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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열려진 지혜의 눈 (시2-90)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찬양 : 오직 주만 따르리
본문 : 시90:1-17절
☞ https://youtu.be/hxmy1MqWdZA?si=6ozv0OTH279qeZ2P
어제는 사단법인 이사회 소집을 위한 시간을 조정하려 했지만, 모두가 참여할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아 조금 더 조정 시간을 가지려 한다. 조정의 시간을 더 갖는 것은 소중한 분들과의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사회가 늦어진 것은, 대표로서 해야 할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고 모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처리할 것을 처리했고, 내 결정을 완료하였다. 이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소중한 분들과 최종 결정을 한 후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고 싶다.
오늘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주일 사역을 준비하는 자로 선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말씀이 나라는 존재를 통과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전해지도록 몸부림치는 이 작업은 늘 어렵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록된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통해서 해석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재해석되어 전달되도록 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란 필터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이 볼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된다.
말씀이 가진 원문의 뜻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해석하는 일과,
나란 필터가 가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무엇인지를 아는 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일이 하나가 될 때
설교는 완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어를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편 90편을 보면서 오늘 가장 내 눈을 사로잡은 구절은 10절의 말씀이다. 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오늘은 특별한 관점에서 이 장면을 묵상하게 된다.
우선은 모세가 80이란 나이에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초점이며,
두 번째는 이 시기 모세가 매일 마주했던 풍경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민수기 14장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 하나님의 불신앙에 대한 심판으로 출애굽 1세대 장정 60만 명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40년 동안 매일 평균 40여 명의 장례를 치러야 했던 셈이다. 모세는 수많은 동료와 제자들이 광야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하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덧없는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90편에는 이런 모세의 관점이 보인다. 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티끌(dust)’로 돌아가게 하신다고 탄식한다. 이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타락 이후 선포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심판의 메아리다.
모세는 인간이 겪는 죽음과 고통을 단순히 자연적인 노화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와 심판의 결과로 이해했다.
인간의 생명은 ‘홍수처럼 쓸려가는 것’ 같고, ‘잠깐 자는 잠’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다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광야의 풀은 밤새 내린 이슬로 아침에는 잠깐 푸르름을 뽐내지만, 낮의 뜨거운 태양열 아래서는 순식간에 말라버린다.
모세는 광야에서 수많은 장례를 치르며, 인간의 영광이 얼마나 일시적인지를 이 ‘풀의 비유’를 통해 절감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얼굴빛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8절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모세는 우리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겼던 ‘은밀한 죄’조차도 하나님의 밝은 빛 아래서는 고스란히 드러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9절에서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 된 인간이 느끼는 삶의 허무함과 신속함을 한마디로 요약하며 10절이 연결되어 나온 것이다.
이것을 모세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80세에 부름받은 모세는 자신이 이미 ‘죽은 자와 다름없는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 자신이 사는 것은
자신의 기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력에 의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란 말이다.
그러면서 그 관점에서 모세만이 보는 위대한 고백이 나온다. 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날마다 광야에서 죽어가는 어르신과 동료와 후배들을 장례하면서 모세는 오늘 자신이 사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시간임을 알고, 또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을 알고 나니 모세의 기도가 바뀌는 것이다.
그의 기도에서 ‘계수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 ‘마나(מָנָה, manah)’는
숫자를 세는 것(counting)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 요나서에서 하나님이 물고기와 벌레,
뜨거운 동풍을 ‘예비(manah)’하셨다고 할 때와 동일한 단어다.
즉, 우리 날을 계수한다는 것은 흐르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하루하루에 특별한 목적을 ‘배정(assign)’하고 그날의 가능성을 ‘준비(prepare)’하는 것을 뜻한다.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시간을 ‘성별’하여 살아가는 능동적인 태도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췌장암 투병 중 이 구절을 묵상하며 자신의 기도가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죽음을 직면했을 때 비로소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새로워졌으며,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켈러에 따르면, ‘날을 계수하는 지혜’란 우리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영적인 근육으로 받아들여,
세상의 일시적인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영원한 가치에 우리 삶을 정렬하는 능력이라고 고백했다. 공감이 간다.
80세의 나이에 사역을 시작한 모세에게 이 기도는 자신의 기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력에 의지하겠다는 전적이 고백이었다.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면, 주님, 제게 남은 하루하루가 당신께서 배정하신 소중한 기회임을 알게 하시고, 이 짧은 인생을 영원하신 당신의 사랑(Hesed)에 잇대어 살게 하소서. 그리고 은총을 베푸사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그래서 그의 기도의 마무리는 이렇게 되어진다. 17절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그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맡기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비록 광야에서 마감되고 있는 많은 백성을 향해,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이 한 수고가 하나님의 영원한 역사 속에 남겨지기를 구했다.
원래 인간의 수고는 결국 수고와 슬픔뿐이어야 마땅한데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지혜를 가지고 그 소중한 날을 살 뿐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견고해지기를 즉, 영원한 가치가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80세에 사명을 시작한 자의 진정한 지혜다. 나의 생명은 짧지만, 나의 손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영원할 것임을 믿는 믿음이 만든 기도임을 깨닫는다. 나이 듦이 이런 지혜가 열려 이런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인생의 길이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으나, 그 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채우는 지혜는 은혜로 얻을 수 있다.
주님, 이 종에게 저에게 허락된 날을 계수하게 하소서. 주께서 배정하신 날의 소중함과 기회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뿐 아니라 이런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우리의 보잘것없는 수고를 영원한 가치로 변화시키는 것이, 은혜로 열린 지혜의 눈입니다>
적용 질문 :
1.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배정’하신 특별한 목적과 거룩한 가능성은 무엇입니까?
2. 인생의 ‘수고와 슬픔’을 넘어서게 하는 ‘아침의 인자하심’을 나는 매일 새롭게 구하고 있습니까?
3. 나의 생명은 유한하나, 내 손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영원히 견고하게’ 남기를 바라는 현재의 사역적 소망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