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강둑을 걸어
오월 하순 화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을숙도 하굿둑을 거쳐 다대포 강변도로 산책로를 걸어 자갈치로 다녀온 ‘남항 풍경’을 한 수 남겼다. “난바다 누빈 선단 모항에 닻을 내려 / 영도가 바라보인 자갈치 남항 포구 / 태공은 낚싯대 던져 조는 듯이 앉았다 // 볕살이 따사로운 부둣가 가장자리 / 생선은 속을 꺼내 채반에 널어 말려 / 임자가 거두어 모아 손님에게 팔 테다”
중국으로부터 다가올 기압골이 우리나라 상공 고기압에 밀려 동진이 늦어져 예보된 강수는 이틀째 지체하고 있다. 아침나절 강변을 산책하고 근교 들녘 작은 도서관을 찾을 일정으로 이른 시간 현관을 나섰다. 안민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첫차를 타고 창원역 앞으로 나갔다.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니 들녘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부녀들과 같이 소답동에서 용강고개를 넘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가술 일반산업단지에 일부 승객이 내리고 아낙들은 국도를 잠시 달려간 북모산에서 내렸다. 나는 마지막 승객이 되어 제1 수산교에서 내렸다. 옛길 국도 강심에 놓인 다리를 도보로 건너면서 유장히 흐르는 물길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옅은 구름을 비집은 틈새 비친 약한 햇살에 강물은 윤슬이 반짝였다. 일출 전후가 폰 카메라는 풍경 사진이 멋지게 잡히는 때다.
강을 건너간 수산에서 둑길을 걷다가 둔치로 내려섰다. 넓은 부지에는 하남체육공원이 조성되어 몇몇 사람이 걷기를 하느라 트랙을 빙글 돌았다. ‘수산’은 지역민이 그곳을 부른 지명이고 행정 구역은 밀양시 하남읍이다. 아까 건너온 ‘가술’도 창원 의창구 대산면이다. 25호 국도가 진해에서 청도로 올라가는데 가술을 지나온 구간 도로명이 ‘진산대로’인데 진영 수산 사이를 이른다.
강둑에 띠가 자라 꽃이 피어 붓털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잔디보다 억센 띠는 삘기라고도 하는데 내 어릴 적 ‘삐삐’라고 부르면서 여린 순을 뽑아 속살을 까먹었다. 꼴망태를 짊어지고 쇠꼴을 베러 나가 뽕나무에서 달린 오디가 익기 전 자연에서 구하던 천연 간식이었다. 둔치 국궁장에서 둑으로 올랐다. 수산대교 교각에서 명례로 가는 둑길로 접어드니 금계국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국가 하천이 정비된 이후 우리나라 국토 어디에서나 외래종으로 퍼진 식생으로 단연 으뜸이 금계국이다. 어제 걸었던 하굿둑에서 다대포 강변도로 산책로도 금계국꽃이 절정이었다. 귀화식물로 가시박은 생태교란종으로 낙인찍힌 밉상이나 금계국은 그렇지 않아 천변 경관에 한 몫 거든다. 명례로 가는 일직선 강둑 언저리는 온통 금계국꽃이 피어 노란색 안료를 엎질러 놓은 듯했다.
벚나무 가로수가 녹음을 드리운 둑길을 걸어 명례에 이르러 둔치로 난 생태탐방로로 되돌아와도 되겠으나 체력 소진을 아꼈다. 대평마을 회관에서 강둑을 유턴하니 금계국 꽃길은 여전했다. 저만치 떨어진 둔치 잔디밭에는 파크골프 동호인들이 공을 맞혀 굴리었다. 아까보다 더 폭이 넓어진 4차선 수산대교 인도를 걸으니 맞은편에서 자전거로 오는 이를 만나 손을 흔들어주었다.
강을 건넌 모산리에서 송등으로 향하자 지역 특산 수박을 파는 노점이 보였다. 가술에 닿아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을 찾아 배낭에 넣어간 ‘대학·중용’을 꺼내 읽었다. 대학은 공자 수제자 증자가, 중용은 공자 손자 자사가 초본을 엮어 송대 주자가 증보한 서책이다. 울산대에서 중문학을 가르친 명예교수 박삼수가 ‘쉽고 바르게 읽는 고전’이라는 부제를 붙여 옮긴 책이었다.
대학은 수신을 어떻게 해 세상에 나서느냐 하는 지침서다. ‘신민’편 탕왕은 청동 대야에 “진실로 하루하루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를 새겨두었다고 했다. 점심 식후 대산 나눔문화센터 도서관으로 옮겨 중용을 읽었다. 예란 조화와 질서를 핵심 정신으로 추구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행위 규범이었다. 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