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정도전이 이곡을 지어 연주했다
그런데 어찌 정동방곡이라고 했을까?
동쪽을 편안하게 한 것을 정동방이라고 하지만
동쪽을 쳐부셔도 정동방 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조의 계유정란도 세조의 반역을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정난이라고 한다
이 경우 정난은 政亂 이라고 해야 하지만 한자로는 편안하게 할 정이라고 설입자 옆에 푸를청자를 쓰고 정난이라고 읽는다
북한 압록강 한가운데 있는 주먹만한 땅에서 이성계 요동정벌군은 장맛비와 싸웠다고 조작된 역사는 말하고 있다
그러다 햔양으로 군사를 돌려 반역한 것이라고 한다
이조역사의 이 대목은 이성계는 반역의도가 없었지만 무학대사의 선종승려들이 이성계를 등에 업고 저지른 짓이라는 설도 있다
어찌됬든 정동방곡은 이성계가 서쪽에 있었고 이성계가 회군하여 공격한 고려의 평양성은 상대적으로 동쪽에 있었다는 말이다
이성계의 고향은 어디인가?
여진족 이성계는 고려의 홍건적을 소탕하여 고려왕실의 신임을 얻었다
당시 고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시안이다 위화도는 감숙성 위주와 화주 사이에 있는 강과 강사이에 있는 사람이 안 사는 땅이다
도라고 해서 모두 바다에 있는 섬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북간도는 어찌 북간도라고 섬도짜를 썼겠는가?
북간도 역시 송화강 =쑹허강 과 헤이룬= 흑룡강 사이에 있기에 도라고 하는 것이다
결코 한반도 압록강 한가운데 있는 주먹만한 섬이 아닌 것이다
위주와 화주사이에 있는 그 어딘가에서 동쪽으로 회군하여 고려를 접수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했다고 정도전의 [정동방곡]은 노래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성계의 여진족은 어디를 근거지로 존재 했을까? 알마티? 아니면 카자크스탄? 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첫댓글 같이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집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성계의 선조들의 묘가 달단동에 있다고 하였으니, 달단의 고향이라고 봄니다. 이곳에서 고조부 이안사가 몽고의 달로화적으로 시작해 호족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원의 쇠퇴가 확실해 지니, 고려왕조로 귀화하였으나, 이는 원의 쇠퇴로 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이성계라고 해도 이는 결코 칭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봄니다. 이때부터 요동지방은 조선왕조의 영토에서 제외됩니다. 이성계때문이죠. 거기다가 출정한 장수가 항명하여 회군하여 군주를 위협, 협박한다는 것은 반란과 반역입니다. 명분이 없습니다. 결국 역성혁명이 되었으며, 왕씨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예는 유일무이합니다.
高句麗(고구려)를 이는 高麗(고려)왕조는 黃河(황하)의 東西(동서)축을 중심으로 일만(一萬)리에 걸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역사서에서는 女眞(여진)은 '알타이산맥으로부터 신강성의 북방 준갈이지대와 카자흐스탄과 우랄산맥 동서지역'>이라고 봅니다. 정도전이 쓴 문집속에 이야기를 보면 ; 당시의 영토는 반도일 수 없다는 증거들이 있죠. 근대조선 초기의 많은 이야기들은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명분을 찾으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명분을 얻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이성게에 대한 미화된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의 개국시조들의 이야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미사려구로 포장된 아름다운 이야기뿐이죠.
이러한 아름다운, 달콤한 이야기는 수천년, 수백년을 건너 뛰어, 오늘날의 정치가들도 이를 인용하여, 훌륭하게 써 먹고 있죠. 선거철만 되면 : 모든 것들이 국민을 위한 것처럼 아름다운 말로, 달콤한 말로, 속삭이지만, 그것은 대부분 속임수라는 것을 압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쭉 그러왔으니, 누굴 탓할 수 있겠습니까? 몽고계 여진족 이성계! 그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조선으로 볼 때는, 수천년 조선의 근간지지였던 요동지방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죠. 현재의 역사해설로 볼 때, 그렇습니다. 조선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조선사의 진실은 영토를 찾지 못한다면 풀릴 수 없다고 봅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