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금과 권력
'군주의 취미생활' 전쟁에 빠져
3년치 예산 탕진한 루이16세
세금 더 걷으려다 반발 직면
혁명으로 번진 끝에 결국 몰락
민주주의 역사는 조세저항 역사
영국 '마그나 카르타' 핵심도
결국 '세금 멋대로 걷지 말라'
1789년 10월 5일, 수천 명의 프랑스 ‘아줌마’들이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 궁전으로 행진을 시작한다. 여성도 아니고 여인도 아닌 아줌마라는 단어를 쓴 것은 비하 의도가 아니라 이 집단의 뉘앙스를 살리는 데 이만한 단어가 없어서다. 이들은 파리의 생선 장수였다.
억척스럽고 힘까지 좋은 이 근육질 아줌마들이 생선 다듬는 칼을 들고 20㎞에 달하는 행진을 벌인 것은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조언했다는 루머가 파리 시내에 퍼졌고 그 말에 ‘꼭지’가 돌아버렸기 때문이다.
베르사유를 포위한 이들은 여섯 명의 대표를 뽑아 루이 16세에게 면담을 요구한다. 접견실로 왕이 들어오는 순간 이 중 한 명이 충격과 감동으로 기절한다. 말로만 듣던 왕을 처음 본 데다 루이 16세의 풍채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스탕달 신드롬인데 엄청난 명작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곤란, 현기증, 전신마비 등의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아줌마들은 국민회의가 결의한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던 루이 16세의 파리 귀환을 요구했고(귀환이라고 쓰고 포획이라 읽는다), 기어이 파리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사태는 루이 16세가 자초했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군주의 취미생활이다. 무려 72년 집권 기간 중 절반을 전쟁터에서 보낸 태양왕 루이 14세는 증손자인 루이 15세에게 원금만 20억리브르라는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돌아가신다.
유능하지도 않으면서 취미생활은 포기하지 않았던 루이 15세는 이익이 불분명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끼어들어 또 빚을 늘렸고, 루이 16세에 이르면 정부 수입의 대부분이 이자를 무는 데 들어갔다. 선대를 보고 반성할 만도 한데 그 역시 취미생활을 화끈하게 했다.
1763년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프렌치-인디언 전쟁에 20억리브르를 쏟아부은 것이다. 20억리브르는 대체 어느 정도 액수일까. 놀라지 마시라. 3년 치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자 700만 명에게 집과 먹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니 당시 프랑스 국민 2500만 명 중 4분의 1 이상을 구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세금을 더 걷어보겠다고 삼부회(성직자, 귀족, 평민)를 소집했고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가다 보니 헌법을 만드네 어쩌고 하다가 혁명으로 번진 끝에 본인의 목이 날아간 것이다.
1789년 10월 5일 베르사유궁전으로 행진하는 여성들을 그린 일러스트.
인간은 빼앗기는 일에 대단히 예민한 존재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용서해도 내 돈 빼앗아간 놈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눈이 쌓였는데 나와서 치우면 1만원 준다고 해보라. 아무도 안 나온다. 그깟 1만원, 소맥 한 번 덜 말아먹고 말지 한다. 그런데 1만원을 뺏는다고 하면 골절 환자도 빗자루를 들고나온다.
눈 치우는 거야 선택의 여지라도 있지 세금은 피할 수도 없다. 해서 안 내고 버티는 것은 피지배계급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다. 세금 안 내려다 보니 발생한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조세 저항의 역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영국 헨리 2세의 불효막심 4형제 중 막내인 존 왕은 세금과 관련해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긴다. 이 사람 별명이 실지(失地)왕이다. 백년 전쟁 동안 영국이 프랑스에서 피 흘려 확보한 땅을 혼자 힘으로 다 잃었다. 프랑스와 싸우고, 국내 귀족들과 싸우고, 교황하고 싸운 끝에 고립무원이 된 존 왕은 마지막으로 오스만제국의 술탄에게까지 손을 내민다.
자기를 도와주면 개종하겠다고 제의했는데 그리스도교 군주로서 발상이 너무 참신하고 신선하다. 하도 어이가 없는 제안을 하는 바람에 오스만 술탄은 교지를 들고 온 사절에게 물었다.
“너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사절은 양심적으로 대답했다. “우리 왕은 결코 신뢰할 수 없는 분입니다.” 이 발언이 아니었더라면 서양 그리스도 왕국에서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왕이 나올 뻔했다.
전쟁의 맛(지는 것도 맛인가)에 빠져 있던 존 왕은 세금을 걷어 또 전쟁을 시작하려 든다. 마른 오징어 짜기에 견디다 못한 귀족들이 들고일어났고 기댈 곳 없던 존은 반란군이 마련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으로, 핵심은 ‘왕의 명령만으론 세금 불가’다. 세금 멋대로 걷지 말라는 얘기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자. 애초에 루이 16세가 세금을 걷으려던 대상은 평민이 아니라 면세 기득권인 귀족과 성직자였다. 왕은 국내에 연고가 전혀 없는 스위스 은행가 네케르를 칼잡이로 고용한다. 기득권이 맹렬하게 반발하자 네케르는 “보라, 이 세금 도둑놈들을!” 하며 국가의 세입과 세출을 시민들에게 공개해 버린다.
안 했어야 했다. 국가 세입 2억6000만리브르 중 왕가에 들어가는 돈이 2500만리브르나 된다는 사실에 평균 연봉 100리브르의 평민들은 충격을 받는다. 의도와는 달리 왕이 공격 대상이 됐고 화가 난 루이 16세는 네케르를 해임한다. 이 조치에 파리 시민들이 격분했고 폭동이 바스티유 함락으로 이어진 끝에 피의 광풍이 몰아친다.
해서 세금, 잘 걷어야 한다. 오래 버틴 나라들의 공통점은 세금 걷는 스킬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그 모범을 제대로 보여준 게 영국이다. 어떻게? (다음 회에 계속)
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