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呑虛)와의 만남
나는 학문이 도저하단 사람을 일부러 먼저 찾아간 적이 없다. 내가 도도해서가 아니라 그런 만남은 필야 논쟁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논쟁을 싫어한다. ‘물어서 분변하는 것’(問以辨之)은 학문하는 자의 덕목이라는데 나는 본래 학문할 위인이 못 된다. 나는 맹자의 말마따나 오는 자 막지 않고 가는 자 좇지 않을 따름이다. 여기서는 오는 자 막지 않았던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한번은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는데 어느 날 월정사의 탄허 화상이 내가 잘 아는 어느 군법무관의 차를 타고 사전 연통도 없이 갑자기 대구로 나를 찾았다. 저녁 무렵이었다. 표충사 사명당 비석이 땀을 흘린다기에 그걸 측정하러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수인사를 건넸다. 서로 별말이 없이 차 한 잔을 나누고 헤어졌다. 몇 해 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탄허를 또 만났다. 탄허가 자기 집에 왔다면서 전번의 그 군법무관이 지프차를 가지고 뜬금없이 나를 데리러 왔다. 거절하기가 야박해서 차를 탔다. 동대구역을 지날 때였다. “중이 웬 여자를 끼고 왔노?” 이 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왔다. 말을 해놓고 보니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들짝 놀라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운전기사도 운전대가 흔들 했다. 나는 말이 궁해서 웃음으로 눙치려 했으나 그는 재우쳐 물었다. 나는, “저 앞에 가는 차의 번호에 씌어 있지 않소?”라고 했다. 동문서답이다 싶었던지, 물어서 안 될 일이다 싶었던지 더는 묻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속으로 공자님 말씀을 했다. "수를 지극히 해서 올 걸 아는 것 이걸 점이라 한다(極數知來之謂占)" 그 집에 가니 비구니 둘이 탄허와 같이 있었다. 두 비구니가 나한테 바투 다가앉더니 사람을 못 살게 했다. 그 중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여승은 알고 보니 과는 다르지만 대학 후배였다. 탄허는 엽전을 던지고 있었다. 중이 점을 치다니, 듣던 대로 괴승이구나 싶었다. “성인도 점을 안 치면 미래를 모른다.”라고 탄허는 혼잣말을 했다. 엽전을 던지지 않고도 그냥, 탄허 곁에 여자가 있단 걸 알았으니 점은 내가 한 수 윈 것 같았다. 탄허와는 이때에도 서로가 송아지 개 보듯 했다.
내가 탄허를 심드렁하게 대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두 만남보다 앞서 수년 전에 내가 서울에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대학 선생을 하는 친구에 끌려서 탄허의 법회를 구경하러 개운사로 갔었다. 개운사는 고려대학교 뒷산 골짜기에 있는 절인데 학교 다닐 때 더러 가본 적이 있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법회는 이미 무르익어 있었다. 탄허와 수인사는 없었다. 법회 도중에 탄허가 정색하고 말하길, 자기는 백이십 년을 산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기고만장한 태도가 내 성미에 맞지 않아 나는 두 번째 대면에서도 첫 번째 대면에서처럼 속으로 『유마경』을 넘길 뿐 그와 말을 건네고 싶지 않았던 거다. 탄허도 별 말이 없었다. 바둑판을 사이에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면 보는 사람이야 흥미가 있겠지만 두 사람은 벙어리 호적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중생의 묵언을 적어도 탄허쯤 되면 어찌 알아듣지 못했겠나. 붙어봤댔자 조수미와 배삼룡, 소프라노와 코미디언의 대결이 되거나 한껏 흥행에 성공한다 한들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 복싱과 프로레슬링의 세기의 대결에 그칠 것을 탄허도 알았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탄허의 상대가 못 되는 줄 세상이 다 일 텐데 나를 이겨 본다 한들 대단한 것도 아니며 만에 하나 실수로 나한테 말이 한마디라도 막힌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탄허가 뭐 하려고 나를 저울질 하려 하겠는가.
그밖에도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더러 나를 찾아온 적이 있지만 하나같이 품속에 저울 하나를 숨기고 온 자들이라 소개할 가치가 전혀 없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모순되게끔 생래적으로 고독을 사랑한다. 삼사십 년 전 이래 지금까지 나의 강의를 들은 사람 말고는, 이런저런 일로 해서 개별적인 만남은 더러 있었지만, 문학 모임이나 학술 세미나 같은 데에서 나를 보았단 사람이 있는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세월을, 기나긴 세월을 귀양살이하는 사람처럼 삭거했다. 무단히 그랬다. 팔자인 것 같다. 벗이 있었다면 딱 하나 그 이름 상우(尙友)요, 낙이 있었다면 새벽 산책이다.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이 있었다면 시와 수필이다. “거문고 소리 맑으면 학이 저절로 춤추고 꽃이 웃으면 새가 응당 노래한다.”(琴淸鶴自舞 花笑鳥當歌) 돌아앉아 거문고 줄이나 골랐다. 두문사객(杜門謝客), 주제넘은 말로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이 옥 항아리 속에 담겼다.”(一片氷心在玉壺)라고나 할까. 탄허가 내 집가지 찾아 온 것은 나를 당대 제일의 역학자라고 하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인 것 같거니와 만나고 보니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만만해서 편했던 모양이다.
덕(徳)의 도둑이라는 이른바 향원(鄕原〈愿〉)은 어디에도 있다. 이런 가짜는 초미세먼지다. 부지불식간에 대중의 건강을 해친다. 과학적 방법이 아니면 초미세먼진 줄 알지 못하고, 대방가가 아니면 엉터리 학자인 줄 알아보지 못한다. 대중이 측은하다.
“샅샅이 찾고 뒤져 흠 하나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는 게 원숭이 같다. 왕개미가 큰 나무 흔들어 본들 잎사귀 하나라도 떨어질까 보냐?” 정약용도 속사의 깨죽거림에 속이 좀 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카페에 글을 올렸다가 내릴 때가 퍽 많다. 주로 댓글 때문이다. 댓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원숭이와 왕개미 같은 댓글, 논쟁이 아니라 아얘 시비조로 대드는 댓글, 이런 댓글에는 답변을 할 줄 몰라서이다. 씨름에서 뭐라더라, 납작 엎드렸다가 슬쩍 앞으로 빼며 상대를 제바람에 엎어지게 만드는 기술. 나는 그런 수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별로 준수하지도 못한 코를 다치기 일쑤다.
소매치기를 본 사람이 소리쳤다. 소리쳤던 사람은 소매치기한테 갈비뼈가 부러졌다. 탄허는 나를 보고 소리치지 않았다. 갈비뼈가 걱정이 되었던 건 아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