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문재 엮음,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 푸른사상, 2021년 9월 30일.
박인환 영화평론의 실제
맹문재
1.
박인환은 1948년 1월 「아메리카 영화 시론」(『신천지』)을 발표한 이후 59편의 영화평론을 발표했다. 동시대의 그 어떤 영화평론가보다도 활발한 평론 활동을 펼쳤다. 앞으로 박인환은 동시대의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로서도 지위를 확고하게 가지게 될 것이다.
박인환이 영화평론을 본격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부터, 특히 1954년 1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결성한 뒤부터였다. 영화평론이라는 장르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인환이 주도한 이 조직활동은 한국 영화평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박인환은 이 단체의 상임 간사를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의 문화 중에서 영화는 단연 앞장선 것이었으므로 박인환의 영화평론 활동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박인환은 그 이전에도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카 영화에 대하여」(『신천지』, 1948. 1), 「전후(戰後) 미․영의 인기 배우」(『민성』, 1949. 11), 「미․영․불에 있어 영화화된 문예 작품」(『민성』, 1950. 2), 「로렌 바콜에게」(『신천지』, 1950. 6), 「그들은 왜 밀항하였나?」(『재계』, 1952. 8) 등이 그 예이다. 특히 박인환은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모델인 로렌 바콜(Lauren Bacall)을 모더니즘 시 운동을 추구한 동인지 『신시론』의 표지 사진으로 쓸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근대문명의 불안과 황폐함을 직시하는 그녀의 눈빛을 포착한 것이었다.
2.
박인환은 한국전쟁이 휴전된 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영화평론 활동을 시작해 1953년에 2편, 1954년에 15편을 발표했다. 1953년에 발표한 영화평론은 「자기 상실의 세대―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 관하여」(『경향신문』, 1953. 11. 29), 「<종착역> 감상― 데시카와 셀즈닉의 영화」(『조선일보』, 1953. 12. 19)였다.
1954년 상반기에 발표한 영화평론은 「<제니의 초상> 감상」(『태양신문』, 1954. 1. 9), 「로버트 네이선과 W. 디터리 영화 <제니의 초상>의 원작자와 감독」(『영화계』 창간호, 1954. 2), 「1953 각계에 비친 Best Five는?」(『영화계』 창간호, 1954. 2), 「한국 영화의 현재와 장래― 무세(無稅)를 계기로 한 인상적인 전망」(『신천지』, 1954. 5), 「한국 영화의 전환기―영화 <코리아>를 계기로 하여」(『경향신문』, 1954. 5. 2) 등 5편이다. 하반기에 발표한 영화평론은 「앙케트」(『신태양』, 1954. 8), 「영국 영화」(『현대여성』 , 1954. 8), 「몰상식한 고증― <한국 전란의 고아>」(『한국일보』, 1954. 9. 6), 「물랭루즈」(『신영화』 창간호, 1954. 11), 「존 휴스턴」(『신영화』, 1954. 12), 「<심야의 탈주>」(『신영화』, 1954. 12), 「<챔피언>」(『영화세계』 창간호, 1954. 12), 「일상생활과 오락― 최근의 외국 영화를 중심으로」(『중앙일보』, 1954. 12. 12), 「인상에 남는 외국 영화― <심야의 탈주>를 비롯하여」(『연합신문』 , 1954. 12. 23), 「100여 편 상영 그러나 10여 편만이 볼만」(『중앙일보』, 1954. 12. 19) 등 10편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라앉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954년에 들어 『영화계』(2월), 『신영화』(11월), 『영화세계』(12월) 등의 영화 잡지들이 창간된 데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영화는 희망의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전문 잡지가 발간되어 대중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끈 것이다. 박인환은 영화 잡지들을 비롯해 다양한 언론 매체에 영화평론을 발표함으로써 외국 영화와 영화배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물론 한국 영화의 상황을 진단하고 전망했다.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배우 등 영화 제작과 관계된 문제뿐만 아니라 영화 정책에도 관심을 갖고 그 나름대로 발전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3.
박인환의 영화평론 활동은 1955년에 들어 더욱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외국의 명화 및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소개하거나 국내의 영화 상황을 진단했다. 외화 본수를 제한하는 문제며, 영화의 사회의식과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타내었다. 1955년에 발표한 영화평론은 다음과 같다.
1) 「영화의 사회의식과 저항― M. 카르네의 감독 정신을 중심으로」(『평화신문』, 1955. 1. 16)
2) 「외화(外畵) 본수(本數)를 제한― ‘영화심위(映畵審委)’ 설치의 모순성」 (『경향신문』, 1955. 1. 23)
3) 「최근의 외국 영화 수준」(『영화세계』, 1955. 3)
4) 「최근의 국내외 영화」(『코메트』, 1955. 4)
5) 「1954년도 외국 영화 베스트 텐」 (『신태양』, 1955. 6)
6) 「영화 예술의 극치―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보고」(『평화신문』, 1955. 6. 28)
7) 「악화(惡畵)는 아편이다」(『중앙일보』, 1955. 7. 12)
8) 「시네마스코프의 문제」(『조선일보』, 1955. 1. 24)
9) 「문화 10년의 성찰―예술적인 특징과 발전의 양상」(『평화신문』, 1955. 8. 14)
10) 「<피아골>의 문제― 모순 가득 찬 내용과 표현」(『평화신문』, 1955. 8. 25)
11) 「산고 중의 한국 영화들― <춘향전>의 영향」(『신태양』, 1955. 9)
12) 「회상의 명화선(名畵選) ― <철로의 백장미> <서부전선 이상 없다> <밀회>」(『아리랑』, 1955. 9. 1)
13) 「서구와 미국 영화 ― <로마의 휴일> <마지막 본 파리>를 주제로」(『조선일보』, 1955. 10. 9)
14)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어째서 우리를 감명케 하는 것일까」(『평화신문』, 1955. 10. 17)
15) 「예술로서의 시네스코― <스타 탄생>과 <7인의 신부>」(『중앙일보』, 1955. 10. 25)
16) 「영화 감상을 위한 상식」(『희망』, 1955. 11. 1)
17) 「회상의 그레타 가르보― 세계를 매혹케 한 그의 영화적 가치」(『평화신문』, 1955. 11. 27)
18) 「비스타 비전」(『주간 희망』 창간호, 1955. 12)
나치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된 뒤 프랑스에서는 반(反)나치즘 및 레지스탕스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마르셀 카르네 감독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박인환은 「영화의 사회의식과 저항― M. 카르네의 감독 정신을 중심으로」에서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인생유전>을 소개하면서 그와 같은 면을 조명했다.
「외화 본수를 제한― ‘영화심위’ 설치의 모순성」에서는 외국 영화 수입을 1년 동안 100본으로 제한하고, 수입의 가부를 정할 수 있는 영화심사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열악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외국 영화의 배급이 수월하지 않을 것은 물론 시나리오와 촬영 대본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는 이들로 구성된 영화심사위원회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최근의 외국 영화 수준」, 「최근의 국내외 영화」에서는 국내외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 존 휴스턴 감독의 <아프리카 여왕>, 스탠드 크레이머 감독의 <탐정 이야기> 등이었다. 「1954년도 외국 영화 베스트 텐」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선정한 것인데, <제3의 사나이>가 가장 선호하는 영화로 선정되었다. 다음으로 <파리의 아메리카인>, <오르페> 순이었다.
「영화 예술의 극치―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보고」, 「시네마스코프의 문제」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시네마스코프 영화는 1953년 ‘20세기 폭스’가 개발한 와이드 스크린 상영 방식으로 관객들은 이전보다 넓고 디테일한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박인환은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성의>를 보고 난 뒤 소감도 밝히고 있는데, 예술성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영화사 차원에서는 혁명적인 기술 발전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화 10년의 성찰―예술적인 특징과 발전의 양상」에서는 외국 영화를 중심으로 예술적 특징과 발전 양상을 정리했다. 반(反)나치주의 작품, 뉴로티시즘 경향, 장 콕토의 예술, 마르셀 카르네 작품들, 영국의 색채 영화, 데이비드 린과 캐롤 리드의 작품들, 이탈리안 리얼리즘, 미국 영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산고 중의 한국 영화들― <춘향전>의 영향」에서는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춘향전> 전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한국 영화가 제작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면서, 그 영향으로 고전을 소재로 제작 중인 <왕자 호동> <단종애사> <양산도> 등도 소개했다.
박인환은 「회상의 명화선(名畵選)」, 「서구와 미국 영화」, 「예술로서의 시네스코」에서 <철로의 백장미>, <서부전선 이상 없다>, <밀회>, <로마의 휴일>, <마지막 본 파리>, <스타 탄생>, <7인의 신부> 등 명화 소개에도 열성을 보였다.
4.
1956년에 들어 박인환이 발표한 영화평론 중에서 ‘영화 상식’이란 주제로 『주간희망』에 연재한 것이 주목된다. 「비스타 비전」(창간호, 1955. 12. 26)을 시작으로 「금룡상을 제정」(2호, 1956. 1. 2), 「영화 법안」(3호, 1956. 1. 9), 「영화 구성의 기초」(4호, 1956년. 1. 16), 「몽타주」(5호, 1956. 1. 23), 「아메리카의 영화잡지」(6호, 1956. 1. 30), 「시나리오 ABC」(8호, 1956. 2. 13), 「다큐멘터리영화」(11호, 1956. 3. 5), 「세계의 영화상」(12호, 1956. 3. 12), 「옴니버스영화」(13호, 1956. 3. 19) 등이다. 대중들에게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박인환은 「1955년도의 총결산과 신년의 전망」에서 유두연(영화평론가), 이봉래(문학평론가)와 함께 좌담회를 마련해 1955년의 영화 전반에 대한 평가를, 「한국 영화의 신구상」에서는 김영수(작가), 김용환(만화가)과 함께 영화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1956년 3월 20일, 박인환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영화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의 급작스러운 비보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박인환이 타계한 이후 발표한 영화평론은 「<격노한 바다>」, 「이태리 영화와 여배우」, 「J.L. 맨키위츠의 예술― <맨발의 백작 부인>을 주제로」, 「회상의 명화― <백설 공주> <정부(情婦) 마농>」, 「절박한 인간의 매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