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에서 침몰하다
연도1912년 4월 15일저자나이절 존스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여 1,517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새로 건조한 화이트 스타 회사의 호화 여객선인 5만 2,000t의 타이타닉호가 1912년 4월 10일 잉글랜드 남해안의 사우샘프턴을
떠나 뉴욕으로 처녀항해에 나섰을 때,
이 배는 그때껏 물에 떴던 최대의 선박이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목적지에 닿지 못했다.
나흘 후 오후 11시 40분, 호화로운 에드워드 왕조풍 건조물이자 과학기술적 쾌거의 상징인 이 거대한 배는
맑은 하늘을 뒤로 하며 빠른 속도로 고요한 바다를 나아가던 중 빙산과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타이타닉호의 측면에는 길고 깊은 상처가 생겼고,
이 거대한 배가 결코 침몰하지 않게 도와 줄 것이라 믿었던 수밀격실(水密隔室)에는 하나씩 하나씩 물이 차기 시작했다.
점차 공포가 고조되면서 두 시간 사십여 분이 지나자,
타이타닉호는 65도 각도로 고꾸라졌으며,
뱃머리 쪽부터 대서양의 얼음 같은 물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작 20대의 구명보트에는 2,200명의 승무원과 승객 중 절반만이 탈 수 있었고,
그나마 일부는 반쯤 빈 채로 물에 띄워졌다.
다음 날 아침 정기선 카르파티아호가 705명의 생존자를 구해냈지만,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를 포함한 1,517명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재난이 발생한 근처에 있었던 배 캘리포니아호의 승무원은 타이타닉이 보낸 SOS 조명탄을 축포로 오인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화이트 스타의 사장인 브루스 이즈메이를 비롯한 남성 생존자 몇몇은
여성과 어린이를 대신 태우지 않고 자기가 살아남았다고 공격을 받았다.
사망자 가운데에는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던 아래 갑판의 3등실 승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985년 로버트 발라드가 이끄는 미국-프랑스 공동 단체가 약 4㎞ 깊이의 바다 속에서 배의 잔해를 발견했다.
이후 그 지점에서 선체의 커다란 앞부분을 비롯해 수천 점의 유물을 인양했으며, 이를 소재로 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