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 담벼락에 기대어 (11) 사랑이 뭐기에
장마는 삼복기간 이글거리는 태양이 대지를 한꺼번에 태워버릴 것 같아 미리 대지를 충분히 적시는 자연의 순리라는 생각이듭니다. 장마는 또한‘긴비’라는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이며 매실이 익어서 떨어지는 시기에 오는 비라고 하여 매우(梅雨)라고도 합니다. 유소년(幼少年)시절 장마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지도 못하고 온돌방에 혼자 누워서 신화당과 소금의 조화로운 맛으로 삶아낸 감자로 배를 채우고 자장가 같은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곤한 단잠에 빠졌던 기억이 노인이 되어버린 주름진 뇌리에서 가만가만 떠오르곤 합니다. 어느 여린 여류시인은 오래된 장마를‘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 잠기고 뒤집힌다는 것 / 눈물바다가 된다는 것’이라하였고 그래서 뿌리가 뽑히고 사태지고 두절되며 고기들이 창궐하고 어린 낙과들이 바닥을 쳐도 우리들을 옭아맨 질긴 사랑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껏 뜨겁게 달구어진 기름 두른 팬 위에서 익어가는 빈대떡의 아우성 같은 소리를 지르며 장맛비는 오늘도 할 일 없는 노인네의 주름진 골짜기를 냇물이 되어 흘러내립니다.
사랑이 뭐기에 우리는 일생동안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웃다갑니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허다한 이성간의 사랑이외에도 신(神)과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형제와 우정간의 사랑 직장동료와 이웃 간의 사랑 등 일생동안 인연을 맺게 되는 수많은 대상들과 나누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이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공통적이라고 할지라도 대상에 따라 사랑의 정도와 유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우리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하자면 신(神)과 부모님의 사랑과 같이 무조건적이고 정신적인 아가페(Agape)적 사랑과 이성 간 조건적이고 육체적인 애로스(Eros)적 사랑을 각각 성격이 다른 사랑으로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가페(agape)적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 나누는 사랑과 부모와 자식사이에 나누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조건은 없으며 대가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희생을 통하여 얻어지는 사랑이며 상대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 우선시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중에 가장 가치 있고 숭고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에로스(Eros)적 사랑은 아가페와 반대되는 개념의 사랑으로 이성사이에 나누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조건적 사랑으로 상대와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으로 어느 일방의 사랑만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아가페(agape)적 사랑이 정신적 사랑임에 비하여 에로스(Eros)적 사랑은 육체적 사랑이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아마 에로스는 인간의 종족 본능을 위하여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사명 같은 사랑이며 가장 변덕스러운 사랑으로 때때로 아가페적 사랑을 원하는가 하며 스토르게적, 펠리아적 사랑을 원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성 간의 사랑은 카멜레온 같은 사랑입니다.
아가페와 에로스 같은 사랑이외에도 형제, 자매, 친지 등 인륜(人倫)이 아닌 천륜(天倫)간에 나누는 정분(情分)인 스토르게(storge)적 사랑도 있습니다. 친구사이 우정이나 남녀사이 애정은 어느 일방이 싫으면 사랑은 식어지고 사라지지만 스토르게(storge)적 사랑은 하늘이 관계를 끊지 않는 한 인간이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혈족(血族)간 사랑입니다. 부부사이처럼 인륜은 인간이 만든 법률로 관계를 끊을 수 있지만 형제, 자매, 친지는 천륜으로 맺은 사이로 인간이 만든 법률로 그 관계를 단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구사이 우정을 말하는 필리아(philia)적 사랑도 있습니다. 우정(友情)은 서로의 배려와 이해로 관심을 갖고 정분(情分)을 나누는 사랑으로 친구사이라고 하여 모두 우정(友情)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관심을 갖고 있어야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심은 그리움만으로 족하며 그래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우정은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랑이라고 하여 무두가 상대를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봅니다. 사랑도 역시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부정적 일면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카사노바와 같은 사랑인 심심풀이 땅콩과도 같은 루두스(Ludus)적 사랑이 양면성을 지닌 사랑입니다. 이러한 유희적 사랑은 사랑이라는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사랑이지만 학술적으로는 사랑의 범주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문제로 범죄행위라 일컬어지는 광적인 집착이 낳은 사랑인 매니아(Mania)적 사랑도 탐탁지 않은 사랑이며 매니아적 사랑은 탐욕이 낳은 사랑으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삐뚤어진 사랑입니다. 또 다른 사랑으로 감성은 오간데 없고 이성만 가득한 프라그마(Pragma)적 사랑도 있는데 이는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일정한 조건을 세워두고 사랑을 구가하는 것으로 세간에서는 결혼상담소에서 일정한 조건을 제시하며 배필을 구하듯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이 또한 합리성을 따지는 말로 사랑을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외에도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이성적 사랑인 에로스에 반대되는 비성적(非 性的) 사랑인 플라토닉(platonic)한 사랑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랑 때문에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울기도하고 웃기도합니다. 성경(聖經)적 사랑처럼 인내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무례하지도 않고 정의롭고 성내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며 항상 웃고 살수도 있건만 인간인지라 우리의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긍정적 사랑은 우리들 삶의 청량제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적 사랑과 함께하는 여생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웃고 지내는 여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맛비가 쉼 없이 내립니다. 나라 안이 두지도자의 죽음을 놓고 한바탕 편싸움이 또 벌어졌습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악습이 계속되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의 운명은 내동댕이쳐버리고 정권쟁탈에만 혈안이되어있는 이 땅의 살아있는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권력은 애국심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