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밥 줘’로 견해다툼을 종식시키긴 했지만. ‘히구마’에서 김치라면 사 줄께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이미 여름 날 냉장고에 넣지 않은 미역국이 되어버린 우리. 귀국을 할 수 있든 없든 제 날짜에 호텔에서 아웃을 하긴 해야 했어. 투숙비가 87유로씩이나 하니 일정에 맞추어 준비한 경비로는 더 있을 수도 없었지만 더 있겠다고 해도 그 넘의 천재지변이 뭔지 룸이 없었어. 파리는 숙박업소가 모자란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에 난리였으니까. 여행사에서 소개한 민박집은 지도를 보니 공항이나 역에서 좀 떨어져 있더라. 집에 죽치고 있다가 떠나기는 뭣하고, 하다못해 몽파르나스 공원묘지라도 산책하다 가려면 교통이 편리하고 가까운 곳이 좋지 않겠냐고 좋게 상의했어 친구랑. 루브르투어 때 만난 청년 인호가 지가 묵고 있는 민박집이 좋다고 하던 생각이 나서 전화하랬지 그리로. 도미트리 5인실이 비었다고 하루 일인숙박비는 20유로래. 아침저녁도 제공 한다더라.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서 게이트라고역 근방이라고 했어. “으잉? 게이티? 거가 오딘디?” 아 왜 그 몽파르나스 타워 “아하~ 게떼” 모시라 개때? 야 개때란다 소때 아니고 개때래 개때. 푸하하하. 어쩌라고? 내가 불어 읽는댔나? gaite가 개땐지 소땐지 우째 알겠어. 저게 또. 요행이 우리가 있던 곳에서 두정거장만 가면 Plaisance 이거는 또 머라꼬 읽어야 되노? 플래송수? 아무튼 그 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3분내의 거리에 있다니까 된 거지. 이 근처면 길도 익숙하고 말이야. 그럼 그 여행사 직원이 시키는 대로 안하는 게 두 가지네? 기차표도 아직 안 끊었고 민박집도 다른 데로 가고. 어쩔 수 없었어. 현지에 있는 건 우리잖아. 아침 일직 일어나 짐꾸리고, 짐 꾸리면서 이랬어. 내가 담부터는 즐때 집 이렇게 안 싸온다. 청바지 두 장에 티셔츠 두 장으로 끝낼껴. 나도 나도. 남자들이야 입성에 별 신경 쓰지 않을라나? 자유여행 한다믄서, 짜달스리 사진찍고 폼 부릴 것도 아니믄서 므슨 넘의 쓸데 없는 옷이 이케 많은 거야 그래? 돈도 써 본 넘이 잘 쓰고 여행도 해 본 넘이 잘하는겨. 암만. 앞으로 나도 여행 잘 하는 넘, 넌인가? 암튼 될껴. 근데 이게 여행 다니믄서 짐 풀고 쌀 때마다 하는 소리야 금붕어띠냐? 그런 소리 들을 만 해 암만. 투덜대면서 짐싸고 조식하러 내려갔지. 어제 아침에 만난 동족이 식사하고 있더라. 조금 늦은 시간이었고, 루브르 투어 한다던 날이라 갔겠거니 했는데 말이야. 4월 21일. 그 아이들한테 스페인가이드북 있으면 빌려달라고 했어. 오늘 몽파르나스가서 기차표 알아보긴 할 텐데 차표가 없다면 호텔 프론트에 맡겨놓겠다고 했지. 아침 대충 먹고 스페인 가이드북 챙겨서 일단 민박집부터 찾아가기로 했네. 우리말이야. 이제 길 잘 찾아. 별로 헤매지도 않아. 용하지? 그지? 응? 사실 용할 거 뭐 있겠어. 그렇게 말하는 건 우릴 과소평가 하는 거고, 늙었다고 인정하는 건데 괜히 말했다. 취소야. 용한 건 아니고 이제 익숙해 졌다는 걸 잘못 말했어. 암튼 금방 찾았어. 플레송수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틀고 ATM있는 모퉁이로 돌아 쭈욱 올라가. 얼마 안가서 모노프리가 나오는데 그거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주택가 같았어. 하긴 민박집이니 주택가에 있겠지. 파란집이래서 파란대문인가 했는데 시꺼먼 카키철문이더라. 한 백 미터쯤 갔나? 길 건너편에서 주인아저씨가 손짓을 하드만. 무거울 거라고 죄송스러워 하는 우리를 안심시키시고 3층까지 우리 캐리어 들고 올라가시느라 욕보신 사장님. 다 올라가셔서 한 말씀 하셨어. 무겁긴 무겁네요. 며칠만이지? 죄다 한국인만 있는 곳에서 한국말로만 대화가 되어본지가? 그런데 5인실이라던 방은 쪼마난 이층침대 6개, 그러니까 12명이 들어가는 도미트리였어. 마침 우리가 들어가는 시간 맞추어 거의 다 빠지긴 했지만 답답하더라고. 답답하고 갑갑했어. 그렇지만 어째? 할 수 엄짜나? 할 수 없지 뭐. 사실 카탈스러움 하면 등수 안에는 드는 우린데 지금이 카탈 부릴 때는 아니란 걸 모를 만큼 등신은 아니거든 우리가. 짐을 올려놓고 아래층에 내려와 주인아주머니와 글쎄 말이에요 다들 난리에요 거 참 희한하게 날씨까지 이러니 말이죠. 원래 이맘때쯤의 파리는 비가 많이 오는 때라는 데 날씨가 너무 맑고 좋았다는 거야. 관광객들한텐 일시적으로 좋았을지 모르지만 비가 왔으면 화산재가 공중부양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지. 그러게 세상은 한 쪽이 좋으면 한 쪽은 울어야 하는 거라니까. 16일 출국예정이었는데 못가고 있다는 어떤 신혼부부 네 쌍은 급기야 공항으로 무작정 대기하러 간다고 나서더라. 처음 하루 이틀은 좋았는데 사흘째부터는 불안해 지기 시작해서 점점 견디기 힘들더라나. 그럴 것 같아. 그럴꺼야. 인호가 나타났어. 루브르투어 같이 했던. 아 반가워~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몽파르나스에 기차표 끊으러 가야 하는데. 아마 표가 없을 걸요? 그럼 우짜냐. 결국 주인아저씨가 불어로 뭐라고 적어준 쪽지를 들고 나섰어. 여전히 스페인으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의 기로에 서서 말이지. 민박집 근처에서 우리처럼 행색이 오래되어 보이는 한국ㅇ니 여자가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더니 물었어. 파란집 민박이 어딘지 아세요? 충청도 여잔가 말이 아주 느리더라고. 저기에요. 우리도 거기 묵어요. 이따 봐요. 몽파르나스 역은 증말 냄새가 지독해. 메트로 말이야 메트로. 올라가니까 역이 을매나 큰지 도무지 어디에서 표를 끊는 건지 임포메이션도 안보이고 난감난감. 이리갔다 저리갔다 영어 좀 해 보라고 사정을 해도 몬한다 카고 겨우 몇 마디 하는 사람이 가르켜 준대로 갔더니 음마 거도 만만찮더라고. 창구가 을매나 많은지 말이야. 그 많은 창구중에 어디가 마드리드가는 기차표 끊어주는 델까? 또 왔다리 갔다리 기웃기웃. 우째 좀 똑소리 나 보이는 젊은 여성한테 물었네. 저어 여기서 마드리드 가는 차표 살수 있으까요? 아이 씽 쏘 구랴 고마버. 근디 야야 여기 떼제베 표 파는 데 아냐? 그리고 보니 기차그림이 떼제베다. 음마 아니노 되지. 비쌀 낀데. 언능 딴데로 가자. 그리고 또 딴 오빠야 한테 물었어.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묻는 게 나이 취미여. 물어보는 데 돈 달라는거 아니니까 뭐 어때 어느 창구서 마드리드 가는 표 살 수 있겠노? 찌랄또, 여는 다 인터내셔날 시티 표 파는데다 아이가. 그런겨? 음마 그랬구만 진작 갈체 주지 인간들이 영어 몬한다고 지랄이야. 그리하여 줄서서 기다려서 주인아저씨가 적어준 쪽지를 내밀었지. 글씨 그게 마드리드 가는 가장 빠른 기차표라고 써 있다는구만. 아니 그기 아이고, 23일 좌석 있냐고요? 없대. 4월 예약은 끝나서 좌석이 없다는 거야. 하긴 가이드 용규가 그러더라. 파업중이라 아마 기차표도 없을 거고 팔지 않을 거라고. 그럼 그냥 무작정 타면 되는 거라고. 타서 승무원한테 그냥 탔다고 말하면 정상가격보다 싸게 돈을 받을 거래. 그래야 하나? 그럴까? 정말인가? 어떡할래? 아 정말 암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할 수가 없었어. 스페인은 못가는 거야 그러니까? 아니, 저가 항공이 있기는 하데. 근데 공항에 가서 비행기가 뜨는지 알아보고 사라는데? 우짜라꼬? 우짜라는 거야? 배고파 배고프다고. 다시 민박집으로 가서 인호 데리고 드골 공항으로 갔어. 셔틀트레인을 공항 밖에서부터 타고 들어가는 게 우리나라하고 틀리긴 했지만 티켓에 터미널 번호가 기입되어 있고 셔틀트레인 타는 곳도 안내판이 잘 붙어 있으니까 찾기 어렵진 않더라고. 카타르항공은 에어프랑스와 같은 데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직원은 없었어. 오후 5신데 다 퇴근했다는 거야. 지사로 전화를 걸어보라더니 전화번호를 주면 내일 아침 전화를 하라고 하겠대. 차비만 무려 3만원 가까이 쓰고 별 소득도 없이 돌아왔네. 때 마침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는지라 식탁에 앉은 낯선 동족들 사이에서 밥과 김치와 겉절이를 먹는데 세상에나, 눈물 날 뻔 했네. 맛나데. 맛나더라고. 여행의 목적은 잃어버리고 헤매기만 했던 오늘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었어. 다행스럽게도 말이지. 한 식탁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이 떠날 날이 지난, 기약 없이 묶여있는 천재지변의 인질들이었는데도 분위기는 한 가족처럼 좋았어. 바로 이런 거. 이런 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의 사심 없는 정이겠지? 민박집 어귀에서 만났던 말이 느리던 친구는 이름이 은숙이래. 잠깐 스쳐 지났던 것도 ‘앎’이라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느리고 느린 말투로 친절하고 사려 깊게 대해주는 그 친구, 은숙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거. 모처럼 따뜻한 정이 노을처럼 퍼지는 저녁이었어. 한방에 묵는 룸메이트들과 인사 나누고 서로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고 몰랐는데 알게 된 정보를 교환하고. 아~ 이거였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여행자들끼리 주고받는 정보. 거짓이 있을 리 없는 정보잖아.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란 사실을 간과하면 안되지. 그런 걸 감안하고도 정보는 요긴 하다못해 더러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더라고. 자유여행. 혼자해도 되겠구나... 되겠구나. 로마에서도 잠깐 느꼈지만 혼자 여행 온 친구들을 보면서 말이야. 혼자 여행하며 저절로 길러지는 안목들이 앞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에너지로 작용 하겠구나 했어. 일찌감치 내 아이들을 내 보내지 않았음을 후회했지. 함께 도미트리를 사용하는 우리 말고 다른 친구들 모두 혼자였어. 혼자인데도 불구하고 혼자이지 않은 여행객이 되는 방법. 그거, 그냥 혼자 떠나면 되는 거더라고. 이런 생각 친구도 했을까? 했을 거야. 했겠지. 쪼금 슬펐어.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드는 건지. 어젯밤 폭발하고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 있는 모를 기류가 우리 주변에 서성거리고 있음을 감지한 거야. 괜찮아. 천재지변 때문이야. 일정이 정해지면 괜찮아 질 거야. 괜찮아. 그렇게 밤이 깊어갔어. |
출처: 동쪽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동천
첫댓글 인간은 원초적으로 홀로 태어나 홀로 떠나는 것을....무엇이 왜 두려운걸까요? 아직 혼자에 자신이 엄써서...
이젠 혼자서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떠나도 혼자만은 아니란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여행, 좋지요. 두려움은 없어도 되는 것이
그런 것이 여행 아닐까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