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의 시대(원재 '노르웨이의 숲')외 국내에 번역 된 그의 전작을 읽으면서...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 : 양억관
출간일 : 2013년 / 민음사
무라카미 하루키
“모든 것은 사라져 간다. 아무도 그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견딤이다.
의지할 것도, 전적인 신뢰도, 완벽한 상호 이해도 상실되었다고 느끼면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메워지지 않는 빈공간과 공허, 공존한다는 연대감의 상실,
그 상처를 현실로 수용하면서 하루키 작품속의 주인공들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 공허감을 인식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고독에 투철하면서,
그의 등장인물들은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그러나 쿨한 존재가 되어간다.
따뜻하게 어쩌면 서글프게까지 다정하게 자신을 달랜다.
인간의 순수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면서 어떻게든 삶의 공허함을 견디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모든 관계를 체념한 인간이 다치지 않고 생존해 나가려면 상당히 강인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하루키 문학이 일본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어쩌면 그의 등장 인물들이
아픔을 견디는 강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生의 일부로서 죽음과 단절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모든 의미가 상실되어버린 공간에서 혼자일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는,
1970년대로 설정되어 있는 하루키 문학의 감성은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명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번역과 같은 지적이지만 좀 더 자유로운 작업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감당할 만큼만 일을 해서 돈을 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소설은 국내 독서시장에서 우위한 위치를 점유해 왔다.
그 단초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1987년 상실의 시대(원재 '노르웨이의 숲')가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당시만 해도,
누구도 이 젊은 일본작가가 그 어떤 해외 작가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키 신드롬’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한국은 물론 세계의 독서시장에 현대 일본 문학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이후 일본소설의 번역 붐은 ‘하루키 신드롬’의 여파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어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시마다 마사히코 등과
1997년 등장한 재일 한국인 유미리가 ‘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이후 양석일, 가네시로 가즈키,
형월 등등..
그동안 김석범, 이양지 등으로 면면히 이어오며 일본문학의 변방에 위치하던 재일한국인문학도
그 유례가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문학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의 독서시장에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세계문학으로서 입지의 바탕이 되었다.
오에 겐자부로(1935 ~ )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는 1945년 패전 이후 1980년대까지 일본 현대문학의 두 흐름을 대변했다.
1994년 10월 노벨상 시상식에서 오에는‘애매한 일본의 나’라는 제목으로 수상연설을 했다.
26년 전 같은 자리에서 가와바타의 ‘아름다운 일본의 나’ 를 패러디한 것이다.
선배작가에 대해 ‘불손’한 제목의 연설에서 오에는 가와바타를 단호하게 비판했다.
일본적 미학이라는 신비주의에 안주한 가와바타의 문학이 일본과 일본인을 더욱 ‘애매’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나르시스즘’이 일본을 ‘아시아의 침략자’로 만들었다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었다.
평화주의자인 그는 일본 천황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내리는 문화훈장을 사절하면서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오에와 가와바타는 사뭇 대조적인 작품세계를 보여 왔다.
가와바타가 서정성과 자연관에 의존하여 일관된 ‘일본적’서정을 일궜다면,
오에는 일본어의 문화적 귀속성을 배제 세계적 보편성을 지향했다.
오에의 노벨상 수상은 일본문학이 비로서 세계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문학으로 평가 받았다는 의미다.
이런 기반위에서 일본문학은 침략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부흥,
– 50년대 한국 전쟁과 6~70년대 베트남 전쟁은 패전 후의 일본 복구에 신이 내린 기회였다 -
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문화로 공공하게 얽혀있는 현대 문학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지각변동을 했다.
탈 이념과 탈 엄숙주의 탈 중심의 자유분방한 문화생산과 소비란 대중문화의 감각으로 단련된
새로운 문화세대의 흐름으로 ‘신세대 작가’가 대거 출현했다.
그 대표주자가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 소설에는 ‘빈곤’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버는 대학생도 이성과 데이트 할 때면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등장인물들은 세련된 감각을 지녔고 옷에 관련해서는 유명 브랜드의 상호도 기술된다.
또한 하루키 소설의 인물들은 ‘속해’ 있기를 거부한다.
일반적 의미의 직업이 아닌 광고회사 경영자, 레스토랑 주인, 모델, 컴퓨터 그래머 등 이들은 소속의
중압으로부터 자유롭다.
대등한 소비문화를 향유하지만 간섭을 거부하는 ‘개성세대’가 꿈꾸는 세계다.
하루키는 1960년대 전후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보내며 미국적인 것과의 동거를 했다.
헐리우드 영화광에다 3,000장이 넘는 재즈음반 수집가, 고교시절부터 펄프 픽션 수백권을 독파한
그에게 미국의 대중문화와 소비문화는 완벽한 픽션을 보장해 주는 장치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세계의 젊은 독자들이 지난 30년간 하루키에 열광하는 것은 공통의 끈이 있기 때문이다.
그 끈은 경제발전에 따른‘사회진화’다.
이들의 키 워드는 대중문화와 자본주의다.
또한 팝 뮤직과 재즈, 헐리우드의 영화 등 가식적인 교양주의를 거부하고 대중문화에 편견 없이 열광한다.
‘기분과 취향’ 즉 소설 속 주제는 ‘자본주의’다.
좋은 옷차림, 스파게티와 캔 맥주 그리고 여행...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모차르트와 바하를 듣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다.
결국 무라카미 문학이 제시하는 생존방식은 전후 미국이나 일본이 구축한 번영 즉 '소비' 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균적 소비문화를 누린 이른바 ‘ 풍족세대’가 독자층이다.
이념의 시대가 끝나고 스스로 자본주의의 향유를 숨기지 않고 오로지 ‘기분과 취향’에 따른 가볍고 밝고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 집단이 사회의 중심층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실존양식'을 대표하는 작가다.
특히 일본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사이에 하루키는 문학작품 뿐 만이 아닌 그의 생활방식까지도 따라하면서
그에게 열광하는 두터운 메니아층이 형성되었다.
출판도 되기 전 이미 수십만권이 예약 판매되는 하루키의 세계적 공시성은 금기였던 ‘하위문화’를 창작영역에
편입시킨 ‘일본문학’이 아닌 ‘일본어 문학’의 진화인 것이다.
저자는 「상실의 시대」 서문에서,
내가 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라며,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다"
고 적었다.
여기서 사랑이란 이성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 : 윤상인 '이종교배' 시대의 일본문학 ‘나는 국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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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화과
68세대.
중학교 시절부터 러시아 문학,미국문학,재즈에 관심이 많았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1981년 와세다 문학의 편집 위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영화화 됨.
현재까지 장·단편 소설, 번역물, 에세이, 평론, 여행기 등 다양한 집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속편 격인
<1973년의 핀볼><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원형을 이루는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 비롯하여 인기작가로 자리매김 해준
<양을 쫓는 모험><빵집 재습격><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댄스 댄스 댄스><태엽 감는 새 연대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렉시턴의 유령>
<언더그라운드><스푸트니크의 연인> <해변의 카프카>...외
알려진 대로 대학에 재학 중인 스물두 살의 이른 결혼으로 가장이 된 하루키는 째즈 카페를 운영하여
생할비를 마련했다.
가게 때문에 대출한 빚을 갚기 위해 수입을 고민하던 중 돈을 벌기위해 등단을 결심한다.
이후 그는 글을 쓰기위한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담배를 끊고,
10시면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글을 쓴 후 10km 달리기를 시작했다.
낮잠을 잠깐 자거나 수영이나 산책을 하고 장을 봐서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책을 좀 보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단순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50년 넘게 이어왔다.
때론 지루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인내하면서 쓰고 싶다는 결심을 진짜 쓰고 있는 모습으로 바꾸는 것,
생각만으로는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1. 자기관리 : 작가는 삶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2. 지속가능 : 건강과 끈기 .. 꾸준히 해라
소설가의 자질은 집중력과 지속력 즉 작가 황석영씨가 말했 듯 글쓰기의 자질은
‘엉덩이로 오래 뭉기기’인지도..
3. 지루하게만 보이는 하루하루에서 하루키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