있다. ‘바다 같은 호수, 호수보다 더 넓고 깊은 곳이 굶주린 이의 허기진 배가 아닐까. 많고 많은 서러움 중에 배고픔만 한 게 또 있을까. 애절한 눈빛 거미줄을 거두어 줄 해결책이 정녕 없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녀는 캄보디아 정부의 난민에 대한 좀더 현실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작가는 치열한 문학적 탐구 정신으로 주변부 타자의 삶을 제재로 채택해서 주제 줌심의 글인 수필의 특성을 잘 전개하고, 체험을 다시 주제 중심으로 질서화하는 형상화하는 과정을 잘 거쳤다. 감동은 자기만의 독특한 체험에서 나온다. ‘경험’을 넘어선 ‘체험’은 생경함과 신선함을 주면서 감동을 주기 때문에 수필미학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필가의 유일한 도구가 언어이듯이, 박경애는 유일한 표현 도구인 언어를 통해 수필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지적 자기통제를 구축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참상에서 작가는 물론이고 누구나 숙명적인 표현의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특유의 언어감각으로 이를 잘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의식의 상상화가 빛나는 전개부, “오갈 곳이 없는 베트남 피난민들은 국적 없는 무국적자로 호수 위에 수상마을을 이루어 살아온 것이다. 지금은 캄보디아 당국에서 받아들여 캄보디아 국적을 얻었다지만 지척에 땅을 두고 흙을 밟지 못하고 사는 호수 위 수상마을이 삶의 터전이다. 평생을 흔들리는 물 위에 떠 있어야 하는 삶이 파도보다 더 많이 흔들리는 고달픈 삶이지 않을까. 곤궁한 살림살이 속살을 누군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을까. 국적 준 걸 감사해야 하는 처지니 빈한한 삶 속살이 관광 상품이 되어도 어느 누가 입이라도 뗄 수 있을까.”라는 진술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표현으로 박경애의 작가적 저력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기행문의 한계를 극복한 이 수필은 전쟁을 경험한 두 나라 즉 한국과 캄보디아의 상반된 형실과 역사의 교훈은 물론 타자에 대한 날카로운 인도주의적 성찰을 잘 드러내어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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