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 이렇게 썼다_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2세」 / 강인한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2세
강인한
삼천 년도 훨씬 지나
이제야 나는 바코드라는 지문을 가진다.
모래와 바람과 강물처럼 흘러간 시간이었다.
넌출지는 시간의 부침 속에
스쳐 가는 존재들,
철없는 것들,
공포의 아버지가 무섭고 두려웠으리.
아랍 놈들이 코를 뭉개고, 영국 놈들이
수염과 턱을 깨부수고 마침내
스핑크스는 눈도 빠지고 혀도 잃어버렸다.
시간의 돛배를 타고 이승, 저승을 오가는 검은 태양.
한 나라의 역사란
파피루스의 희미한 글자들
바스러지는 좀벌레들에 지나지 않으리,
날마다 피를 정화하는 히비스커스 꽃차를 마셔도
추악한 것을 어찌 다 씻어서 맑히랴.
콩코르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
저것은 일찍이
테베의 신전 오른편에 세운 것이었다.
트랩이 내려지고 갑자기 울려 퍼지는 팡파르,
공항이다.
엄정한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나는 아부심벨에 두고 온 사랑을 생각한다.
불타버린 심장으로 느낀다.
저 오벨리스크가 침묵으로 말한다.
이곳에서 나는 이집트의 파라오,
까마득한 이방의 시간과 대지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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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가 파리에 오벨리스크를 세우다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건 여행의 속성이다. 때로는 새벽같이 나서서 길 떠나는 준비가 성가시기도 하나 기대에 찬 설렘은 괴로움을 상쇄한다. 그런데 기껏 새벽같이 나서서 오랜 시간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이 허접한 관광 상품을 파는 곳이었을 때 여행 전체가 실망스러워지는 게 패키지여행의 단점이다. 그래서 요즘은 자유여행을 많이 선호하는 편인데 판에 박은 관광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를 만나는 건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보고 개선문 거리에 서보기도 하고 무슨 공원 광장에 선 오벨리스크를 보기도 하였다. 외국에서 선물로 보내준 오벨리스크였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옛날에도 국가 간의 우정과 선의의 상호 교류가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1997년이었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가 번역, 출간되기를 기다리며 한 권 한 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시기가. 시인이며 불문학 교수인 김정란 번역, 전체 5권으로 된 장편소설인데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의 일대기로서 이듬해 번역자인 시인이 백상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에 유태인들을 이끌고 모세가 홍해 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하였다는 이야기의 반대편에 소설 『람세스』가 있다. 3천여 년 전 람세스와 모세가 같은 시대의 인물임을 근거로 프랑스 작가가 상상력을 펼쳐 이집트 쪽에서 파라오 람세스를 그려 봄 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22년 전 소설에 도취한 람세스의 땅 이집트에 내가 실제로 가보게 된 건 작년 구정 무렵. 중동과 아프리카를 떠돌며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이제는 카이로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집트 가족여행이 실현된 것이다.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곳은 미라 진열실, 그 중에서도 람세스 2세가 유리 진열장에 안치된 곳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그런지 더 많은 눈과 어깨가 비비적거린다. 여기엔 목청 큰 경호원이 상시 감시하며 머리 위에서 우렁차게 “비, 콰, 이, 엇!” 명령어를 스타카토로 내리친다. 미라는 살았을 때보다 훨씬 줄어든 모습이라 했다. 그래도 람세스 미라는 족히 170센티는 되어보였다. 생전에 장대한 체구였으리라. 스물셋에 왕좌에 오르고 예순일곱 해 동안 이집트를 통치한 가장 위대한 파라오의 모습은 한 구의 미라로 까맣게 누워 있다. 통치 기간 동안 정실부인 6명 외에도 여러 명의 후궁, 후처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1백 명 넘는 자녀가 태어났다고 한다.
기록에는 전한다. 람세스 2세, 기원전 1303년 출생. 그러므로 지금부터 3322년 전 태어난 인간의 현재 모습이 내 눈앞에 누운 저 미라인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언젠가부터 미라의 보존 상태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다. 방부 처리에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곰팡이의 증식이 나타나는 보존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프랑스의 고고학과 의학계에서도 그 소문을 듣고 람세스 2세를 프랑스로 이송해서 함께 그 문제를 연구해보자고 하였다. 결국 1974년 프랑스까지 가서 람세스 2세는 8개월간 방사선치료를 받고 돌아와 현재까지는 정상적인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 나일강 크루즈 여행도 포함된 일정이었다. 맏딸 내외와 우리 내외, 그리고 카이로에서 합류한 아들네 세 식구까지 모두 일곱 명의 크루즈 여행은 한 시간을 비행기로 찾아간 룩소르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의 테베라는 곳. 그리스신화에도 나오고 구약 성경에도 나오는 도시 테베의 2월 기후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 비슷한 게 보통이라는데 이상기후로 그날따라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였다.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가 만든 이 신전을 들어서면 입구에 양의 머리를 지닌 스핑크스가 한 줄로 도열하고 있다. 그리고 20미터가 넘는 조형물, 깎아놓은 연필처럼 오벨리스크가 우뚝한 입구와 마주친다. 여기서 현지인 가이드 무수타파가 힘주어 말한다. 입구 왼쪽에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에도 똑같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다고, 그것을 이집트에 총독으로 와 있던 무함마드 알리라는 자가 프랑스 본국 정부에 선물로 바치고 저렇듯 허전하게 좌대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
람세스 2세 때 건립된 몇 개의 높다란 오벨리스크와 람세스 자신의 앉아있는 모습의 석상들, 그리고 둥글고 커다란 수십 개의 돌기둥들… 모조품 아닌 진품으로 3천 년 넘는 세월을 꿋꿋이 버텨온 게 신기할 정도였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백성들에게 평판이 좋은 제왕이었다. 그는 히타이트족과의 전쟁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 전쟁 이후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하며 국내 각지에 거대한 자신의 조각상들을 세웠다.
이집트의 남단 아부심벨에 특별히 자신의 대신전을 알뜰히 조성하고 곁에다가 왕비 네페르타리 소신전도 아담하게 꾸민 것은 웅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강기슭 암벽에 세워진 이 두 개의 신전들은 낫세르 대통령의 아스완하이댐 공사를 당하여 수몰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해졌다.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전 세계 50여 국가의 토목, 건축기술자가 모여 아부심벨의 유물 유적을 30톤 정도의 바위 덩어리로 잘게 잘라 천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 90미터 높은 지대로 옮겨 거기에 조립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적 이전 공사는 1965년 5월에 시작 하여 무려 5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집트 여행의 백미는 단연 아부심벨의 람세스 대신전과 네페르타리 소신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그건 고대 국가의 웅장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자부할 만한 유적이었다. 고대의 유물들을 유네스코 주관 아래 전 세계적인 국가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현대적인 건축공법에 의거, 치밀하게 수면 위로 높이 이전하여 보존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아부심벨을 보고 난 감동을 지닌 채 카이로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식당 주인은 한국인 여행 가이드를 겸한다고 하였다. 람세스 2세에 관한 얘기 끝에 미라의 보존 처리 문제를 위하여 프랑스로 갈 때 미라의 얼굴 사진을 찍고 여권도 만들었다고 했다. 미라에 여권?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였다. 람세스 2세 미라를 싣고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한 다음엔 국가 원수를 영접하는 예우로 예포를 발사하고, 의장대가 사열하였다는 이야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는 문명과 문명의 조우라 할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인터넷으로 ‘람세스 2세 여권’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당시의 여권을 링크로 찾아볼 수 있었다. 여권에 붙여진 까맣고 쭈글쭈글한 얼굴 사진⸺ 말년의 어떤 시인 모습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단순한 여행 시로 이 이야기들을 시로 형상화한다면 그건 자칫 TV에 나오는 세계 테마기행 다큐멘터리만도 못한 시가 될 수도 있었다. 주절주절 주를 달고 시를 쓴다면 그것은 차라리 연구논문에 더 가까울 터이므로 전혀 내키지 않았다. 이래저래 람세스 주제로 시를 쓸 생각만 하면서 시상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두 달 넘게 끙끙거렸다.
⸺이제야 나는 바코드라는 지문을 가진다.
람세스 2세의 여권에서 비롯된 이 한 줄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시는 강물처럼 유유한 흐름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람세스와 오벨리스크를 정점에 놓고 1인칭 시점으로 시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국가 간의 길항을 순화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오벨리스크를 약탈당한 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문명이 현대 프랑스를 정복하였으며 그 표지로 오벨리스크를 파리 중심부에 세워놓은 것이라고. 오늘날 K팝으로 상징되는 BTS가 전 세계 아미들의 가슴속에 환호성으로 파고들듯이. (*)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0년 봄호
첫댓글 ⸺이제야 나는 바코드라는 지문을 가진다.
람세스 2세의 여권에서 비롯된 이 한 줄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시는 강물처럼 유유한 흐름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람세스와 오벨리스크를 정점에 놓고 1인칭 시점으로 시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국가 간의 길항을 순화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오벨리스크를 약탈당한 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문명이 현대 프랑스를 정복하였으며 그 표지로 오벨리스크를 파리 중심부에 세워놓은 것이라고. 오늘날 K팝으로 상징되는 BTS가 전 세계 아미들의 가슴속에 환호성으로 파고들듯이. (*)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