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죄 난 박유하 교수
“좌도 우도 ‘제국의 위안부’를
誤讀했다”
90년대 도쿄 위안부 증언 집회
눈물 흘리며 통역한 게 첫 인연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 펴낸 후
있는 그대로 읽은 독자는 소수
9년 4개월 만의 무죄 판결
집필 동기 이해받았다는 심정
할머니들은 늘 소외돼
그분들의 명복과 평안을 빈다
----박유하 교수가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 무죄 판견을 받은 뒤 대법원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고발당한 지 9년 4개월 만에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에선 나의 집필 동기와 글의 의도가
명확히 파악되고 있었고, 학문과 역사에 대한
깊은 고찰도 담겨 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30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90년대 초, 일본 유학 마지막 무렵 즈음에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다.
도쿄에서 열린 위안부 증언 집회에서 나는
무료로 통역 봉사를 맡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통역하던 경험이 바로
이 문제와의 첫 만남이다.
귀국 후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증언집을 읽기도
하면서, 나는 세간에서 위안부 문제가
소비되는 방식에 조금씩 의문을 갖게 되었다.
2005년에 펴낸 책
‘화해를 위해서’
에서 나는 그런 의구심을 처음 세상에
제기했다.
언론에서도 호의적으로 다루어지고
‘문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고 널리
읽히지 않았다.
이후에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대립은 격화되어가기만 했다.
국내에 소녀상이 세워진 직후부터, 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제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큰 양극단의 싸움에 동원되어
똑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만 늘어가는
소모적 현실에 제동을 가하고 싶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고 관계 서적 대부분을 읽어 온 내가
보기에, 할머니들의 삶을 온전히 보려고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소중히 여겨지는 듯 하면서도 실상은 할머니들은
소외되고 있었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2013년에 ‘제국의 위안부’를 펴내고 나서
다시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었다.
“적은 100만, 나는 혼자”
“정대협 빼고 보상을 직접 달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토로를 들으며, 나는 그간의
의구심과 판단이 맞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양극단을 비판한 나의 책을 두고,
그 양극단은 자신들의 기존 주장에 맞춰
오독했다.
우파 일부는 내가 자신들과 똑같이
‘위안부는 매춘부’
라고 동의했다며 환영했고, 좌파 일부 역시
위안부를 매춘부라 비난했다면서 나를
공격했다.
급기야 내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을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던 ‘나눔의 집’은,
내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형사·민사·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책을 낸 지 10개월 후였다.
나와 가장 친했던 위안부 할머니가
작고한 지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문은
“강제 연행 부인, 자발적 매춘, 적극 협력을
말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한 게 아니다”
라고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나의
싸움이 아니라, 그렇게 주변인들과 나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진짜 불만은 자신들과
‘다른 해결 방법’이 모색되고 받아들여진 데에
있었다.
위안부 문제는 흔히 한일 문제로만
여겨지지만, 실은 냉전 체제와도 깊이
연계되어 있다.
위안부 문제가 시작된 1990년대 초는
북한이 일본과 국교 정상화 협상을 벌이던
시기였고, 북한은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불법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다.
1992년에 당시 정대협 간사였던 윤미향
전 대표가 북한이 조일 수교협상에서
‘전쟁 범죄 배상’을 받아내려 한다면서
“남과 북 모두가”
“배상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주체 역량”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배경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 운동에 깊이 관여한 법률가들
역시 북한의 대일 협상력을 의식했다.
위안부 문제에서 보상 아닌
‘배상’을 받으려면 ‘불법’이어야 하고 바로
그 때문에 어디까지나 ‘국가에 의한 강제 연행’
이어야만 하는 구조가 그렇게 시작됐고
정착됐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2002년 평양 선언에서
그 주장을 접고, 경제적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후에도 윤미향 대표 등 주변 관계자들은
‘불법 배상, 강제 연행’ 주장을 이어갔다.
이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의 한일 합의를
결사 반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나는
북일 수교를 기대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의 자존심을 살리는
수단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은 전혀 원하지
않던 ‘성 노예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국가에 동원되어 오랜 세월
거리에 서야 했고, 이제는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쓴 건, 그분들이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희생자들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명복을 빌고,
남은 할머니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ziliz
윤미향의 죄상은 땀을 줄줄 흘릴 때 이미 드러났다.
처벌은 시기 문제일 뿐이다.
jmp1103
가장 많이 악용한 자들이 윤미향인지 하는
일당들이겠죠?
할머니들 팔아서 몇년동안 잘 쳐드시고 살았죠?
밥좀도
부국강병에 소홀하면 한국은 전제든지 주변 열강에
먹힌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부국강병을 추구해야 한다.
국제 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기
때문이다.
둥이할머니
님의 글을 읽지 못했기에 언급 할수는 없지만
위안부는 식민지의 희생자이지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식민지 나라가 아니었다면 그분들은 끌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윤미향 같은 쓰레기는 다시는 이땅에 기생해서는
안되는것들이란 것은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뱃심가득
1945년에 끝난 일을 45년이 넘어 90년대 초에
파악하고 있는데 어디 정확한 사건을 알수
있었겠습니까?
박교수도 완벽하게 안다고 볼수 없지요.
더더구나 한국에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던
정대협이라는 좌파 무리들이 나섰는데 말이지요.
이제는 그냥 좌파가 아니라 조총련하고 내통하는
종북이 가미되었네요.
재판이 9년 넘게 걸렸다는 것도 정치적인 좌파
판사들에게 휘둘렸다고 볼수 있겠습니다그려.
사실과자유
매주 수요일 낮 12시,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찬반 시위를 보라.
어린애들 모아 놓고 위안부 성노예와 배상,
윤정권퇴진 외치는 정의연 무리를...
사실과자유
억지로 '위안부피해자'를 만들어낸 이유는
반일선동의 도구로 아주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런 피해자는 없다.
여가부에 등록된 240명을 감사원이 정밀감사해야
한다
julymornin****
에고... 오랜 세월 욕 보셨습니다...
세상은 선의만 가지고 살기엔 넘 척박한
곳입니다...
남은 세월 행복만 가득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어봉산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읽어 보았나. 비판자들은
혹시 읽어보지도 않고 신문에 난 것만 보고
비판하는 건 아닌지 , 나는 읽어 보았다.
학문적으로 중립적입장에서 아주 정교하게 쓰여진
책이다.
전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sookmek
대한민국 좌파 이번을 계기로 철퇴 되었으면
좌파들의 선동으로 학문의 자유를 억압했잖아
코보
윤미향의 행동은 위안부를 위한 것이냐 자신의
이념 성향 전파를 위해 위안부를 팔고 권력과
배를 불린 것이냐?
주오석
가짜뉴스, 가짜역사로 미래는 없다.
김정산
"일상생활에 있어서 위안부라 함은 매춘 행위를
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1966년 대법원 판례>
이라 한 바와 같이 위안부는 성매매여성이다.
위안부는 전쟁의 희생자도, 식민지배의 희생자도
아닌 가난의 희생자다.
박유하는 착각하지 마라!
김정산
좌우가 이번 대법원 판결과 '제국의 위안부'를
오독했을 수는 있다.
그런데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오독하고 있다.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적이 없다.
위안부는 본인 의사(자발)이든 아니든(비자발)
포주와 계약을 맺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 직업인이다.
박유하는 왜 일본군의 강제연행을 부정하지
못하고, 매춘부라는 점을 주장하지 못하는가?
그건 바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오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james k
무슨 사건이건 빨간 애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변질이 된다
왜냐면 이재명이나 윤미향 같은 애들은 거기에
빨간 양념을 잔뜩 부어 선동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실과자유
박유하 교수는 무고로 고통을 오랜기간 심하게
많이 받았다.
무고를 저지른 정의연과 부역자들, 아직도
성노예와 배상을 요구하는 가짜위안부 피해자들을
법정에 세워라.
boss11
무죄건 유죄건 무슨 재판이 10년이 걸리나???
그 안에 사람 다 죽겠다...
판사가 모자르면 국민참여재판으로 다 돌려라.
엄청난 사건 수에 비해 너무나 소수인 자신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좀 아니다.
세상에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너무한 것 아닌가?
묘향산 도사
오독이 안되도록 입장을 명확히 쓰지 않아서
그렇지 않소?
아.차
역사의 진실 기록자. 고맙습니다.
삼족오
교수는 개뿔 교수ㅜ, 학문 탈을 쓴 정권 숙주
흡혈 기생충 인간 거머리말종이 맞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