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성인은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거쳐 성 십자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하였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안고 작은 형제회로 소속을 옮겼다. 모로코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성인은 파도바에서 뛰어난 설교로 많은 이를 주님께 이끌었으나 1231년 열병으로 서른여섯 살에 선종하였다. 성인은 이례적으로 선종한 이듬해에 바로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 시성되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를 뛰어난 설교자요 곤경 속의 전구자로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그의 도움으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제1독서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렸다(야고 5,18 참조).>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8,41-46
그 무렵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니, 이제는 올라가셔서 음식을 드십시오.”
42 아합이 음식을 들려고 올라가자, 엘리야도 카르멜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으로 몸을 수그리고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묻었다.
43 엘리야는 자기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펴보아라.” 하고 일렀다.
시종이 올라가 살펴보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야는 일곱 번을 그렇게 다녀오라고 일렀다.
44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시종은
“바다에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야가 시종에게 일렀다. “아합에게 올라가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병거를 갖추어 내려가십시오.’ 하고 전하여라.”
45 그러는 동안 잠깐 사이에 하늘이 구름과 바람으로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병거를 타고 이즈르엘로 갔다.
46 한편 엘리야는 주님의 손이 자기에게 내리자,
허리를 동여매고 아합을 앞질러 이즈르엘 어귀까지 뛰어갔다.
복음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도하고 예물을 바쳐도 정말 아무 쓸모 없는 경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은 타인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자격입니다. 빚이 없다란 뜻입니다. 내가 부모 때문에 의롭게 되었는데, 형제를 괴롭히고 부모에게 찾아와서 예물을 바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타인에게 원망을 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책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메이콤을 배경으로,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주인공은 어린 소녀 스카웃 핀치와 그녀의 오빠 젬 핀치이며, 그들의 아버지 아티커스 핀치는 마을의 변호사입니다.
스카웃과 젬은 동네에서 이상하다고 소문난 부 래들리의 집 앞에서 노는 걸 좋아합니다. 부 래들리는 일체 마을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에 고마워 그들이 노는 나무 앞에 간식을 놓아두곤 하였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아티커스는 도덕적 용기와 정의를 중요시하는 인물로, 아이들에게 항상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자 노력합니다. 아티커스는 흑인 남성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종차별이 심한 메이콤 마을에서 용기를 보여줍니다. 톰은 백인 여자 메엘라를 강간하려고 했다는 것으로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메일라가 톰을 끌어들인 것이고 그녀의 아버지 밥이 그것을 보고는 메엘라를 구타하고 톰을 강간범으로 몰아버린 것입니다.
아티커스는 스카웃과 젬에게 항상 타인을 이해하고, 편견을 갖지 말며,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버지가 톰 로빈슨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놀림과 비난을 받습니다. 젬은 이러한 상황에서 화가 나고,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티커스는 그들에게 인내와 용서를 가르치며,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알려줍니다.
아티커스는 젬에게 총을 선물해 주면서 다른 새는 다 잡아도 되지만, 앵무새는 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앵무새는 아티커스가 변호하는 죄 없는 톰과 같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사실 밥이 못된 인간이고 자기 딸의 잘못을 톰에게 뒤집어씌운 것을 밝혀내기는 했지만, 배심원들이 다 백인이었기 때문에 톰은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밥은 여전히 판사의 집을 습격하고 애티커스의 자녀들을 위협합니다. 짐도 밥에게 팔이 부러지는 공격을 당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 밖으로 안 나오던 부 래들리가 나와 밥과 싸워주었고 밥은 칼에 찔려 사망합니다. 다행히 보안관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냥 자기 혼자 넘어져 그렇게 된 것으로 목격 증언해 주겠다고 하고 마무리됩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아버지 아티커스 핀치의 도덕적 가르침과 용기를 통해 스카웃과 젬이 세상의 편견과 불의를 극복하고, 타인과 화해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역할은 이 책에서 형제간의 관계 회복과 성장을 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정말 주님 앞에 예물을 들고나와도 소용없는 사람은 타인에게 원망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앵무새를 죽인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하.사.시.]에는 이것이 조금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바리사이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 가난한 이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존재였고, 세리는 죄인이기는 하였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바리사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대신 갚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사이는 많은 돈을 바쳤고 세리는 감히 나서지도 못했지만, 누가 의롭게 되어 돌아갔는지는 우리가 잘 압니다.
우리가 기도나 미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양심 성찰이 이것입니다. ‘나 때문에 마음이 상한 사람은 없는가?’ 앵무새를 살리려고 목숨을 거는 아버지에게 앵무새를 죽이고 와서 죽은 앵무새 고기를 바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혹시 레밍(lemming)을 아십니까? 어느 정치인이 우리나라 국민을 빗대서 ‘레밍’이라는 표현을 써서 거의 모든 국민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그네쥐라고 불리는 이 레밍은 자살하는 쥐로도 유명합니다. 일정 수 이상의 개체가 밀집하면 메뚜기 마냥 갑자기 행동 양식이 바뀌어서 떼를 지어 무작정 몰려다니는 기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이가 바닥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행동이지만, 한번 떼를 짓는 순간 무작정 앞을 향해 직선으로 우르르 몰려가기만 한다는 게 이상한 점입니다. 이러다 보니 땅끝 해안 절벽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우르르 떠밀려 바다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살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가 미화되어서, 개체군의 밀도가 높아지거나 먹이자 부족해지면 늙은 쥐들이 후손을 위해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단지 습성이었고, 벼랑 끝에서 멈추지 못하고 뒤따르는 다른 쥐에 밀려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고귀한 동물처럼 생각했지만, 사실 레밍은 군중심리로 인해 비이성적, 비합리적 행동을 생각 없이 집단으로 하다가 파국적 선택으로 자멸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때로 남들처럼 살려고 합니다. 나만의 삶이 아닌 너의 삶, 그리고 그의 삶을 살려고 합니다. 나답게 살지 않을 때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작정 앞으로만 갈 뿐입니다. 혹시 레밍처럼 절벽 아래까지 무작정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남들의 삶이 세상의 뜻만을 따르는 삶입니다. 남들처럼 풍요와 안정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가는 나만의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없게 됩니다. 끔찍한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잘 아는 율법의 내용을 뛰어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살인해서는 안 되나.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라는 율법 내용의 준수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서도 안 되고 또 ‘바보!’라고 말해서도 안 되며, ‘멍청이!’라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아닌, 어떻게든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나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들처럼만 살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남들도 다 그렇다면서 그렇게만 살게 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결정했어도 행동하지 않았다면 결정한 게 아닙니다(토니 로빈스).
사진설명: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첫댓글 안토니오 축일 맞아, 세상을 떠난 이상은 안토니오 연령회장님을 기억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