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 turn
That leads us to
who knows where
Who knows when
But I`m strong
Strong enough to carry him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So on we go
His welfare is of my concern
No burden is he to bear
We'll get there
For I know
He would not encumber me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If I'm laden at all
I'm laden with sadness
That everyone's heart
Isn't filled with the gladness
Of love for one another
It's a long, long road
From which there is no return
While we're on the way to there
Why not share
And the load
Doesn't weigh me down at all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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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가야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우리를 인도해주는
그 길은 많이도 굽어져 있는
멀고도 먼 길입니다.
하지만 난 그를 데려갈 만큼
난 충분히 강인하답니다
그는 짐이 되는 사람이 아녜요,
그는 나의 형제랍니다
그러니 우린 계속해서 나아가야 해요
내가 걱정하는 건 그의 행복이지요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은 없습니다
우린 곧 그 곳에 닿겠지요
그는 나를 귀챦게 하지 않는다는걸
내가 알기에
그는 내게 짐이 되는 사람이 아녜요,
그는 나의 형제랍니다
아무리 내 마음이 괴롭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에 대한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라는
슬픈 사실을 난 안고 있을거예요
이 길은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멀고 먼 길입니다
우리가 그 곳에 가고 있는 동안
서로의 마음을 같이 못할 이유는 없는거예요
그 어떤 짐도 결코
날 주저앉게 하지는 못할거예요
그는 내게 짐이 되는 사람이 아녜요,
그는 나의 형제랍니다
그는 나의 형제에요
그는 내게 짐이 되는 사람이 아녜요,
그는 나의 형제랍니다
그는 내게 짐이 되는 사람이 아녜요,
그는 나의 형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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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lies is...
절묘한 하모니와 아름답고 맑은 연주를 들려주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영국밴드로 더 비틀즈 the Beatles를 거론하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들은 영국이 낳은 최고의 밴드인 동시에 팝과 락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밴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 했다 하더라도 1964년 비틀즈를 선두로 이루어졌던 영국의 미국침공에 한 몫을 단단히 한 팀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더 홀리스(The
Hollies) 이다. 이들은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의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트리오의 하모니와 토니 힉스(Tony Hicks)의 맑은 기타연주가 매력적이었던 맨체스터 출신의
영국밴드이다.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시절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밴드로 꼽히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더 가이톤스(The Guytones), 투 틴스(Two Teens), 리키 앤 데인(Ricky and Dane) 등의 이름으로 지역 내에서는 꽤나 알려졌던 듀오 알란 클락(Allan Clarke)과 그래엄 내쉬(Graham
Nash)가 에릭 헤이독(Eric Haydock (bass))과 돈 래스본(Don Rathbone (drums))을 영입하고 Fourton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시작된다. 다시 밴드명을 the Deltas로 바꾼
이들은 맨체스터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던 기타리스트 토니
힉스를 영입하고 밴드의 이름을 더 홀리스라고 칭한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영국의 유명한 캐번 클럽(Cavern Club)에서
이들의 공연을 본 EMI의 프로듀서 론 리차드스(Ron Richards)와 계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당시 활동하던 대부분의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R&B (Rhythm &
Blues)나 초기 락앤롤곡을 많이 커버했는데 홀리스의 첫 두 싱글이 코스터스(Coasters)의
<(Ain't That) Just Like Me>와 <Searchin'>인 것만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싱글이 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이들은 앨범작업에 들어가는데 초기에 발표한 두 장의 앨범은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이들의 공연실황을 담은 작품으로서 오랫동안 차트에 머무르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이후 홀리스는 1963부터 1974년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the Rolling Stones등과 라이벌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홀리스 인기의 비결은 클락, 힉스 그리고 내쉬의 환상적인 하모니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트리오의 하모니는 팝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트리오는 서서히 작곡실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꽃을 피운 작품이 1965년의 <Too Many People>이다.
1965년 <I'm Alive>로 처음으로 영국 차트 1위에 오른 홀리스는 1966년에는 칩 테일러
Chip Taylor와 공동작업을 한 <I Can't Let Go>가 다시 한 번 차트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이 곡은 NME (New Musical Express)가 선정한 최고의 곡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계속해서
그래엄 구드맨(Graham Gouldman)의 <Bus stop>, <Stop, Stop, Stop>, <On a Carousel>을 차트에 진입시키던 이들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flower power'에
재빠르게 편승해 프로그레시브한 음악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던 1968년 「Hollies Sing
Dylan」을 제작하던 이들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쳐온다. 팀의 중추역할을 했던 그래엄 내쉬가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쉬 Crosby, Stills and Nash에 가입하기 위해 팀을 탈퇴한 것이다.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팀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탈퇴는 20년이 넘는 클락과의 우정에도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 클락은 이후 홀리스 최고의 히트곡으로 손꼽히는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를 포함해 7곡의 노래를 히트시켰으나 끝내 솔로로 전향하고 만다.
이후 홀리스의 활동은 1973년 두 장의 솔로앨범을 발표한 클락이 밴드에 다시 합류하기 전까지 침체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클락이 돌아와도 별 수는 없었던 듯.. 1974년의 <The Air
That I Breath>가 미국 차트 6위에 오른 게 홀리스 최후의 히트곡이 된다. 하지만 이들은 꾸준히 커다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88년 한 맥주회사가 TV광고에 이들의 노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서 다시 한 번 이 곡이 차트에
진입하는 기이한 현상을 일으킨다. 1993년 영국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공로가 인정되어 아이버 노벨로 Ivor Novello 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들은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한 밴드가 4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해체하지 않고 활동을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현재 활동하고있는 중견팀 롤링 스톤즈나 에로스미스(Aerosmith)만 보더라도 해체후 재결성된 팀이 아니던가. 그것만 보더라도 홀리스의 음악에는 뭔가 커다란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게 우리를 매혹시키고 밴드를 매혹시켜 이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참고로 소리바다에는 이들의 노래가 거의 나와있지 않다. 불후의 명곡인 He ain't heavy. His
my brother 만이 남아있을 뿐 이다.... 이 글을 중간이상 보지못한 사람이라면 이 글 또한 보지못하리라.. 오늘은 시간이 좀 되는 관계로 간만에 html한번 연습(?)해 봤다. 암튼 앞으로 시간이 남으면 간간히 오릴 것을 약속하면서 영어공부하는 셈 치고 여기까정 보신분덜은 맨 끝줄 까정 보시기 바란다... 다시보니 폰트칼라에 내 글은 묻혀보인다..다행이다..-_-;; 이런...무려 3시간을 투자해서 이 노래를 올리려 애썼지만...무료팝폴더 4곳이나 돌아다니고.....링크도
찾아봤지만...이 곡은 없었다....그리고 mp3는 커서 upload도 안됀다...컹컹 언능 소리바다
폐쇄되전에 받아놓는것이 소장가치도 있고..암튼 수고스럽더라도 받아서 들으시길...어차피
링크걸면 음질도 안 좋고..언제가는 사라지는 법.... 다운받는게 속시원 할 듯 하다...승질급하신 분덜은 여기까정 보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들어보는게 좋을 것이다...내가 추천하는 곡이니까...쩝 경고!!:맨위의 이미지 누르지 않는게 좋을 듯....
-팝칼럼리스트 털-
*wind : [도로·강 따위가] 굽이치다, 꾸불꾸불[휘어지며] 나아가다(meander),
[계단 따위가] 나선 모양을 이루다.
- The river winds in and out. 그 강은 꾸불꾸불 굽이치며 흐른다
- The road winds along the river. 그 길은 강을 따라 꾸불꾸불하게 나 있다.
*heavy :「무거운」의 의미의 가장 일반적인 말;
비유적으로는 정신·기분·감각에 부담이 가는
- a heavy suitcase 무거운 슈트케이스
*So on we go = So we go on
*welfare : [잘해 가다의 뜻에서]복지, 번영, 행복, 복지 사업, 후생 사업[시설]
- child[public]welfare 아동[공공]복지
- the Ministry of Welfare 복지 후생성(부)
*No burden is he to bear : (=He is to bear no burden.) 도치구문
이 문장에서 is to 는 have to 의 의미 (be to 용법)
*burden : 무거운 짐
*encumber : 방해하다, 폐끼치다, 거추장스럽게 하다. (hinder, hamper)
훼방놓다, 귀찮게 굴다, …의 짐이 되다 (hamper).
- Heavy armor encumbered him in the water.
물속에서는 중장비가 그에게 거추장스러웠다
- a mind encumbered with useless learning 쓸모없는 학문으로 지장을 받은 마음
*laden : [책임·죄·슬픔 따위의] 무거운 짐이 지워진(burdened); [짐지고] 괴로와하는
고민하는(with...). 짐을 실은(loaded), (..을) 많이 가진, 충분히 지닌 (with...).
- a laden vessel 짐 실은 배
- a cart laden with hay 건초를 실은 수레
- trees heavily laden with fruit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가 열린 나무들.
- a heart laden with sorrow 슬픔으로 가득 찬 가슴.
*weigh : 자기의 무게로 가라앉다 (찌그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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