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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태의 영광 (시2-87)
2026년 4월 15일 (수요일)
찬양 : 시온성과 같은 교회
본문 : 시87:1-7절
☞ https://youtu.be/TGKC8zNJUNQ?si=AwD5eprZhmZHiqMs
어제 중보기도 세미나를 마치고 오후에는 팀 대표자 회의를 했다. 이제 각 파트를 새로운 대표자에게 위임하며 대표자 회의를 시작한 것이다. 나보다 젊고 신실한 소중한 대표들에게 최종적으로 위임을 하고 3인 체제로 라마나욧선교회가 나아갈 수 있는 체제를 정해 첫 모임을 가진 것이다.
첫 회의에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라마나욧선교회가 희망이 있음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3분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나아가기를 묵묵히 뒤에서 기도할 뿐이다. 앞으로 나의 할 일은 이들이 당분간 걱정 없이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하며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해 주고 퇴장하는 것이다.
마치고 돌아오니 그동안 쌓인 피곤함이 몰려와 저녁 기도회를 마치고는 10시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제는 정말 은퇴의 자리로 가야 함이 조금씩 실감이 난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다는 것이다. 내 가슴속에서 불타던 설레는 감정이 식어졌고, 시대의 변화를 담기에는 지금이 적기란 판단이다.
이제 주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실까?
궁금하지만, 나를 생각하기에는 내가 라마나욧선교회 안에서 마감해야 할 일이 아직도 쌓여있다. 어떻게 마감해야 할지 대책이 보이지 않지만, 그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나는 나아갈 뿐이다.
주님, 인도하소서. 이들이 저처럼 설렌 가슴으로 맡기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되게 하소서.
오늘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나누기와 내일 있을 목회사관학교와 주일 사역을 준비하는 날이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서 모든 무거운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시편 87편은 학계의 견해를 살펴보면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의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을 통해 시온의 영적 중심성을 재확립하려던 시기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시편을 보면 놀라움 그 자체다. 1-3절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분명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의 눈에 보여진 것은
파괴된 성전과 무너진 성벽, 그리고 주변 민족들의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이때 시인은 시온이 비록 지금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터전은 하나님이 직접 닦으신 '거룩한 산' 위에 있으며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임을 선포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건물의 규모가 아니라,
그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시온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음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시선의 전환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교체된 시선은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라는
상상할 수 없는 회복비전을 선포하게 된다.
이 표현은 수동태로서 이 영광은 시온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수동적 영광임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얻는다.
진정한 회복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시선의 전환, 생각의 전환, 방향의 전환이 바로 진정한 회복이다.
고레스의 명령이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가져온 시선의 전환이 강력한 변화의 시작이다.
이런 시선의 전환은 시인을 엄청난 자리로 인도한다. 4절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이것은 도저히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언어다. 포로 귀환자들에게 바벨론은 성전을 파괴하고 자신들을 노예로 삼았던 철천지원수였다. 그리고 여기서 기록된 모든 민족은 자신들을 억압했던 제국이다. 만약 이 시가 귀환 직후에 불렸다면, 4절에서 바벨론과 라합(애굽)이 시온에서 났다는 선언은 그래서 혁명적인 '은혜의 선포'다.
자신들을 억압했던 제국들이 오히려 시온의 시민으로 등록된다는 비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단지 한 민족의 수호신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며 원수까지도 자기 자녀로 재탄생시키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거룩한 비전이다. 물론 이 비전은 이방인과의 분리를 통한 배타적 순결을 강조한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도전과 반대를 경험했을 것이다.
16년이란 시간 라마나욧선교회를 열고 달려온 자리를 이제 다음 지도자에게 위임하고
뒷정리만 남은 내게 주님은 오늘 포로 귀환한 절망이 보이는 터전을
멋지게 재해석하며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는 시인의 기도를 보게 한다.
이 시인은 이런 놀라운 비전 속에 이렇게 마감한다. 7절
‘노래하는 자와 뛰어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내게 있다 하리로다.’
성전 재건 과정은 분명히 경제적 결핍과 정치적 방해로 점철된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들이>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시편 87편은 포로로 귀환한 "우리는 비록 작고 연약하나,
우리가 세우는 이 시온은 장차 온 세상을 품을 은혜의 모태가 될 것이다"라는
위대한 신앙적 자부심을 노래하면서
이 모든 근원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임재로 그 통로가 되었음을 찬송하고 있다.
내려놓음이란 자리에 하나님은 나를 위로하신다. 분명한 사실은 이 길이 수동태란 사실을 다시금 기억한다. 내가 만들 수 없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이다. 그분의 임재가 있는 곳 어디서나 이 영광은 계속될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실수만 한 저를 용납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을 찬양하며, 나의 모든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합니다. 나의 인생은 수동태로 주님께 붙들린 삶이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오직 주님께만 연결된 삶으로 인도하소서.
한줄 묵상 :
<나의 성취가 멈춘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수동태로 임하는 시온의 시작입니다.>
적용 질문 :
1. 나는 지금껏 나의 가치를 사역의 '성취'에서 찾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수용된' 시민권에서 찾았습니까?
2. 내가 끝내 시온의 시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라합과 바벨론'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은혜로 다시 바라볼 준비가 되었습니까?
3. 사역의 자리를 내려놓는 지금, 나의 기쁨의 샘물은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