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1월 1일, 터키 의회는 참석자중 1명을 제외한 전원의 찬성을 통해 술탄제를 폐지하고 터키는 공화국임을 선포한다. 마지막 술탄 메흐메트 6세는 11월 17일 이스탄불에서 도망감으로써 600년에 걸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그 종말을 맞는다.
...여기까지는 좋다.
1924년 3월 3일, 세속주의를 표방한 케말 파샤와 국민의회의 뜻에 따라 마지막 칼리프 압둘메지드 2세가 이스탄불을 떠남으로써, 무함마드(마호메트) 사후 최초로 칼리프 위에 오른 아부 바크르 이래 1400년간을 이어져 내려온 칼리프제도가 끝을 맞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아니 술탄이나 칼리프나 어차피 지배자고 술탄을 쫓아내고 공화국임을 선포했으면 그걸로 끝인거지, 칼리프는 왜 남겨놓고 2년뒤에 쫓아내는 짓거리를 터키 녀석들은 대체 왜 한것이냐, 란 의문이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기독교와는 달리, 이슬람교는 기본적으로 정교일치의 성격을 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와는 달리 이슬람교에서는 종교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곧 정치, 사회 공동체의 우두머리이다. 즉 공동체의 일원을 적의 침략에서 방어하고, 일원들이 사회생활을 안전하게 나갈 수 있게 지킬 의무뿐만이 아니라 올바른 종교생활을 하고 종교의 규율을 지킴으로써 결국 모든 구성원들이 내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로 이끌 의무도 있었다. 한술더떠 이슬람교에서는 법마저도 공동체의 우두머리 손에 달린것이 아닌, 종교의 손에 달려있었다.
이러한 이슬람교의 특징으로 인해 전 이슬람 공동체의 세속적, 종교적 분야 모두를 아우르는 지도자인 칼리프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칼리프의 존칭중 하나인 '신도들의 우두머리'(Amir al-Muminin)이라는 칭호는 칼리프가 모든 신도들을 다스림을 보여준다.
이처럼 칼리프라는 존재가 전 이슬람 공동체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면 모두를 통제하는 강력한 권한을 지닌 존재다보니 그에 따르는 요구조건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칼리프는 일단 올바른 신앙인이어야 했으며, 이슬람법의 해석과 판결에 능해야했고, 공명정대해야했으며, 정의로워야 했고, 덤으로 꾸라이쉬 부족(무함마드가 속해있던 부족)이어야만 했다.
인간이 이럴수는 없다. 하나나 두개 정도는 빠져있어야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매번 이런 조건을 다 만족하는 성자같은 인물을 데려올 수는 없는 판국이다. 당연히 시작한지 얼마 안되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하기는커녕 이런 요구조건의 정확히 반대되는 사람들이 칼리프위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칼리프의 권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칼리프에게는 권한은 주어졌으나, 비잔티움의 황제나 페르시아의 샤, 중국의 천자와 대등한 위세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슬람교에서는 전제적인 통치를 부정한다. 지도자는 이슬람의 원리에 따라서 신자들을 내세에 구원받을수 있게 통치해야지, 자기 멋대로 설치고 깽판치는 통치자는 (적어도 마음속으로는)인정받지 못했다. 부족장을 부족민의 회의로 선출하던 전통 아랍 유목사회의 풍습은 이슬람 초기 시기까지 전해졌다.
무함마드 사후 처음 칼리프에 오른 아부 바크르나, 우마르, 우쓰만 모두 공동체의 주요 임원들의 회의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그렇기에 이들 칼리프들을 인도된 칼리프(al-Khulaf?’ur-R?shid?n),또는 정통 칼리프라고 불린다. 정통 칼리프라고 불리웠음에도 이들 중 제명에 죽은 사람은 아부 바크르 단 한사람밖에 없다.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 역시 정통 칼리프에 들어가나 그는 이전의 칼리프들과는 달리 신도 전체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일은 여기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알리에 대항해 칼리프를 칭한 우마이야 가문의 무아위야 시기부터 칼리프는 비잔티움의 황제, 페르시아의 샤와 비슷해져간다. 그는 이슬람세계에서 최초로 세습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가장 뛰어난 사람을 칼리프로 선출하는 것이 기본이다. 칼리프의 아들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반대의 경우가 오히려 허다하다. 취지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는데, 가장 뛰어난 사람의 조건을 잡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무아위야는 그러한 애매함은 결국 내분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고(자기같은 인간이 또 나타나면 곤란하니까)부자세습제를 갖추어 나간것이다.
당연히 무슬림들은 반발했고, 이에 무아위야는 전통을 따르는 척 회의를 개최한다. 그가 아들 야지드를 칼리프에 세울거라고 말하자 무시무시하게 저항하는 무슬림 대표들. 이때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서서 말한다.
"신도들의 우두머리는 바로 저분이시오!" 그러고서는 무아위야를 가르켰다.
"다음 우두머리는 바로 저분!" 그러고서는 야지드를 가르켰다.
"대항하는 자에겐 오직 이것뿐!" 그러고서는 칼을 가르켰다.
모두 그 후로는 반대하지 않았다. 아까까지 신나게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벙어리가 되버린건지, 아니면 갑자기 마음이 바뀐건지는 오로지 신만이 아실 일이다. 아무튼간에 이 회의로 선출제도는 싹 사라져버렸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든 뒤집어씌우기 위해 '한명'에 의해 선출되어도 선출은 선출! 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펜은 척 노리스의 손에 들려있을때만 총보다 강하다.
이처럼 칼리프가 가져야할 기본 요건(당장 야지드부터 대단한 애주가였다!)이 무시되고, 그 선출방식도 무시되고, 나중에는 칼리프의 통치권한도 무시되고 말았다.
우마이야조는 오래 가지 않았고, 압바스조는 오래갔으나 칼리프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던 세월이었다. 자신들이 돈 주고 사온 터키인 노예에게, 나중에는 부예이흐인들에게, 사만인들에게, 투르크 군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되는 세월이 열리자 신도들의 우두머리니, 예언자의 대리인이니 따위의 칭호는 예배때만 불려지고 잊혀지는 허망한 칭호가 되버리고 말았다.
이때 등장한것이 바로 술탄(sultan)이다.
칼리프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통치를 했다. 다만 이전에는 아미르(영주) 라던가, 익쉬드(총독) 같은 식의 칭호를 가졌으나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칼리프를 가지고 놀게 됨으로써 활성화된 칭호가 바로 술탄이었다.
칼리프가 정치, 사회, 종교 이슬람 공동체의 모든 면을 총괄하는 직위인것과는 달리 술탄은 정치, 사회적인 세속적인 면만 다스린다. 술탄은 칼리프처럼 이러저러한 도덕적인 자격요건을 만족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냥 힘만 강하면 됐다. 교양은 있으면 좋은거고 없으면 그만이었으며, 신앙심은 계속 통치하고 싶다면 가지고 있는 척이라도 할 필요가 있었다. 학자들이 변질한 칼리프위를 옹호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했지만, 술탄의 경우는 그러한 거추장스러운건 필요가 없었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원래는 그냥 술탄이었다. 1517년, 셀림 1세가 이집트의 맘루크조를 무너뜨리고 맘루크들이 옹위한 압바스 칼리프에게서 칼리프위를 양도받음으로서 오스만의 술탄은 칼리프도 칭하게 된다.(이는 일반적인 주장이나,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정작 오스만 제국이 강할때는 허망한 칼리프의 칭호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았다. 1774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크림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상실한 오스만 술탄은 체면을 지키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크림 지역의 무슬림에 대해 칼리프로 남게 됨을 러시아에게 인정받게 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민족주의에 대한 방안으로 범이슬람주의를 주장했고, 오스만의 칼리프겸 술탄은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했다. 다만 그 칼리프겸 술탄이라는 작자가 앞뒤로 꽉 막힌 전제군주였다는게 문제였다.
<그 문제의 인물. 압둘하미드 2세>
결국 압둘하미드 2세는 청년투르크당에 의해 쫓겨나고, 청년투르크당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열심이었던 친구들답게 범이슬람주의는 걷어치우고 투르크 민족주의를 주장하다 아르메니아에서 그만 대형사고를 쳐버리고 말았다.
터키인들이 칼리프를 유럽으로 내쫓은 뒤, 이슬람 세계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수니파 칼리프를 인정하지 않고 숨은 이맘을 기다리고 있는(현재 한 800년정도 됐다. 3000년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유태인들보다야 짧지만)시아파 이란인들이야 수니파 칼리프가 쫓겨나던 목을 매던 생체실험을 당하던 알바 아니었으나 이집트나 인도 등지의 수니파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설령 이름뿐인 칼리프더라도, 그 이름이 미치는 영향은 20세기 들어서도 막중했던 것이었다.
첫댓글 진짜 꽉막히게 생겼네요.. 한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ㅋㅋ ㅡㅡㆀ
뭘봐 임마
내가 수염깎아주고 싶다
근데.. 그당시 터키로서는 범이슬람-범오스만-범투르크 로 이어진 정책이 당시에는 (자기딴으로는) 그거 말고 선택권이 없었다고 봅니다만;;
술탄은 세속군주고 칼리프는 종교적 지도자 아닌가요??
역시 좋은 취지로 해도 결국 변질될 수 밖에 없나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