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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달인, ‘허당’ 장혜진 그녀의 삶을 응원합니다 >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기사ㆍ필진 칼럼 박기자의 함께걸음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인권의 살갗 오사카에서 온 편지 UN CRPD NGO연대 활동기 언어와 의사소통장애 도전의 달인, ‘허당’ 장혜진 그녀의 삶을 응원합니다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작성자 최고관리자 기사입력 2020-08-24 11:14 글. 제지훈/사회복지사 X는 욕입니다, ‘ㄴ+ㅕ+ㄴ’ “끄지라, 이 개 같은 X아!” “뭐? 개, 개 같은 X? 으흑흑흑.” 책상에 엎어져 웃는지 우는지 모를 난해한 흐느낌을 남발하는 그녀. “뭐꼬, 뭐꼬, 뭐꼬. 아, 진짜 와 이라노? 미안하다. 내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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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는 욕입니다, ‘ㄴ+ㅕ+ㄴ’
“끄지라, 이 개 같은 X아!”
“뭐? 개, 개 같은 X? 으흑흑흑.”
책상에 엎어져 웃는지 우는지 모를 난해한 흐느낌을 남발하는 그녀.
“뭐꼬, 뭐꼬, 뭐꼬. 아, 진짜 와 이라노?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세상 착하고 순진한 우리 뭐꼬 행님(말을 할 때 ‘뭐꼬’ 세 발을 날리지 않으면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어, 우리 세계에선 ‘뭐꼬 행님’이라 불립니다). 홧김에 내뱉은 말에 짝사랑하는 여인이 서럽게(?) 울어 젖히니, 얼굴은 금세 벌겋게 달아오르고 당황한 입에선 연신 ‘뭐꼬, 뭐꼬’가 오토리버스(자동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좋아한다고 행님만의 방식으로 고백을 했나 봅니다. 물론 이번에도 거절. 북받치는 설움에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일단 입이 이성을 압도한 상태에서 방언처럼 흘러나온 말이 ‘개 같은 X’이었으니, 세상 순진한 사람 입에서 누군들 예상이나 한 말이었겠습니까? 더군다나 쌍욕을 한 장소가 바로 ‘교회.’
캬…, 살다가 교회에서 쌍욕 하는 걸 두 번이나 봤습니다. 한 번은 새벽기도 시간이었는데, 앞에서 기도하시던 분이 이제 막 등록한 새 신자였습니다. 아마도 이 분이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떼였나 봅니다. 새벽, 그 조용한 시간에 한쪽 구석에서 서럽게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 정숙(가명)이 저 X이, 저 뭣 같은 X이 내 돈을 띠묵고…. 아이고, 아이고, 꺼이꺼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습니까만, 내용이 어찌나 웃긴지 이건 뭐 기도에 집중이 안 됩니다. 설교 듣다 집 나간 영혼이 기도 듣고 돌아온 느낌? 하하하. 한참을 집중해서 듣다 ‘아차, 남의 아픔에 위로는 못해줄 망정 즐기면 안 되지’라는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 저 분 기도 꼭 들어주세요. 꼭 들어주세요.” 그렇게 마무리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 사실 안에서 이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때, 저는 일이 있어 밖에 있었습니다. 고성에 쌍욕, 흐느끼는 소리에 안을 들여다보니 세상에, 한 사람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뻘건 얼굴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고, 한 사람은 엎어져 흐느끼고, 주변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행님, 뭔 일인교?”
“뭐꼬, 뭐꼬. 아, 간사님, 내가 지 좋아한다고 뭐꼬 뭐꼬 얘기를 했는데, 안 받아준다 아입니까.”
“행님이 뭐라 캤는데예?”
“뭐꼬, 뭐꼬, ‘나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통장 다 주께. 내 맘을 받아도’ 이랬다 아입니까?”
“행님, 그거 싹 다 마이너스 통장 아입니까?”
황급히 전동휠체어를 몰고 달아나버리는 행님. 에레기, 몇 백 정도는 딱 꽂혀 있는 통장을 들고 와, 보란 듯이 탁 던지며 ‘내 맘을 받아도‘ 이래야지. 쯧쯧.
“혜진 씨, 행님 나갔은께 이제 일어나소.”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나갔어요? 하하하, 살다가 욕 듣고 웃겨 죽을 뻔한 거는 처음이네요.”
그의 도전은 오늘도 ‘현·재·진·행·형’
네. 문제적 당사자의 이름은 바로 ‘장혜진.’
마이너스 통장으로 고백하다 쪽 팔고 나간 뭐꼬 행님도, 지난 번 칼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의 상도 행님도 모두 이 여인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모르죠. 매번 튕겨나가는 것 보고, 겁나서 고백 못한 남정네들이 또 있을지.
나이에 비해 엄청 동안인 얼굴에, 싹싹하지, 손 야무져 음식 잘하지, 손재주는 또 얼마나 좋은지 액세서리며 가방이며, 코로나로 마스크가 부족할 땐 마스크까지 못 만드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거제는 물론 경남을 누비고 다니니, 주변에 장가 못 간 노총각들이 탐을 낼 만하지요. 참, 그 후 뭐꼬 행님은 다른 분 만나 좋은 시절 보내고 계십니다. 하하.
혜진 씨와의 첫 만남은 13, 14년 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대까지 모 대기업 휴대전화 생산 공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서서히 다리에 힘이 없어지더랍니다. 걷다가 가끔씩 넘어지던 것이, 급기야 계단조차 오르내릴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러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퇴직금과 직장동료들이 모아준 위로금으로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에서부터 굿판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과 무속신앙을 넘나들며 그렇게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자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길 수 년. 결국 있는 돈 다 까먹고 지칠 대로 지쳐,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와 3년여의 은둔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 와중에 저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지인 분께서 자기와 친한 동생이 한 명 있는데, 질병으로 걷지 못하게 된 날부터 3년 동안 일체 집 밖 출입을 하지 않아 걱정이 된다며 꼭 좀 만나 상담을 해달랍니다. 상심이 클 텐데 사회복지사라고 무작정 만나자 하면 실례가 될까 봐 조심스레 연락을 취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지훈 사회복지사입니다. OO 씨께 부탁받고 한 번 만나 뵐 수 있을까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네, 안 그래도 언니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오세요.”
생각보다 밝은 목소리로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괜한 걱정을 했나 싶어, 그 길로 20kg 쌀 한 포 챙겨들고 가족들이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로 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니, 뭔 구경이라도 난 듯 집 안 식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혜진 씨와 식구들의 얼굴을 스캔하며 분위기를 살피던 중 깜짝 놀랐습니다. 아, 글쎄, 혜진 씨 여동생이 저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교회동생이었습니다.
“야이, 가시나야. 니는 내가 사회복지사인 거 알면서, 와 언니 이야기 한 번도 안 했노? 진작에 나한테 이야기 했으면 더 일찍 만났을 꺼 아이가. 확, 마.”
다행히 여동생 덕에 분위기는 한결 자연스러워졌지요. 이런 인연이 있나 싶은 것이, 아마도 혜진 씨와 저는 꼭 만나야만 할 운명이었나 봅니다. 하하하.
그 만남 이후 혜진 씨는 다시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은둔생활을 접었지요. 당시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던 자립생활 모임의 핵심 멤버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음식 손맛이 어찌나 좋은지, 집에서는 잘 쓰지 않는 MSG(화학조미료)를 가지고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등 찌개류는 물론이거니와 닭볶음탕, 김치전, 파전, 각종 반찬에 이르기까지, 배고픔에 허덕이던 많은 영혼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때 혜진 씨에게 붙여진 별명이 바로 ‘MSG의 마법사’였습니다.
요즘엔 장애이해교육,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으로 평범하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어 깊은 절망에 빠졌다가, 헤쳐 나와 자립해서 신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가 장애이해교육, 인식개선교육의 헌장입니다. 일부러 감동을 주려 하거나 웃기려 하지 않아도, 진심이 담긴 그녀의 강의는 듣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고 도전과 감동을 줍니다.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삶,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잘 보이지 않습니다. 궁금해서 가족들에게 근황을 물어보니, 돈 벌라고 열심히 핸드메이드 굿즈(Goods)를 만들고 있답니다. 글씨 빼고는(사실 참 악필입니다)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합니다. 각종 액세서리는 물론 마스크, 가죽공예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 만들었다 하면 취향저격, 여심저격입니다. 돈독이 오를 만하지요. 아니, 올라야지요. 나이 들수록 필요한 게 돈인데. (많이 벌거든 옆에 붙어서 좀 얻어먹어야겠습니다. 하하하.)
도전정신도 대단합니다. 딱 봐도 힘없게 보입니다. 비실비실 쓰러질 것 같은데 그 체격으로 휠체어 마라톤, 휠체어 계주를 합니다.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고 팔 근력도 서서히 줄어 비슷한 처지의 남들은 전동휠체어로 갈아타는데, 무슨 멘탈인지 도리어 불가능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캬…, 뭔 양파보다 더 그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게 남았는지, 여전히 혜진 씨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혜진 씨는 어디에 갖다 놓아도 그 자리가 어울립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어느 누구와도 눈높이를 맞춥니다. 누구와도 각을 세우지 않으니, 삶이 늘 둥글둥글합니다. 그렇다고 완벽하진 않습니다. 남들 다 알아듣는 말도, 몇 번씩 설명해도 이해 못할 때가 있습니다. 철석같이 믿고 있다 뒤통수 맞을 때도 많습니다. 남들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그러든가 말든가 자신은 한없이 고요합니다. 눈치가 없는 거지요. 가족들도 인정하는 ‘허당’입니다.
그런 혜진 씨 옆엔 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점이 70이라도 장점 30이 더 빛나기 때문이지요. 인생 참 멋지게 사는 그녀의 도전을 늘 응원합니다.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2109302067984
장애인들이 '코로나 블랙'에 빠진 까닭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나고 싶은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수업도 학교가 아닌 집에서 컴퓨터만 쳐다보면서 해야 하고, 취미생활도 자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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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나고 싶은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수업도 학교가 아닌 집에서 컴퓨터만 쳐다보면서 해야 하고, 취미생활도 자제해야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싶어도 문을 연 술집이 없고, 술을 마셔도 눈치 봐야 한다. 누구 하나 코로나19 이전의 삶과 똑같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이래저래 어려움을 겪고 있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장애인 등 특정 계층만 더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모든 국민이 비슷한 수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그러다 보니 9월 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보편적으로 주자는 주장이 45.3% 정도로 나타났다.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인 3월 31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보편적 지급에 대한 찬성이 37.1%였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보편적 지급에 대한 찬성이 더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국민 대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렇기에 보편적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모든 국민이 비슷한 수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우리나라 언론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와 같은 미국 언론도 코로나19가 계층 격차를 더 심화시켜, 일종의 '코로나19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자들의 경우 안전지역에 있는 호화로운 별장에서 격리 생활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온라인으로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자기 집에서 안전하게 온라인으로 업무를 보면서 수입의 손실이 없이 살 수 있다.
이와 달리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종의 저소득 노동자들은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출근해 위의 계층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새벽 배송을 해야 하는 '쿠팡맨'의 돌연사나 구로 콜센터의 집단 감염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김종성, 2020). 더 나아가 아동, 장애인, 노인, 사회복지시설 생활인, 이주민, 홈리스 등은 이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은재식, 2020). 보호작업장에 나가서 한 달 동안 단돈 몇 만 원이라도 벌던 발달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관이 휴관함에 따라 그마저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위험은 공평하지 않았고, 방역 정책에 따른 삶은 더욱 불공평했고, 기존의 사회적 약자들이 더 많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코로나 블루'보다 더 암담한 '코로나 블랙'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가 개최한 <코로나 19 상황에서 장애인 인권 상황과 대책 마련을 위한 제언> 토론회에서 당사자 사례를 발표한 한 장애인은 당시 상황을 외부 활동을 못함에 따라 나타나는 우울 증상인 코로나 블루(corona blue)가 아니라, 모든 것이 암담해진 코로나 블랙(Corona black)이라고 정의하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례브리핑과 관련 지침을 통해 감염 현황과 예방 정보를 알렸지만 장애인의 의사소통 방식을 고려한 정보는 전무하였으며,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에 장애인은 배제하였다. 수용시설에 대해 아무런 대책 없이 예방적 코호트 격리라는 말만 반복하며 장애인에 대한 감염 관리를 포기하였다. 일상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24시간 밀착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도 마찬가지였다. 방역 및 생활에 필요한 물품 지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확진 장애인이 발생하였으나 입원 가능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집에서 자가격리할 것을 통보했을 뿐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이 없어서 가족이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Corona Blue가 아니라 장애인에게는 Corona Black이었다." (출처: 이민호. 2020. "당사자 사례발표 1".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코로나 19 상황에서 장애인 인권 상황과 대책 마련을 위한 제언>)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자체도 불공평했지만 방역 정책에 의한 피해도 불공평했다. 방역을 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장애인들은 그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코호트 격리라는 명분 아래 더욱 더 고립되고 격리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배제된 채 살던 사람들이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지역사회와의 실낱같은 연결망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일본 크루즈 선에서 코로나가 발병했을 때 일본 정부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승객들의 하선을 막으면서 오히려 감염을 키웠던 상황에 대해, 우리 언론과 국민은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다른 나라 국민에 대한 코호트 격리에 대해서는 분개하면서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집단 차단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과연 코호트 격리가 시설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었는지, 그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정부는 자가격리자에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방역용품과 생필품을 담은 생존키트를 제공했다. 대면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하니, 생존키트를 자가격리자의 집 문 앞에 놓고 갔다. 그런데 문밖에 놓인 생필품을 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거나, 안으로 들여왔다고 해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면, 자가격리는 ‘죽음으로 가는 길’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장애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언급했다.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나왔고, 11일간의 완벽한 고립이 끝났다. 온 몸이 마비됐고, 왼팔 하나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나는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2주를 보냈다. 처음 보낸 2주, 내가 중증장애인임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시험 같았다. 나는 버려지듯 혼자가 돼야만 했다. 왼팔에만 의지한 채 온 집안을 기어 다녔다.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배가 고파서 보급품으로 받은 박스를 열어 보았다. 들어 있는 건 생쌀과 배추, 그 외 라면과 부식들,.. 몸에 물만 적시는 샤워, 쌓여만 가는 쓰레기, 악취... 11일간의 자가격리는 지옥이었다."(출처: 국민일보 이슈 & 탐사 중증장애인 왼팔로만 버틴 11일의 자가격리. 2020.4.6.)
방역 핑계와 사회권 보장의 백지 상태
방역 정책 중에 장애인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너무나 많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보편적 전염병 방지 정책의 기획 및 집행 과정에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유의 사태라서, 경황이 없어서 등의 여러 핑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 개인의 존엄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국민도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기본권을 통제하는 방식의 위기관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방역을 핑계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권 보장을 백지 상태로 쉽게 돌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00구청에는 입구가 세 군데이다. 중앙 입구에는 계단만 있고 양쪽 옆의 입구로는 계단과 경사로가 있다. 평소에는 세 개의 입구를 모두 개방했으니, 장애인이 중앙으로 출입을 못해서 그렇지 출입 자체가 안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발열 체크 등 방역 검사를 위해 양 옆의 문은 폐쇄하고 가운데 입구만 개방했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계단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은 구청 진입이 아예 봉쇄된다. 아마도 장애인 등의 일부가 손해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1990년대로 회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도서관의 경우, 평소에 장애인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되었다. 시각장애인 점자 표시도 1층 엘리베이터가 있는 입구로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방역을 이유로 1층 입구는 폐쇄하고 반대편 쪽 계단을 30개 정도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2층 입구만 개방했다. 더구나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이 1층 입구에서 문이 폐쇄되어 있어 어디로 가야 하냐고 직원들에게 물어보자 "건물을 돌아가서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장애인의 출입을 원천봉쇄한 것이고, 장애인 등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굳이 이 시국에 도서관을 이용할 필요가 있냐는 사고를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위기나 응급 상황에서 장애인, 노인 등 일부 계층의 존엄성은 뭉개져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인간에 대한 존중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소외됨 없이 정책, 피해가 큰 사람부터 우선 지원해야
우리는 종종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이 정책의 기본방향인 것처럼 말을 할 때도 있다. 국민 중의 최대다수가 최대로 행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정책일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은 이와 같은 생각에 의해 국민 전체의 방역을 위해 일부의 손해와 피해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손해나 피해의 대상이라면 어떨까?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내가 희생을 당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까? 그리고 다수가 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모든 국민이 각자 자신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은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나는 조금 존엄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가는 위기나 응급 상황이라는 이유로 장애인, 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 소위 힘이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
소외됨 없이 정책을 세심하게 마련하고 추진한다고 해도 누군가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후 대책은 피해가 큰 사람부터 우선 지원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대상 논쟁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누구 하나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에 따라 보편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 피해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재난의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더 바람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동안 피해가 누적되었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 피해는 기존에 가난했던 사람에게, 장애인에게, 외국인 노동자에게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보다 많은 지원을 하는 것이 더 정의로울 것이다. 진보나 보수와 상관없이 정치는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없어져서 고통 받는 국민이 사라지는 날을 기원하지만, 코로나19가 없어진다고 해도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은 계속 힘들 수 있다. 이에 우리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 보다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우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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