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의 고조 할애비는 이성계이고,
이성계의 5대조는 이의민이며, 그의 애비는 중국에서 온 소금장수였으며 애미는 관기(창녀)였는데,
고려황실에서 이의민의 용력이 뛰어 나서 장수로 등용을 하였으나 역심을 품고
황제 "의"의 허리를 꺽어 살해한 대역죄를 저질렀다.
(출처 : 고려사)
그래서 이의민의 식솔은 거의 대부분 멸족을 당했으나
그중 일부가 살아 남아 함흥으로 도망 쳐서 여진족으로 신분세탁을 하였고,
이의 앙심을 품고 결국 5대손 이성계가 천손 고려황실을 파괴하고, 황제를 시해하였으며
스스로 짱깨국 명(明)의 신하국(속국)을 자처하여 "왕"의 지위를 책봉받았다.
세종은 스스로 코리안의 언어를 창제하였다고 출판사에서 세뇌를 시키고 있으나,
다만 그의 신하인 집현전 학사들에게 각 지방의 방언을 정리하여 단일화하라고 명하였다.
그것은 작금의 "표준어사용법"과 같이 코리안의 언어를 파괴하는 문화파괴(언어파괴)의 한 방편이었다,
즉, 다양한 지방 방언을 이때 부터 모두 사투리라는 먹칠을 하며 파괴하였던 것이다.
코리안의 언어를 우랄 알타이어라고 칭함은
그 언어의 시발점이 알타이(대몽골족)에서 출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코리안의 언어의 문법체계가 이를 따르고 있음을 보면
세종이 코리안의 언어를 창제하지 않았다는 명제가 더욱 간명하게 설명이 된다.
세종은 "종모법"등등을 제정하고
이것을 이용해 코리안의 아녀자들을 씨받이로 전락케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이성계가 고려황실을 파괴하고, 무려 약 300만명을 살해했는데 이들은 모두 남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처자식들은 모두 중국인 짱깨 한민족(한족)의 씨받이가 되게 하였으며,
그들로 부터 생산한 자녀들도 모두 노예(노비)가 되었다.
당시 인구가 약 1천만명이었고
지금 남북 및 만주일대의 코리안이 모두 약 1억5천만명쯤 되므로,
역산하면 약 4천500만명을 죽였고 그들의 아녀자들과 딸들을 모두 짱깨들의 씨받이가 되게 한 것이다.
제공 : 코액션The Korean Actions(大高麗國復興會) : http://www.koac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