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배우는 인내
성병조
(여행에서 배우는 인내) 이번 여행의 구성원은 18명이다. 아내 친구 부부가 주류를 이루며 대부분 초면이다. 인천공항에서 첫 여행지인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대구서 인천공항까지 리무진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다수가 원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니 공항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08시 도착, 14:30 출국하면 LA-휴스톤을 거쳐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다. 인천공항에서 6시간 넘게 대기한다. 리무진을 타면 4시간 정도지만 비행기는 겨우 40분이다. 공항 라운지에서 여러 음식을 먹고 독서도 하지만 지루하긴 마찬가지다. 여행이 멀고 험해도 참고 기다리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예수상 오르는 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떠올리면 무엇이 먼저 생각날까. 미항, 삼바 축제, 축구 등이 있겠지만 나는 예수상이 떠오른다. 710m 바위산 꼭대기에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예수상은 리오 관광의 상징이다. 높이 30m, 양팔 길이 28m 예수상은 신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먼저 관광열차에 오른다. 바깥 조망이 쉽게 만든 오픈 열차가 20여 분 오른다. 경사와 교행을 위해 서행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에스컬레이트 두 차례, 마지막으로 가파른 계단을 걷는다. 예수를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우랴. 사진 찍느라 무슨 전쟁터 같다. 시내 전역을 바라보는 예수상이 마치 리우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이과수 폭포의 웅대함) 남미 여행하면서 이과수를 지나칠 수 있으랴. 나이아가라, 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 나이아가라가 미국과 캐나다를 끼고 있다면 이과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3국과 접해있다. 나이아가라는 두 나라가 비슷하게 점유해 보이는 모습도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과수 폭포의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본 모습은 딴판이다. 아르헨티나는 거의 위에서 내려보는 식이라면 브라질은 어렵게 만든 데크를 따라 가까이 접근하여 폭포수를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높이 82m, 넓이는 나이아가라의 4배인 4Km이다. 물보라를 흠뻑 맞는 악마의 목구멍과 전망대도 브라질 쪽에 있어 더욱 붐비는 편이다.
(갈라파테 빙하 국립공원) 여행하면서 세계 지리 공부하는 기분이다. 아르헨티나의 국토면적은 세계 8위로 태양이 작열하는 정글을 시작으로 빙하지대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은 눈이 내리거나 추위가 심하다. 이 지역 칼라파테 빙하 국립공원에는 호수로 이루어진 수많은 빙하가 있다.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포리토 모래노 빙하는 높이가 50m, 길이가 31Km에 이른다. 가까이 갈수록 놀라움이 크다. 남극 지방이라고 하지만 산처럼 큰 빙하가 요즘도 건재하는 게 신기하다. 배를 타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실감이 난다. 뒤에서 밀어오는 또 다른 빙하의 무게로 인해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최고의 의료진인데도?) 해외여행 때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각자 소개하지 않으면 깊이 알 도리는 없다. 이번 여행은 아내 친구들에 남편이 끼어든 형국이다. 의사 세 명에 약사가 다섯 명. 이런 호화 군단을 대동한 여행은 드물다. 이들의 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일까. 6일 차 되는 날 밤부터 몸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큰일이다. 3-4천m의 고산에 적응하지 못해서일까. 몸이 어질하고 진땀이 나면서 토사를 일으킨다. 아침 식당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대신 아내가 의료진이 준비한 약을 가져왔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버스 뒷자리에 누워 지냈다.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다. 힘을 모아도 역부족이다. 내게 왜 이런 시련이 다가오는 것일까.
(마추픽추 가는 길) 흔히 중남미는 해외여행의 정점이라고 한다. 건강, 비용, 시간, 현지 환경 등이 맞지 않으면 풀리기 어렵다. 역사책이나 TV에서 보아온 페루 마추픽추는 그런 요소가 가득한 구도자의 길이다. 수도 리마서 1시간 반 비행기를 타면 쿠스코에 도착한다. 거기서 버스 2시간 타고 우루밤바 도착, 다시 기차를 타고 2시간 달리면 유적지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서 셔틀버스로 굽은 길 40분을 오르면 마추픽추 입구. 이어 도보가 시작된다. 해발 2,280m 높은 산에 건설한 잉카유적이다. 공중에서만 보인다고 ‘사라진 공중도시’라 불린다. 잉카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채도시로 추정된다. 1911년 미국의 젊은 학자 하이럼 빙엄이 처음 발견,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소금 사막이 있다고?) 처음에는 TV에서만 본 적 있는 소금 사막을 반신반의하였다. 사막이 있는 볼리비아는 해발 6천m급 고봉이 14좌나 되고, 주요 도시 절반이 2천-4천m 고원의 나라다, 우유니(Uyuni) 소금 사막은 우기에는 물이 고여 소금호수라고도 불린다. 지각 변동으로 인해 솟아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2만 년 전 녹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진다. 이에 비가 적고 날씨도 건조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은 거대한 소금 사막으로 변했다.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며 사막에는 최대 10m에 이르는 선인장이 숲을 이루는 섬과 소금 사막 한가운데 소금으로 만든 소금 호텔도 있다.
(비행기 탑승도 여행인가?) 평소 비행기만 보면 탑승 욕망이 이번에 충족되는 것 같다. 탑승 횟수를 세어보니 무려 19회에 이른다. 대구 출발 비행기를 시작으로 인천, LA, 휴스턴을 거지면서 3회, 그곳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동안 24시간을 기내에서 보낸다. 여행 8일 차에는 칠레 푼타 아레나스에서 산티아고 가면서 3시간 반, 산티아고서 페루 리마까지 4시간 타면서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서 보낸다. 10일 차도 마찬가지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가관이다. 페루 리마서 LA까지 9시간, LA서 인천까지 13시간 20분이 걸린다. 이 글은 태평양 상공 귀국 비행기에서 몸부림치며 쓰고 있다. 지루한 비행기 탑승도 여행의 범주에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