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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 44년 만에 밝혀진 94건의 역사적 진실 — 현행 ‘천황산’을 고유 지명 ‘재악산(載嶽山)’으로 복원하는 데 의회가 앞장서 주십시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58?svc=cafeapp
※26.7.29(수) 오전8:26 載嶽山 증거 1건 추가 발굴로 총 94건이 됨을 최종 수정합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8ㆍ15 광복절》이 다가옵니다.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을 그대로 두고서, 정부나 지자체가 기념식을 하고, 국민과 민족이 광복절을 맞이하는 것은 민족자존을 해치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존경하는 밀양시의회 손문규 의장님과 의원 여러분!
그리고 경남도의회 의원 여러분!
새로운 의정 준비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바쁘신 일정 중에도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 속에 명명백백히 기록되어 온 고유 지명 ‘재악산(載嶽山, 해발 1189m)’의 진실을 알리고,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는 데 의회가 적극 나서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본 증거 자료들은 손흥수 스승님과 제가 4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비를 털고 피땀을 흘려 발굴해 낸 소중한 역사적 자산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 지도에 표기된 ‘天皇山,해발 1189m’과 ‘載藥山, 해발 1108m)’은 국가적 문헌이나 역사적 근거가 단 한 건도 없는 인위적·자의적 명칭에 불과합니다.
본 연구팀(손흥수·도재국)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 ‘밀양광장’,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등에 등재한 증거 자료와 칼럼, 논거, 홍보 글만 모두 합치면 무려 7,000 페이지가 넘습니다.
1. 94건의 역사적 진실 대(對) 12쪽짜리 자의적 주장
《재악산(載嶽山) 증거》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수백 명의 국왕과 조정(朝廷), 그리고 만백성이 천년 넘게 사용해 온 엄연한 국가적·역사적 기록입니다.
2026년 7월 현재, 저희가 직접 발굴하여 입증한 載嶽山(해발1189m) 관련 고문헌·성보 비석·고지도·세보 등의 증거는 무려 94건에 달합니다. (※ '嶽'의 약자가 '岳'이므로, 비석 등에는 획수가 적은 '岳'으로 새겨진 기록도 다수 포함됩니다.)
반면, 울산 측이 주장하는 ‘天皇山’ 증거 도출 방식은 역사적 사료 검증이 아닌, 마치 논술 문제를 풀듯 기이하게 논리를 맞춰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직접적인 역사적 증거가 없자, 전혀 무관한 다른 지역의 극소수 天皇山 기록을 억지로 끌어오거나, ‘天王山이 天皇山으로 변했다’는 식의 자의적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또 일제시대에 일제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한반도의 1/50,000 지형도에 경남 지역 및 전남 지역 등에 집중적으로 조작해 놓은 天皇山, 天皇峰을 민족의 산명이라는 증거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울산측이 載嶽山(해발 1189m)을 天皇山으로 주장하는 그 대표적인 바탕이 된 것이 1998년 울산의 한 향토사학자가 작성한 A4 용지 12페이지 분량의 소논문(‘천황산일식명설고찰’)입니다.
어떻게 왕조의 국왕들과 관찬(官撰)·사찬(私撰) 고지도, 점필재 김종직 선생 등 당대 대문장가들과 만백성이 천년간 기록하고 입으로 전해 온 수천 페이지의 역사적 진실이, 검증되지 않은 개인의 12쪽짜리 주장 하나에 덮일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5년 12월 4일, 국가지명위원회는 최소한의 사료 검증도 없이 울산 측의 손을 들어주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2.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과 명백한 사료들
저희가 발굴한 94건의 載嶽山 증거는 단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결정적 사료들입니다.
그중 단 1건만 예로 들겠습니다.
먼저 위 사진을 보십시오.
제가 위 사진 골격을 만들고 AI Gemini 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제가 인터넷으로 사진과 그림을 합성해서 그리는 기술이 없어, 그렇게 부탁해서 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육지측량부 지형도 기록]
일제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는 한반도 1/50,000 군용 지형도를 제작하면서 한국의 중요 지명을 한자로 적고 그 옆에 일본어 가타카나를 병기했습니다.
이는 식민지 정복 지역을 일제의 영토로 귀속시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수장고 및 디지털 아카이브에 보관된 당시 1/50,000 지형도를 확인하시면, 지리산 일대를 '동경제국대학 연습림'으로 지정하여 민족의 산림 자원을 군사용·수탈용으로 관리했던 역사적 정황과 함께 지명 왜곡의 실태를 명확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울산 측의 주장과 2015년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 결과처럼 사자봉이 天皇山이고 수미봉이 載藥山인 것이 맞다면, 지난 천년간의 역사적 기록 93건에도 전부 ‘天皇山’으로 새겨지고 불러졌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3. 존경하는 의장님과 의원 여러분께 올리는 호소
우리 민족 역사에 기록되고, 비석에 새겨지고, 민초들의 입으로 불러온 **재악산(載嶽山, 해발 1189m)**이라는 이름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국가(왕조)적 검증이 전혀 안된 신라왕의 병치레인 약수와 약초로 대표되는 載藥山(해발 1189m와 해발 1108m)으로는 94건의 載嶽山을 증명하는 거대한 載嶽山(해발 1189m)을 덮을 수 없습니다. 94건의 載嶽山 증거에는 당연히 신라왕의 병치레 관련 약수와 약초에 관련된 동국대학교 출판부가 간행한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문헌인 《韓國佛敎全書》의 《東溪集》에 영정사에 주석하신 《동계 경일 선사님》이 지어신 《載岳山記》와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名文에는 載藥山이 아닌 載岳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개념도와 같이 載嶽山에는 영정약수와 약초가 당연히 들어 있습니다
이 기막힌 지명 왜곡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명명백백한 **'94건의 載嶽山 증거'**를 바탕으로 밀양시의회와 경남도의회가 앞장서 주십시오!
국토지리정보원과 울산시 등 관계 기관을 상대로 ▲현행 지도상의 ‘天皇山’을 고유 지명인 ‘載嶽山’으로, ▲현행 ‘載藥山’ 표기를 ‘須彌峰’으로 당장 정정·복원 촉구하는 공식 건의안 채택 및 행정적 조치를 강력하게 추진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글을 제게 연결된 의원님의 개별 카톡으로 보내드립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카톡이 연결되지 않은 의원님들께는 이 카톡을 받으시는 의원님께서 좀 전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에 본 연구팀이 44년간 피땀 흘려 분류·정리한 **‘재악산(載嶽山,해발 1189m) 역사적 증거 94건 목록’**을 제시합니다.
면밀히 검토해 주시고 밀양의 역사와 정통성을 세우는 길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 참고사항 (1)
밀양시의회 및 경남도의회가 본 건의문에 대해 손흥수·도재국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출석을 요구해주시면, 참석하여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단, 의견 개진 시간을 최소 2시간 이상 주십시오.
이 내용의 총론을 대략 설명해 드리는 데만도 최소 6시간 이상이 소요됩니다.
각론까지 전부 설명해 드리려면 며칠이 걸립니다.
※ 참고사항 (2)
의회에서 손흥수·도재국의 의견(설명)을 청취할 때, 관련 정부 부처 및 지자체 담당 부서, 언론기관, 그리고 일반 국민과 도민, 시민이 함께 청취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2026년 7월
손흥수 · 도재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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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AI 표지석 85건 보증 낙인도 93건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재악산(載嶽山) 증거 합계(잠정 숫자) : 94건
◆1. 문헌(文獻) : 35건
◆2. 고지도 : 14건
◆3. 성보(聖寶) 금석문 : 3건
◆4. 성보(聖寶) 불교경전 등 : 12건
◆5. 시문(詩文) : 7건
◆6. 載嶽山이 소재한 지역민(단장면민 등)이 즐겨 부른 농요(農謠) : 1건
◆7. 명문가 세보(世譜:족보族譜) 등 : 4건
◆8. 관청 보고서 및 민원서류(書類) 등 : 2건
◆9. 지방관(부사, 군수) 명문(名文) : 2건
◆10. 손흥수ㆍ도재국의 밀양이야기 기고문 : 7건 (1,013 페이지)
◆11. 15세기 중세국어 음운(音韻) 법칙으로 밝혀낸 載嶽山 : 1건
◆12. 일본국 문헌 등 : 5건
※위 8번, 10번, 11번은 Ai가 분류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증거 항목임.
◆13. 일제가 천황산 정상 임야를 기형적 이례적인 지적 3㎡로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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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건 증거 분류별 내용
▶▶▶1. 문헌(문獻) : 35건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승정원일기》 등 국가적 공인관찬 사서와 지리지에 일관되게 기록된 최고 권위의 증거입니다.
●조선 왕조의 국가 조정과 지방 관아가 해당 산의 정통 지명을 '재악산'으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 등 당대 대표 문인들의 문집을 통해 민간과 학계에서도 정통 지명으로 쓰였음을 증명합니다.
▶▶▶2. 고지도 : 14건
●《대동여지도》, 《동람도》, 《청구도》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국가 제작 지도와 시판 고지도에 명확히 표기된 시각적 증거입니다.
●단순한 문헌 기록을 넘어, 당대인들이 공간적으로 인식하고 표기했던 정통 산명이 '재악산'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봉산(조선시대 산림 보호구역) 지정 기록 등 지형적 위치와 국가의 산림 관리 구역으로서의 지명을 완벽히 뒷받침합니다.
●참고:
○고지도에서의 '시판 고지도'는 관아나 조정에서 비밀리에 보관하던 국가 기밀용 지도가 아니라, **민간에서 일반 대장인이나 상인, 선비들이 돈을 주고 사서 자유롭게 가지고 다니며 쓰던 지도(민간 보급형 지도)**를 의미합니다.
○'시판 고지도'가 갖는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
민간의 보편적 인식 증명
국가가 공문서나 관제 지도에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대 일반 백성과 지식인들이 실제로 산을 부르고 찾아갈 때 '재악산'이라는 명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지식의 대중화와 광범위한 보급
조선 후기 상업이 발전하면서 목판본 등으로 대량 인쇄되어 저자거리(시중)에서 판촉·유통된 지도를 뜻합니다.
○즉, '재악산'이라는 지명이 일부 특권층의 기록에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유통되던 상식적인 산명이었음을 직관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따라서 17건의 고지도 중 시판 고지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재악산은 국가 관청뿐만 아니라 민간 시중에서도 널리 쓰인 대중적이고 확고한 정통 지명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매우 강력한 논거가 됩니다.
●AI Gemini 설명 :
**일반 대장인(大將人)**은 과거 민간이나 저자거리에서 **‘어떤 무리나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 혹은 행상·상인 패거리의 으뜸이 되는 사람’**을 뜻하는 민간 용어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지 정리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부상·상인 패거리의 우두머리(행수): 과거 전국 장터를 돌며 물건을 팔던 상인 무리(보부상, 장돌뱅이)나 물류를 운송하던 객주·여각의 책임자를 뜻합니다. 이들은 전국 길목과 지형을 잘 알아야 했기에 지도가 꼭 필요했습니다.
○마을이나 민간 무리의 리더: 관직에 있지 않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행동거지나 입지가 크고 무리를 이끄는 위치에 있던 사람을 비유적으로 부르던 표현입니다.
따라서 작성하신 문맥에서의 **‘일반 대장인이나 상인, 선비’**라는 구절은, 관청의 공무수행자가 아닌 **‘민간에서 사회 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이끌며 전국의 길을 오가던 대중’**을 통칭하는 아주 적절하고 생생한 표현입니다.
시판 고지도가 이러한 민간 리더들과 상인들에게 유통되었다는 점은, '載嶽山'이 삶의 현장에서 직접 쓰인 대중적인 지명이었음을 입증하는 매우 명확한 설명입니다.
▶▶▶3. 표충사 관련 성보(聖寶:금석문) : 3건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개수비문과 인각사 보각국존비음기 등 돌에 직접 새겨진 변개 불가능한 물리적 확증입니다.
●고려 시대(1295년, 재악사)부터 조선 시대(1491년, 재악산)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간 현장에서 실제로 쓰인 가장 확실한 1차 사료입니다.
▶▶▶4. 표충사 관련 성보(聖寶:불교경전 등) :12건
●재악산 영정사에서 간행된 《묘법연화경》, 《원각경》 등 판본의 간행 기록(간기)에 명확히 남아있는 사찰 사학적 증거입니다.
●불교계가 수백 년 동안 해당 지역과 산을 '재악산'으로 칭하며 호국선찰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음을 증명합니다.
●최근 표충사 현판 및 산문 상량문 복원 등을 통해 역사적 맥락과 정통성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5. 시문(詩文) : 7건
김종직, 신경준, 황준량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들이 재악산을 직접 유람하고 남긴 시가와 유람록입니다.
학자들과 시인묵객들의 선비 정신과 문화적 삶 속에서 '재악산'이라는 지명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6. 載嶽山이 소재한 지역민(단장면민 등)이 300년 이상 즐겨 부른 농요(農謠) : 1건
●단장면 지역 주민들이 300년 이상 입에서 입으로 불러온 〈리동가〉 가사에 남아있는 구전 민속학적 증거입니다.
●단순한 문헌 속 지명을 넘어, 그 지역에 살던 민초들의 삶과 일상 속에서 실제로 쓰인 생생한 향토 지명임을 증명합니다.
▶▶▶7. 명문가 세보(世譜:족보族譜) 등 : 4건
일직손씨, 평산신씨 등 밀양의 주요 명문가 족보와 실기(實記)에 기록된 가문 역사 속의 증거입니다.
향토 사회를 이끌어온 사대부 가문에서도 조상들의 행적과 연고지를 '재악산'으로 명시했음을 보여줍니다
▶▶▶8. 관청 보고서 및 민원서류(書類) 등 : 2건
●현대 밀양시의 공적 업무보고서 및 국회도서관 소장 사료 민원 서류 등 행정 기관이 수록한 실증적 기록입니다.
●발굴된 문화재(개수탑기비 등)의 역사적 사실이 현대 공공 행정 문서로도 공식 확인되고 입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9. 지방관(부사, 군수 등) 명문(名文) : 2건
밀양부사(신익전), 고성군수/밀양군수 겸관(오횡묵) 등 지방 통치 행정관들이 직접 작성한 공식 기록입니다.
지역을 관할하던 수령들이 행정 문서와 기록에서 '載嶽山'을 정식 지명으로 인식하고 사용했음을 입증합니다.
▶▶▶10. 손흥수ㆍ도재국의 밀양이야기 기고문 : 7건 (1,013 페이지)
●44년간 조사·발굴한 사료와 검증 내용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지역 공적 매체에 학술적으로 공표한 집적물입니다.
●타 지명 주장(천황산일식명설)의 오류를 학술적으로 검증하고 산명 복원 운동의 역사적 당위성을 공고히 하는 핵심 논거입니다.
▶▶▶11. 15세기 중세국어 음운(音韻) 법칙으로 밝혀낸 載嶽山 : 1건
1. 15세기 중세국어 음운 법칙으로 밝혀낸 載嶽山의 학술적 정통성과 載藥山 표기의 허구성
●지명 왜곡의 핵심 원인(민간어원설의 오류)을 철저히 규명
●'載藥山'이라는 한자 표기의 근거를 근본적으로 소멸시킴
●문헌·지도 고증을 넘어서는 '국어학적 정통성' 확보
▶▶▶제목 : [국어학적 최종 결론] 15세기 중세국어 음운 법칙이 입증한 ‘載嶽山’의 정통성과 ‘載藥山’ 표기의 허구성(2)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56?svc=cafeapp
※26.7.27(월) 오후 6:05 내용을 추가하여 최종 작성했습니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43?svc=cafeapp
▶▶▶12. 일본국 문헌 등 : 5건
(명승 영남루 소개, 고지도 2건, 사진 1건, 문헌 1건)
●《일본지리대계》, 《조선국세견전도》, 일본 육군참모국 지도 등 일제강점기 전후 일본 측 기록에도 표기된 외사 자료입니다.
●일본 측 자료조차 '載嶽山'을 기본 지명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일제강점기 지명 변개의 부당성을 역으로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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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건 증거 각 제목 :
▶▶▶1. 문헌(문獻) 35건
1.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春夏)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26?svc=cafeapp
2. 점필재 김종직 선생 시문(1)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28?svc=cafeapp
3. 점필재 김종직 선생 詩文(2)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29?svc=cafeapp
4.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단장면 지세와 연혁條에 지금의 표충사를 옛날에는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0?svc=cafeapp
5.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山川 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2?svc=cafeapp
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山川 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3?svc=cafeapp
7. 밀주지(密州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漢文本, 河載裕 藏書,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4?svc=cafeapp
8. 밀주구지(密州舊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戊戌重陽獲撛,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5?svc=cafeapp
9. 밀주읍지(密州邑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6?svc=cafeapp
10. 교남지(嶠南誌) 밀양군편 山川 및 校院 條 재악산(載岳山), 화동(華洞) 電寫 소장(所藏)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37?svc=cafeapp
11.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밀양도호부"편 山川 條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0?svc=cafeapp
12.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밀양군편 산천조(山川條)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1?svc=cafeapp
13. 영지요선(嶺誌要選)券之一 밀양 山川條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2?svc=cafeapp
14. 교남지(嶠南誌)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밀양편 산천條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번역문)]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3?svc=cafeapp
15.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秋冬)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7?svc=cafeapp
16. 밀주승람[密州勝覽 1928~1929 편찬 추정, 丁卯年 손병현(孫秉鉉) 전사(電寫)]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0?svc=cafeapp
17. 대동지지(大東地志) 산수(山水) 條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3?svc=cafeapp
18. 국역 밀주지(지리편) 재악산(載岳山) 기록, 밀양문헌집람 제1호, 2001년 밀양문화원 발행, 이익성家 소장본)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4?svc=cafeapp
19.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 山川 條, 밀양 단장천을 재악천(載嶽川)으로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7?svc=cafeapp
20.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22권 여지고(輿地考) 산천(山川) 밀양(密陽) 342페이지,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75?svc=cafeapp
【32】 ★★재악산 증거★★★1800. 국민 여러분! 여기에도 '증보문헌비고'의 설명문과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재악산이 있습니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58?svc=cafeapp
21. 한국지리지총서 읍지1권(경상도읍지 10책 1832년경) 487페이지 지도(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253?svc=cafeapp
22. 한국지리지총서 읍지2권(영남읍지 7책 1895년경) 323.325페이지(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253?svc=cafeapp
23. 한국지리지총서(韓國地理志叢書) 읍지4권(영남읍지 3책 1871년경) 168페이지(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253?svc=cafeapp
24. 밀양부읍지(密陽府邑誌) 인물(효자)條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85?svc=cafeapp
25. 2006년 밀양지(密陽誌) 탁영당지(濯纓堂址) 재악산(載嶽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86?svc=cafeapp
【38-1】 고전번역서 > 간송집 > 간송속집 제1권 > 시 > 최종정보
간송속집 제1권 / 시(詩) 2首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13?svc=cafeapp
26. 밀주지[密州誌, 박수헌 저작, 1932.8.1 밀양군향교 발행, 재악산(載嶽山), 재악사(載嶽寺)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87?svc=cafeapp
27. 밀양 지리지 "미리벌의 얼" 1983.9 밀양군 발행, 503페이지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01?svc=cafeapp
28. 밀양유감(密陽儒鑑) 서문(序文)에 동천(東川) 발원지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5?svc=cafeapp
29. 단군봉안록(檀君奉安會案錄) 일람표(一覽表)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6?svc=cafeapp
30. 밀주지:군수(郡守) 추천(鄒川) 손영재의 아들 손기륜이 재악산(載嶽山)에서 노모를 구하고, 무참하게 왜적의 칼을 맞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468?svc=cafeapp
【55】★재악산 증거★1548. 추천 손영제의 행장에 아들 손기륜의 효행, 임란 때 재악산에서 모(母)를 구하고 왜적의 칼을 맞았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09?svc=cafeapp
31. 전선명승고적(全鮮名勝古蹟) 밀양군(密陽郡) 편 재악산(載嶽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255?svc=cafeapp
32. 점필재 김종직 회당고(悔堂稿):詩 고여촌 시골집에 묵으며 방운을 뒤섞어 짓다, 載岳山 기록
【新증거 71】 점필재 김종직 회당고(悔堂稿):詩 고여촌 시골집에 묵으며 방운을 뒤섞어 짓다, 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84?svc=cafeapp
33.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2년 병오 > 4월 21일 > 載岳山 배 만드는 목재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11?svc=cafeapp
[격문] "승정원일기" 영조대왕과 조정대신들의 준엄한 역사적 선언을 똑똑히 보라!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28?svc=cafeapp
[성명서] 《승정원일기》 왕조 실록의 엄중한 선언 앞에 ‘천황산(天皇山)·재약산(載藥山) 세력’은 답하라!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29?svc=cafeapp
34. 문헌:한국고전총간 > 여지도서 > 慶尙道 > 慶尙道 淸道郡 > 雲門山。 在郡東九十六里。 自本郡馬谷山來, 南作密陽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5?svc=cafeapp
35. 한국고전총간 > 여재촬요 > 輿載撮要 卷六 > 慶尙道 > 최종정보
輿載撮要 卷六 / 慶尙道 密陽府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4?svc=cafeapp
▶▶▶2. 고지도 14건
✿고지도 첨부(14건 확인 및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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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국여지승람 판심에 첨부된 동람도(東覽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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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중앙 판심 東覽圖(동람도) 판각 전통 목판본"과 "후대에 정간·재현한 지도"는 각각의 증거 능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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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1?svc=cafeapp
3. 청구도(靑邱圖) 곤(坤)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2?svc=cafeapp
4. 동여도(東輿圖)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경기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소장 : 최병운 선생 민원서류 첨부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5?svc=cafeapp
5. 한국지리지총서 읍지1권(경상도읍지) 속지도(屬地圖) 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253?svc=cafeapp
6. 【40】❻부산시립도서관 소장 海東圖 密陽府編의 注記:山川에 載岳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4?svc=cafeapp
7. 도별도(道別圖 : 경상도) "해좌승람(海左勝覽)"에 기록된 밀양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02?svc=cafeapp
8. 천하지도(天下地圖)중 경상도(慶尙道) 71官에 밀양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9?svc=cafeapp
9. 국립중앙도서관 136번 여지도 (청구기호 한古朝61-8) 경상도 載岳山 기록 (아래 지도)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82?svc=cafeapp
10.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21번 여지도 載岳山 (아래 지도)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8?svc=cafeapp
11.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7번 조선여지전도 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7?svc=cafeapp
12. 고지도:한국고전총간 > 신증동국여지승람 > 卷二十一 > 慶尙道 > 최종정보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7?svc=cafeapp
13. 고지도(정간본):한국고전총간 > 여지도서 > 慶尙道 > 최종정보
慶尙道
圖[密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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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陽府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6?svc=cafeapp
14. 여지도(輿地圖) 密陽府 주기(注記)란에 **‘載岳船材封山 周回五十里 距府五十里’**라고 명백히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4?svc=cafeap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91?svc=cafeapp
1》
【40】【73】❷輿地圖 密陽府 天王山 載岳山 異名, 注記:載岳船材封山【73】❻부산시립도서관 소장 海東地圖 注記에 載岳山기록【40】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4?svc=cafeapp
▶▶▶3. 표충사 관련 성보(聖寶) 금석문(비문) 3건
1. 천년고찰 표충사[表忠寺] : 문헌과 고지도 등에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또는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00?svc=cafeapp
●54-1.“선총(禪摠) 계심(戒心) 대선사(大禪師)님”께서 1491년 건립(改修)하신 載嶽山靈井寺삼층석탑개수비 (【도재국】, 국보 지정 당위성 강조)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722?svc=cafeapp
●54-2. 개수탑기비 이중이나, 사진과 내용 등을 참고하기 위해 같이 붙여 존치시킴
●비문에 선총(禪摠) 계심(戒心) 대선사(大禪師) 확인할 것
45.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나온 "재악산(載岳山) 영정사 개수비문" 에 재악산(載岳山) 산명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03?svc=cafeapp
2. 밀양 표충사 경내 비석걸에 있는 "경자갑보월비문(庚子甲補月碑文)"에 재악산(載岳山) 산명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04?svc=cafeapp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4155?svc=cafeapp
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載嶽山 최고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881?svc=cafeapp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재악사 載岳社 선염」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578?svc=cafeapp
●62번과 이중이나, 비문 사진 등이 있어, 62번에 붙여 존치시킴.
▶▶▶4. 표충사 관련 성보(聖寶) 불교경전 등 12건
1. ▶▶▶1639년 載嶽山 靈井寺의 法燈을 다시 밝히며 — 《妙法蓮華經》 開刊의 역사적 證座와 表忠寺에 올리는 靑願 —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44?svc=cafeapp
2. 범우고(梵宇攷) 밀양 사찰편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8?svc=cafeapp
3.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에서 1661년 개판(改版)한 기록이 있는 경전『김해 보현사 전적(典籍) 원각경(圓覺經) 개요』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462?svc=cafeapp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에서 발간한 원각경(圓覺經)
【54】★재악산 증거★1748. 원각경을 개판(開板)한 '재악산 영정사'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50?svc=cafeapp
4.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1458년 해인사 장경(海印寺 藏經) 50부 인쇄하여 배부시", 배부처에 "재악사(載岳寺)에 1부 주라" 로,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488?svc=cafeapp
5. 표충사 일주문:2017.3.12 【載岳山 表忠寺】 휘호 편액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672?svc=cafeapp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4067?svc=cafeapp
6. 2017.5.30. 표충사 산문 상량문(上樑文) 및 상량식 현수막 명문: “載岳山 表忠寺”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88?svc=cafeapp
【69】 ★★재악산 증거★★★1562. 석천 박지석 선생이 載嶽山 表忠寺 신축 山門의 7.2m 길이 상량문을 작성하는 것을 도재국은 사흘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18?svc=cafeapp
7. 표충사 산문 2017.8.17, 안쪽【載嶽山門】 바깥쪽【護國聖地 表忠寺】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871?svc=cafeapp
8. 무오년(1738년) 예조(禮曹) 완문(完文)의 지시 사항에 載嶽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47?svc=cafeapp
9. 동계집(동계 경일 선사 撰) 載岳山記에 載岳山 유래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987?svc=cafeapp
【74】 고려 의천의 『교장(敎藏)』 간행 이후 최대의 불사(佛事) 동국대학교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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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계집(東溪 敬一 禪師 撰)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에 載岳山 유래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987?svc=cafeapp
【75】★재악산 증거★★★1550. 韓國佛敎全書 第十二冊, 敬一東溪의 密陽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1994, 동국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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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계집(東溪 敬一 禪師 撰) 刊記에 "康熙五十年慶尙左載岳山靈井寺開刊"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987?svc=cafeapp
12. 천태종통기(天台宗統紀) 기록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개간(開刊)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제일(卷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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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문(詩文) 7건
1. 점필재 김종직 시문(1)
옥명 상인이 봄가을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산천을 유람하는데, 올 신축년 모춘에는 은혜스럽게 ★명발와로 나를 찾아와서 장차 ★재악을 들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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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김종직 시문 3건(시 및 설명문) 載岳 기록(문집 목차 사진):3권 1건 載岳 기록, 15권 2건 載岳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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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점필재 김종직 시문(2)
팔월 십오일에 절도사를 모시고 입암에서 노닐다[八月十五日陪節度使遊立巖]:
입암은 울산(蔚山)의 서북쪽으로 20리쯤에 있다. 물이 ★재악(載岳)에서 나와 동쪽으로 언양(彦陽)을 경유하여 해구(海口)에 이르러 황룡연(黃龍淵)으로 들어가는데 - - -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29?svc=cafeapp
점필재 김종직 시문 3건(시 및 설명문) 載岳 기록(문집 목차 사진):3권 1건 載岳 기록, 15권 2건 載岳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47?svc=cafeapp
3. 점필재 김종직 시문(3)
안시숙이 노조동과 정세린 두 수제와 함께 ★載岳에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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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김종직 시문 3건(시 및 설명문) 載岳 기록(문집 목차 사진):3권 1건 載岳 기록, 15권 2건 載岳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47?svc=cafeapp
4. 한시(漢詩) 表忠寺紅流洞遊吟 표충사 홍류동에서 놀며 읊다(愚堂集:류창목 上 334 페이지)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5?svc=cafeapp
5.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 1712-1781) “산수고(山水考), 산위(山緯)" 밀양부(密陽府)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565?svc=cafeapp
6. 조선 중기, 금계 황준량 재악산(載岳山)으로 가면서 지은 시(詩)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655?svc=cafeapp
【60】 고전번역서 > 금계집 내집 제1권 > 시(詩) 재악암에서 묵으며〔宿載岳菴〕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3?svc=cafeapp
7. 한국문집총간 > 간송집 > 澗松先生續集卷之一 > 詩○七言絶句 > 최종정보
澗松先生續集卷之一 / 詩○七言絶句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10?svc=cafeapp
▶▶▶6. 載嶽山이 소재한 단장면민 등이 즐겨 부른 농요(農謠) 1건
1. "단장면 리동가(里洞歌)"에도 불려진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4?svc=cafeapp
▶▶▶7. 명문가 세보(世譜:족보族譜) 등 4건
1. 밀양 명문가(名門家) 평산신씨(平山申氏) "송계선생실기(松溪先生實記)"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49?svc=cafeapp
2. 밀양 명문가(名門家) 일직손씨 세보(1612년)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64?svc=cafeapp
3. 한국문집총간 > 내암집 > 來庵先生文集卷之十二 > 行狀 > 최종정보
來庵先生文集卷之十二 / 行狀
松溪申先生行蹟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9?svc=cafeapp
4. 한국문집총간 > 입재집 > 立齋先生文集卷之三十 > 跋 > 최종정보
立齋先生文集卷之三十 / 跋
松溪申先生實紀跋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08?svc=cafeapp
▶▶▶8. 관청 보고서 및 민원서류(書類) 등 2건
1. 1906년 인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조(山川條) 재악산(載岳山), 서울 국회도서관 소장, 최병운 선생 민원서류 첨부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56?svc=cafeapp
2. 표충사 삼층석탑 해체 경위 업무보고서
●수록된 곳 : 밀양이야기 제2호 29페이지
●보고일자 : 95.6.2
●작성 기관 : 밀양시 문화공보실
●내용 : 공사 개요, 추진 상황, 출토품
●출토품 : 음각된 석판 1점(개수탑기비) 외 다수
●금후 조치 예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강우방의 총지도하에 잔존 탑 기단부 실측 및 정밀조사 예정
53. 524년 만에 드러난 "재악산(載岳山) 영정사(표충사) 삼층석탑 개수비문"의 탁본과 삼층석탑 해체,중수 과정 업무보고서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34?svc=cafeapp
▶▶▶9. 지방관(부사, 군수, 관찰사 등) 명문 2건
1. 동강집(東江集, 밀양부사 신익전 찬, 1652년)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65?svc=cafeapp
2.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7?svc=cafeapp
●천유가 1839(己亥) 삼대사 신위 봉안후 56년째인 1894년 밀양군수 겸관했던 오횡묵이 사명대사 관련 글에 ”재악산(載岳山)으로 기록
※51번과 이중이나, 참고할만 것이 있어 같이 붙여 존치시킴.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26?svc=cafeapp
▶▶▶10. 손흥수ㆍ도재국의 밀양이야기 기고문 7건 (1,013 페이지)
《밀양이야기》 기고문이 가지는 4가지 핵심 증거 가치(AI Gemini 분석 및 평가)
① 44년 조사 노력의 '집대성 및 시점 입증' (史料의 集積)
② 공적 매체를 통한 '학술적 공표'의 증거
③ 지명위원회 심의 시 '전문가 의견서' 성격의 증거
④ 민간 및 지역 사회의 '산명 복원 운동 역사' 자체의 증거
1. 밀양이야기 제2호(2011년):載嶽山 산명 고찰, (52~108페이지:57페이지), (손흥수 기고)
2. 밀양이야기 제5호(2014년):단장면 이동가(구전 口傳 가사 채록, 가사에 載嶽山 있음), (121~129페이지:8페이지),
※載嶽山이 소재한 丹場面 전체 面民들이 300년 이상 불러 전해지는 잊혀져가는 長文의 농요(農謠)를 단장면과 가사를 따라 영남루까지 구석구석 현장 조사 (손흥수 기고)
3. 밀양이야기 제6호(2015년):특집<집중탐구>, 載嶽山은 알고 있다(7~70페이지:63페이지) (손흥수 기고)
4. 밀양이야기 제9호(2018
년):집중탐구,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의 보물(寶物) 지정 경위와 무이거부(無二巨芙) 스님, (19~174페이지:156페이지), (손흥수ㆍ도재국 공동 기고)
5. 밀양이야기 제10호(2019
년):집중탐구, 울산측이 주장하는 천황산(天皇山) 산명의 근거인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의 허구성 검증, (41~272페이지:231페이지), (손흥수ㆍ도재국 공동 기고)
6. 밀양이야기 제11호(2020
년):집중탐구, 35년째 조사한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시대별 증거, (57~374페이지:318페이지), (손흥수ㆍ도재국 공동 기고)
7. 밀양이야기 제12호(2021
년):집중탐구,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이해와 산명 복원 운동 추진 경과, (97~278페이지:180페이지), (손흥수ㆍ도재국 공동 기고)
▶▶▶11. 15세기 중세국어 음운(音韻) 법칙으로 밝혀낸 載嶽山 : 1건
1. 15세기 중세국어 음운 법칙으로 밝혀낸 載嶽山의 학술적 정통성과 載藥山 표기의 허구성
▶▶▶제목 : [국어학적 최종 결론] 15세기 중세국어 음운 법칙이 입증한 ‘載嶽山’의 정통성과 ‘載藥山’ 표기의 허구성(2)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56?svc=cafeapp
※26.7.27(월) 오후 6:05 내용을 추가하여 최종 작성했습니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43?svc=cafeapp
▶▶▶12. 일본국 문헌 등 5건
1. 일본지리대계(日本地理大系) 조선편(朝鮮編)에 나오는 재악산(載岳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22?svc=cafeapp
2. 오기팔도(五畿八圖) 조선국세견전도(朝鮮國細見全圖 : 全國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일본인 제작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274?svc=cafeapp
【31】 24.05.18.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34번 朝鮮國細見全圖(한古朝61-71) 載岳, 全圖 있음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79?svc=cafeapp
3. 국립중앙도서관 고지도(108번), 조선전도 밀양 재악(載岳), [ 1894년 인쇄, 조선총독부 고서, 동경, 일본 육군참모국 ]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512?svc=cafeapp
4. 사진:일본인의 載岳山 등산 기념사진에 ‘在岳山’(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98?svc=cafeapp
5. 『日本國會圖書館本 밀양도호부지(密陽都護府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97?svc=cafeapp
【77】 ★★재악산 증거★★★1549. 『일본국회도서관본 밀양도호부지(密陽都護府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10?svc=cafeapp
▶▶▶13. 일제가 천황산 정상 임야를 기형적 이례적인 지적 3㎡로 분할
1.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 정상 소재지인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산 1-1번지의 기형적이고도 매우 이례적인 면적 3㎡(19,603,174 ㎡에서 분할)로 지적 분할은 載嶽山 증거가 된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460?svc=cafeapp

첫댓글 국가(왕조)적 검증이 전혀 안된 신라왕의 병치레인 약수와 약초로 대표되는 載藥山(해발 1189m와 해발 1108m)으로는 93건의 載嶽山을 증명하는 거대한 載嶽山(해발 1189m)을 덮을 수 없습니다. 93건의 載嶽山 증거에는 당연히 신라왕의 병치레 관련 약수와 약초에 관련된 동국대학교 출판부가 간행한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문헌인 《韓國佛敎全書》의 《東溪集》에 영정사에 주석하신 《동계 경일 선사님》이 지어신 《載岳山記》와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名文에는 載藥山이 아닌 載岳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 2시부터
오전 10:35까지 글을 작성하고
오전 10:50에 아침을 먹었습니다
※참고사항:(2)
의회에서 손흥수ㆍ도재국의 의견(설명)을 청취할 때, 관련 정부 부처 또는 지자체 관련 부서와 언론기관, 일반 국민, 도민, 시민이 함께 청취하도록 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