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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문제와 사도들의 대책 6:1~4
1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일곱 일꾼 선출과 그 결과 6:5~7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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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 문제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합니다. 열두 사도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칭찬받는 일곱 사람을 택해 접대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이에 스데반을 비롯해 일곱 사람을 세워 안수합니다. 말씀이 점점 왕성해 제자가 더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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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문제와 사도들의 대책 6:1~4
아름답게 성장하던 초대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 혜택을 받지 못하자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헬라 지방에서 살다가 여러 이유로 고국에 와서 머물게 된 유대인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본래 유대 땅에 살면서 히브리 말을 사용하는 유대인입니다. 이들 간에는 언어·문화·사상에 차이가 있었고, 경쟁의식으로 인한 갈등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고 일꾼이 모자라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돌봄에서 제외되는 일이 발생하자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뽑으려 합니다.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방법이 중요합니다.
● 더 깊은 묵상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어떤 문제로 서로 갈등했나요?
내가 속한 공동체의 갈등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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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꾼 선출과 그 결과 6:5~7
갈등을 잘 관리하면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온 성도는 사도들의 말을 기뻐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 명을 택합니다. 이들을 세울 때 회중이 직접 선출하고, 사도들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공동체임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일곱 일꾼의 이름이 모두 헬라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니골라와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이 분명합니다. 일곱 일꾼의 이름이 모두 헬라식 이름인 것은 이들이 헬라파 유대인의 처지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인물임을 뜻합니다. 초대교회는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일꾼을 선출하니 사도들은 말씀 사역에 집중하게 되고, 말씀이 점점 왕성해져 교회가 더욱 부흥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선출된 일곱 일꾼의 이름이 헬라식 이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내가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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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 대부분은 사람들의 기질과 성격, 생각과 경험이 다른 데서 오는 오해와 불통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어야 할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놀랍니다. 그러나 이 땅의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기에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배우자를 고르고 골라 가정을 일구어도 다투는데, 하물며 교회에 다툼이 없겠습니까? 교회는 생각이 같고 마음이 통하기 때문에 모이고 하나 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이념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귀한 말씀 때문에 사랑하는 지체들이 나의 기쁨이자 면류관인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자기를 부정할 줄 아는 공동체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연합하며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다른 지체와 끝까지 같이 가려 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불협화음을 내는 대신에 교회를 더 부요하고 다채롭게 만들도록,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모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풍성해지도록 같이 힘을 다합시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남을 탓하지 않고, 함께 짐을 지면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문제를 풀어 나가는 아름다운 성도,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 / 화종부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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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3절
예루살렘 교회에 생긴 갈등으로 구제 사역을 전담할 일곱 사람을 선택합니다. 선택 기준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출신, 배경, 성향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하나님께 온전히 붙잡힌 성도가 많으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불화의 원인이 아니라 연합의 마중물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온 마음을 사로잡아 단단히 붙들어 주실 때 교회는 완전한 연합을 누리게 된다. - 찰스 스펄전
오늘의 기도
하나님, 끊임없이 일어나는 공동체 안의 문제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아봅니다. 원망과 불평에 동조하거나 믿음이 없다고 비난하던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소서. 공동체의 연약함 때문에 어려움 겪는 지체는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성령의 지혜를 구하며 그들을 섬기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20 나의 죄를 정케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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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회가 말씀으로 왕성해지길 바랍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쉽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도들이 선택한 목회 정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일에 너무 바빠서 말씀을 전하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집사로서, 장로로서, 목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는 지름길입니다. 모든 교회 사역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지는 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동역자들을 세움
문제가 발생하자 사도들은 바로 평신도 동역자들을 세웁니다. 그들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7명의 안수집사를 세우고 그들에게 살림살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전하는 일에 전무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더 큰 부흥의 자리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성령 공동체는 섬김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기쁨을 넘치게 하는 복의 근원입니다. 섬김을 받는 위치에서 섬기는 자리로 나아갈 때 새로운 영적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게 됩니다. 스데반, 빌립을 포함한 7명의 새 일꾼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고 사도들의 안수를 받은 후 예루살렘 제자들이 더 늘고 심지어 제사장들까지 돌이키는 일들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퍼져나가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은 사람의 생각과 결정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조급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우리를 맡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날마다 우리 안의 연약한 자신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운행하심에 그 구원받은 영육을 맡겨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고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거룩하고 신실한 통로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 잠언 16:9
6월30일 인천대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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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이 올 때는 위기도 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댐이 붕괴하는 재앙 전에는 반드시 틈이 먼저 보이는 것입니다 즉, 모든 재앙이 그런 것처럼 위기도 전조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 민첩하면 틈을 미리 보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느6:1)
그러나 잠들어 틈을 무시하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닥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위기의 전조현상을 파악했습니다 바로 원망이라는 틈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행6:1)
까닭 없이 하는 원망은 멸망을 자초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10)
까닭 없이 하는 원망은 심판을 자초합니다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약5:9)
그러나 까닭 있는 원망도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유대에 대대로 살아온 히브리파와 외국에 흩어져 살다가 돌아온 헬라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 전부가 히브리파다보니, 고의는 아닐지라도 문화차이나 언어장벽 등의 문제로 의도치 않게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었습니다 이런 까닭 있는 합리적 원망은 즉시 없애 주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
그래서 사도들은 즉시 원망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즉, 사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고, 구제사역은 전원 헬라파로 일곱 사람을 안수하여 성령 충만한 집사로 세워 담당하게 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왕성해졌고,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지고, 심히 많은 제사장들까지도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첩하여 허물어진 틈을 살피기 원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또한 주께 틈을 보수해 주실 것을 간구하기 원합니다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시60:2)
그때 주께서 우리의 모든 틈을 막아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암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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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은 모두 악합니다.(1절)
종 종 교회에 어려움이 생긱면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들이 목회를 하던 초대교회에서도 구제 문제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일로 인하여 서로간의 불만이 생기게 되었고 사도들은 해결을 위하여 집사들을 세워서 그 일을 조정해 나가게 됩니다.
사람이 모든 교회는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라고 하여도 예외가 아님을 보게 됩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그 자체로서 완전한 곳은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모여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 가지고 마음을 모을 때 그곳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함을 알면서 성령님의 은혜에 힘입기를 힘쓰고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고자 할 때에 그 일은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묵상하기
나는 공동체의 화합을 위하여 힘쓰고 있는가?
2.본질을 회복하다.(2절,4절)
사도들이 자신들에게 생긴 문제로 인하여 그들이 해법으로 내어 놓은 것은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가지는 불만을 결코 감정적으로나 또는 자신들의 변호하는 차원에서 풀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은 자신들이 더 중요하게 행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근본에서 일을 풀어나갑니다. 그들은 기도와 말씀사역에 전념하여야 하는 자신들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전담해서 감당할 집사들을 세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교회 속에서도 종종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법은 각자가 선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의 문제를 기도함으로 바르게 이해할 때 풀려지게 됩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문제에 봉착하면 항상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바로보는 것이 문제를 바르게 해결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문제를 말씀을 기준하여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가?
3.직분자의 기준(5절)
구제문제로 성도들의 불만이 생겼을때 사도들은 즉각적으로 해법을 내어 놓게 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말씀에 전념하고 그 일을 감당할 집사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기준은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직분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과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제시하는 직분자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때 가장 준비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성경적 기준에 합한 직분자가 되기 위해 힘쓰는가?
4.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곳에는 복음의 놀라운 전파와 성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7절) 가장 강력한 성장의 힘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한 개인의 삶이 능력의 삶을 소유하기 위하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속에 넘칠때 가능합니다.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당시에 완고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제사장들을 돌이키게 할 수 있는 힘도 바로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말씀은 심령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 삶은 말씀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예화) 근원적 문제 해결이 완벽한 해결이다
유대인의 격언에 「사랑하는 자녀가 고기를 잡아 달라고 할 때 고기를 잡아 주지말고 잡는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현상적인 문제와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데 현상적인 문제는 죄로 인해 파생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말하며 근원적인 문제는 죄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현상적인 문제 해결에 급급하다 보면 그는 항상 새로운 문제에 접할 수 밖에 없지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는 완벽한 문제 해결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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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 소외 상황이 없을 수는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맛보는 소외감의 충격은 더욱 클 수 있다. 소외가 없으리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상황에 처하는가? 정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인간관계 문제에서 해답을 찾는 일에 너무 몰두하는 것은 상처 입은 감정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은 태도로서 소외감을 더 깊게 한다. 사회적 소외감을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내면적 소외감으로 진전시키지 말고 하나님을 삶의 든든한 토대와 넉넉한 배경으로 삼고 소외감을 잘 극복하라.
수많은 제사장들까지 회개한 사실은 당시에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치욕으로 여겼겠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당시 약 8,000명의 유대인 일반 제사장들은 절기 등에 제사 의식을 돕는 때 외에는 고정 수입이 없어 생계를 위해서 많은 제사장들이 알게 모르게 일을 했다. 심지어 굶어죽는 제사장도 있을 정도로 일반 제사장 가정과
대제사장 가문의 신분 차이 및 경제력 차이는 매우 컸다.
그런 고통스런 상황에서 기독교 복음은 유대교 제사장들에게도 상당한 임팩트를 끼쳤기에 수많은 제사장들도 회개하고 돌아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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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구제 문제로 갈등이 일어났지만, 사도들은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구제 사역을 전담할 일곱 집사를 세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절 초대교회는 외적(박해, 4~5장), 내적(갈등) 시련을 극복해가면서 성장해갑니다.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네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잦아지자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도들은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구제를 비롯한 제반 행정 업무를 전담하게 하고, 자신들은 본연의 직무인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교회의 위기를 오히려 영적인 우선순위, 사역의 분담과 조정, 자신들의 본질적인 직무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로 삼은 것입니다. ‘문제없는’ 교회가 아니라 문제를 인정하고 함께 고민하며 서로 소통하는 교회가 건강하고 성숙한 공동체 아닐까요?
3,5,6절 사도들이 제시한 집사의 조건은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특정 집단에만 자격을 주려는 편협한 기준이 아니라 자격만 갖춘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회중에 의해 선출된 일곱 집사의 면면을 보면 모두 헬라파 유대인을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이는 구제에서 배제된 헬라파 과부들을 도울 뿐만 아니라 스데반(7장)과 빌립(8장)에서 보듯, 장차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9절)과 헬라어권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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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경
사도들은 말씀을 준비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님과 은밀한 기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행정적인 일들과 구제 사업들로 먼지가 일어날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서로 불공평하다는 원망까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일을 제쳐놓고 급한 일에 매달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열 두 사도에게 있어 '접대'하는 일은 그들이 주께로부터 부름 받은 일(마28:19, 20)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사도들이 할 일의 우선순위는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일이요,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안의 각 구성원은 저마다 주께로부터 특별히 부름 받은 재능, 혹은 2차적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불평과 불만 없이 잘 처리해 나갈 때 몸이 균형 잡힌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돕는 사람들을 세울 것을 제안합니다.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라는 말씀을 통해서 집사를 선출하는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을 듣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세움으로 원망과 시비가 불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역할 분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도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일을 자신들이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들은 적절하게 역할을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무엇입니까?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그룹들이 교회 안에 함께 있었고 이들이 온전하게 하나 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단순한 행정적인 착오를 뭘로 비화합니까? 왜 우리는 차별대우하느냐는 생각으로 비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 모진 박해를 이기고 날마다 성장하던 교회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때는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잘 이겨나갔던 교회입니다. 그러자 사탄은 이제 교회 안에 이렇게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해체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왕성하게 성장하던 초대 교회가 구제 문제로 원망과 불평에 휘말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원망과 불평은 성령 충만하고 지혜 충만하며 칭찬 듣는 일꾼인 일곱 집사가 세워짐으로 불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딛고 더욱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효과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원리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일꾼들이 늘어갔을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딤전6:20)고 말해야했던 것입니다.
결국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참된 동의를 얻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토인은 증거를 할 뿐이지 변론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나 강론을 하되 논쟁이나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불신자와 토론을 벌이는 것은 유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고 그에 합당한 자격 조건을 제시하고 그런 사람들이 세워져서 교회가 든든해져 가는 모습이 커다란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목회자와 역할을 분담해서 최선을 다해 섬겨줄 그런 일꾼이 그립고, 그립고, 그립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을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운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 일꾼의 중요한 원리로 기억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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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게 됨으로써 자연적으로 문제가 발생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 행정의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머물 때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즉 모세가 혼자서 모든 백성의 재판을 도맡았기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한심한 장면을 보고 있던 장인 이드로가 그 이유를 묻자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 판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출 18:16,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이에 이드로는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우라는 지혜를 줍니다
(출 18:25,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모세와 이드로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도 경영학에서 조직론을 가르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할 정도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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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교회는 문제가 없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넘쳤고 제자의 수가 많아졌지만(1) 여전히 문제 많고, 부족한 것 많은 지상의 교회였습니다. 사도들은 엄청난 성장의 이면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사람들, 교회의 직분자들이 중요합니다.
2. 교회 안의 두 이질적인 그룹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교회의 도움을 받던 과부 중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들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헬라파는 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들로 헬라어를 사용하고 헬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히브리파는 보다 전통적인 사람들로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문화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을 향하여 원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던 내용을 기억했을지 모릅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1,15)." 사탄은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3. 사도들은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들 사이의 갈등을 보거나, 원망하는 헬라파 과부들을 책망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너무 많은 일들을 주관함으로써 일어난 문제로 이해했습니다(2). 문제의 본질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역의 우선순위를 돌아보았고, 집중해야 할 일이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관하던 봉사의 일(구제)을 전담하도록 일곱 집사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 집사의 조건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3). 리더십이 있고, 회계업무를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교회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도들의 처방을 제자들의 무리는 기뻐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교회의 첫 집사들로 선택했습니다(5). 문제 자체와 그 문제의 뿌리를 분별하는 일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일의 압박을 느꼈던 사도들을 가볍게 해주었고, 교회를 규모에 맞는 리더십 구조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4. 이 일로 하나님의 말씀은 더 왕성하여졌고,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욱 심히 많아졌으며, 심지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7).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하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들이 믿었다고 쓰는 대신, '이 도에 복종하였다'고 썼습니다. 주님의 도에 복종하는 자세, 이것이 신자의 자세입니다.
5.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의 이름은 모두 헬라식 이름들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도 헬라식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었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은 특별히 스데반과 빌립의 사역을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이밖에 주목할 한 인물은 니골라인데, 그는 안디옥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이단인 니골라당을 시작한 사람일 것이라 추측합니다(계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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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하나님의 말씀은 널리 전파되어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입니다.’왕성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자라다‘,’증가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시제는 미완료 능동태입니다.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도 같은 미완료 능동태이므로 이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더 퍼져나가 제자들이 계속 증가했다는 말입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그렇게 강렬하게 교세를 확장했다는 기록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유대교의 중심축이던 제사장 계급까지 합세했으니, 그 위세가 가히 짐작이 될 정도입니다. 실은 그 모임에서 내노라고 할 만한 지도자는 없습니다. 사회의 지배계층도, 대 학자도, 그리고 거부들도 그 곳에는 없었고 단지 소시민들뿐입니다. 선발된 7집사들이 행정을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가 더 많은 구제를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요즈음 말로 해서 목회자가 이벤트나 프로그램을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른 풀밭에 불이 붙듯이 그 맹렬한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니, 원인은 단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입니다. 비약입니다. 예루살렘 공동체가 공동체의 수준을 차고 나가, 드디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기초도 물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떠나서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지요.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순종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인격 안에서 구체화되고 실체화 되지 않는 것은 한낱 공중누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는 불안한 가운데 말씀에 순종합니다. 제자들을 체포할 권한이 있는 사울을 찾아가 그에게 안수해 눈을 뜨게 해 주니, 핍박자 사울이 사도 중의 사도가 됩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즉각 반응합니다. 유대인 회당에 서서 곧장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파격적인 반응입니다. 청춘을 다 바쳐 헌신한 유대교를 포기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유대교 심장부에서 공포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는 위기 시에도 말씀을 선택합니다. 사울은 평생 쌓은 유대교 지식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반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호흡 한번 못하면 가는 인생입니다. 피 한 번 돌지 못하면 살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의 역할을 하는 영광스러운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일이 일상화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삶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법이 없습니다. 일상이 곧 영성입니다.
1절 상반 절을 보시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단순히 숫자만 많이 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까?
행5: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고 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절대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주님을 위해서 능욕을 받는 일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행5장 42절을 보시면 “행5: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사도들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7절을 보시면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더 심히 많아졌습니까?
그 이유는 초대교회가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행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초대교회에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사도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가난한 과부들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달에 얼마의 구제금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 가난한 과부들의 생활을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의 구제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초대교회로서는 심각한 내부적인 위기였습니다.
사실 교회의 문제는 큰 곳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는 구제가 이루어졌는데, 누구는 빠진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단순한 실수 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누가 형편이 어려운가 하는 것은 자기들과 관계된 사람들만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파 사람들은 원래 예루살렘교회에 있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파 사람들은 예루살렘교회에 원래 있던 유대인들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다른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 히브리파 사람들이 헬라파 과부들의 사정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제에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수라고 해도 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일로 인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생겼는데, 결국 그 책임을 누구에게로 돌아갔겠습니까? 당시 교회의 지도자였던 사도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사실 교회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구제입니다. 특히 초대교회는 지금 국가에서 연금을 주는 것처럼 가난한 성도들을 물질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아서 원망이 생겨서 사도들은 말씀에 집중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내부적인 일로 구제하고 사람을 접대하는 일에 빠져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일곱 사람을 택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제하고 사람들을 접대하는 일을 그 사람에 맡기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왜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혜 충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직분 자를 택할 때 단순히 성령 충만 하기만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사람을 택해야합니다.
그리고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옛날 번역은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사역자가 성도들을 위한 최대의 봉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여 위로하는 일이 성도를 위한 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물질로 어려운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도 성도를 위한 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개인을 돌보는 사역도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사역자가 성도들을 위한 최대의 봉사는 한 주간 동안 성도들을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또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가 성숙한 교회입니까?
목사님 우리 가정은 찾아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 한 주간 동안 열심히 말씀준비만 하십시오. 그리고 기도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와 말씀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의 사역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살 수 있습니다. 또 사역자가 말씀으로 살면 성도들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역자들이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래서 저는 이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사역자가 한 주간 동안 무엇을 하나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깨달은 것을 바로 기록을 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깨달으면 적고, 또 기도하다가 깨달으면 적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설교의 메시지는 기도하는 동안 적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제 설교 원고를 적어야합니다. 적으면서 먼저 이 말씀이 먼저 나에게 어떤 것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이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기보다는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것은 제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을 매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시의 충족성을 믿습니다.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 말씀이 성도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묻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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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갈등해결로 성장하는 교회” 윤광서 목사
제사장들과 유대지도자들에 의해 사도들이 옥에 갇히며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을 입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한 증언으로 풀려난 사도들은 제자들과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며 부흥시킵니다.
점점 제자들이 많아지자 헬라 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자 히브리 파 사람을 원망하며 교회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열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책망합니다.
여기서 접대란 교회의 재정이나 출납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은 제자들이 먼저해야하는 일은 교회 일보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도들은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면 교회의 재정과 살림을 맡기겠다고 선언합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세우는 기준은
재물과 경험과 지식과 학력보다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을 안수합니다.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일곱 집사들에게 교회의 일들을 맡기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와 말씀사역에 힘씁니다.
교
회의 갈등과 분열을 해결되고 히브리 파 사람들과 헬라 파 사람들이 합하여 선을 이루어 나갑니다.
적재적소에 합당한 일꾼을 배치하고 맡은 바 주신 사명을 다하며 기도와 말씀에 힘쓰므로 초대교회가 점점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합니다.
모든 성도들의 교회와 가정과 직장에도 초대교회처럼 뜨거운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신 사명을 다하며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초대교회의 부흥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부흥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고 있었음을
그리고 저들 가운데에 분별의 지혜를 허락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와 교회가운데에도 이러한 은총을 허락해 주시고
부흥을 경험케 되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갈등하는 교회(6:1)
주의 일을 한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도 구제 사역의 형평성 문제로 히브리파와
헬라파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일을 하다가 생긴 갈등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다양하고 재화가 한정되었다고 언제나 교회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다양함’을 교회의 특성으로 봅니다(고전 12:12-31). 재화의 풍족함 때문에 교회가
시험에 빠진 경우도 있습니다(계 3:17). 사실 교회 내의 갈등은 각 성도가 지체로서 연합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한 지체라고 고집할 때 발생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입장을 바꿔서 이해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묵상 질문: 교회 안에서 성도가 서로를 원망하는 일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요?
- 적용 질문: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어떤 원망의 말을 하나요? 그런 원망과 갈등은 왜 일어날까요?
나눔과 배려를 통한 성장(6:2-7)
갈등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여러 모습을 보입니다. 직분에 따른 권위나 힘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예 무관심으로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권위로 성도들을 굴복시키려 하는 대신,
성도들에게 일부 권한을 양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성도들도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대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모범이 되고 주의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집사들을 세워서 문제를 풀어 갑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은 나눔과 배려를 통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각자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서로 지혜롭게 짐을 나누어 질 때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갈등 속에 있었던 초대교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었나요?
- 적용 질문: 효율적이며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일을 분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목소리를 높여 제 주장을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화평과 겸손으로 교회의 갈등을 해결했던 사도들처럼,
저 역시 참된 나눔과 배려를 통해 가정과 직장,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게 하소서.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걸음을 돌아보시고
하나님의 크고 깊은 뜻을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성령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복된 구원의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축복 하사
그 가정과 사역 위에 기름 부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인하여 신음하고 고통 중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과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주님의 반석 위에 굳게 서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