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여자 사기꾼의 세계
누구나 범죄자(犯罪者)가 될 수 있다. 여성도 절도(竊盜), 사기(詐欺),
폭력(暴力), 살인(殺人)을 얼마든 저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범죄자(犯罪者)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하면
여전히 놀란다. 여성 주도 범죄에 대해 피해자는 방심하기 쉽고,
사회도 그 피해를 축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의 재혼 소동을 계기로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체포된 여성 '전청조(27)'도 그런 허를 찔렀다.
전씨는 작은 체구에도 능란한 언변과 친화력, 출신과 재력·인맥 날조에
성별(性別)까지 넘나드는 변신술로 여러 혼인 빙자 사기와 투자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기 같은 지능 범죄 유형이 복잡다단해져 여성 범죄
영역도 팽창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성
사기범들의 수법을 다시 짚어본다. 왜? "有備無患"이니까.
◇ '장영자'부터 '이은해'까지
한국 여성 사기꾼의 대모는 장영자(79)다. 1980년대 5공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라는 어음 사기를 저지른 ‘큰손’의 대명사.
장씨는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 전두환 대통령과 얽힌
인척 관계를 내세워 어려운 기업들에 긴급 자금을 빌려주고 그 지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했다.
이전 이혼 두 번 때 받은 위자료 수억원을 종잣돈 삼아 남의 돈을 남의
돈으로 돌려막는 일종의 폰지(ponzi) 사기였다.
사기 총액은 7000억원대로 당시 국가 예산의 10%나 됐다.
미모와 화술이 화려했던 장씨는 유력 인사 접대비만 월 3억원 넘게 쓸
정도로 통이 컸다. 1982년 첫 구속 때 포승에 묶여서도 “나는 피해자
입니다. 경제는 유통이에요. 난 경제활동을 한 겁니다!”라고 외쳤다.
장씨는 출소 후 어음 사기와 구권 화폐 사기 등을 거듭 저질러 네 차례,
총 29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지난해 출소했다. 장씨 자신도 ‘사기 중독’
수준이지만, 그의 정체를 뻔히 알면서도 당한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
얘기다.
이후 살인을 전제로 한 보험 사기를 저지른 ‘엄 여인’ 엄인숙과 ‘계곡
살인’ 이은해가 연이어 등장했다.
보험 설계사 출신인 엄인숙(46)은 2000년부터 5년간 보험금을 타내려
두 남편을 차례로 사고로 위장해 살해했다.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까지
바늘로 눈을 찔러 실명케 했다.
엄씨는 탤런트 뺨치는 미인형에 하얀 피부, 얌전하고 나긋한 말투 덕에
장기간 의심받지 않은 채 범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방송에서 ‘소녀 가장’으로 알려진 이은해(32)는 2019년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수영 못하는 남편을 깊은 계곡에 빠뜨렸다.
앞서 2010년 전 남편과 2014년 사실혼 관계이던 남자 친구 모두
의문사로 숨졌다. 이씨는 엄씨처럼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
장애)' 측정 평가 점수가 만점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 이기심과
공감 능력 결여, 충동 조절 장애 등이 있음이 드러났지만, 그녀를
‘여신(女神)’으로 추종하는 팬클럽이 생기는 기현상도 낳았다.
◇”꽃뱀은 꽃뱀 같지 않다”
거의 모든 범죄 피의자는 남성 비율이 훨씬 높다. 사기도 그렇다.
다만 여성은 물리력이 필요 없는 사기에선 일종의 비교 우위를 갖는다.
유엔 통계상 2021년 기준 각국에서 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비율은
남성이 85%이고 여성이 15%인데, 사기 분야에선 남성이 73%,
여성이 27%였다.
한국에서도 1993~2021년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 중 여성은 21.2%를
차지했는데, 사기 관련 범죄에선 그 비율이 평균치를 웃돈다.
일반 사기의 22.6%, 횡령의 26.1%, 약취 28.6%, 밀수 30.8%, 위증·
증거인멸 36.9%를 여성이 저질렀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간부는 “범죄가 발각돼 처분된 수치가 그렇지
실제 여성 사기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듯한 지위를 가진
남성이나 유명 인사들이 여자에게 큰 사기를 당하고도 수치심 때문에,
또는 사생활 문제가 드러날까 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여성은 전통적 성 역할과
좁은 행동반경 때문에 범행 기회부터 적고, 여성 범죄가 은폐하기
쉬운 데다 사법기관이 여성에 관대한 경향이 있을 뿐, 실제 범죄성의
성별 차는 크지 않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