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의 추억
장 란 순
개는 포유동물 중에 가장 먼저 가축으로 길러졌다.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사람을 잘 따르고 의리가 있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복의 상징이다. 예로부터 잡귀와 요귀,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왔다.
요즘은 실내에서 애완견으로 기르며 가족처럼 보살피고 대접을 해주고 있으니 "개팔자가 상팔자다"라는 속담이 걸맞아지는 시대다. 적적하여 강아지를 기르고 싶지만 슬픈 추억이 먼저 떠올라 망설여진다.
결혼 초 남편은 ROTC장교로 전방에 배치되어 우리는 부대 근처 단칸 월세 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처음 삼팔선(GOP) 근무 기간 중에는 집에 나올 수 없게 되자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부대에 데리고 들어가며 해피라는 이름을 지었다. 3개월이 지났을까 품에 안고 들어갔던 강아지가 송아지처럼 큰 개가 되어 돌아온 해피, 끔뻑이며 바라보는 눈이 어찌나 착해보이고 정감이 가는지 전생에 동기간이나 절친한 친구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생각이 넘치도록 해피는 내 가족의 몫을 톡툭히 해 주었다.
남편은 퇴근이 늦어 한밤중에 귀가하는 날이 많았고, 훈련을 떠나면 며칠씩 걸린다. 그럴 때 해피는 호위병처럼 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오가는 사람 참견하며 짖어대고 어두운 밤이면 발자국 소리에도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집을 지킨다.
당시 장교가족이었어도 박봉이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였다. 남편이 불시에 훈련을 떠나 귀대하지 못할 때 나는 쌀이 없어 라면이나 크림빵 한 개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는데, 덩치가 큰 해피에게 적은 양을 먹이며 미안해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걱정 말라는 듯 바라보며 짖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승진이 되어 조금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해피가 좋아하는 고등어조림과 밥도 넉넉히 먹일 수 있었다. 곧이어 딸아이를 낳았고 우리는 해피라는 이름처럼 행복했다.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따라가며 배웅하는 해피, 퇴근길에도 먼저 뛰어나가 매달리니 별난 귀여움을 받았다. 한가하여 아기를 안고 대문 앞에 서있는 날이면 신발을 물어 당기며 산책을 가자고 재촉한다. 시냇물이 맑고 투명하여 물속에 비치는 올망졸망 하얀 돌이 보석처럼 빛나고 징검다리를 건너면 들판에 예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향기롭다. 나는 아기와 풀밭에 앉아 시도 읊고 노래도 부르며 꽃목걸이 만들어 해피목에 걸어주면 신이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찌나 좋아하던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호젓한 오솔길을 해피와 함께 걸으니 든든하여 종종 거닐곤 하였다. 간혹 아기가 울며 보채는 날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내가 즐거우면 저도 즐거운지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부리고, 내가 슬프면 저도 슬픈지 조용해지며 눈치를 살피던 영리하고 사랑스런 해피였다.
어차피 전역(제대)을 하면 해피와 고향에 같이 갈 수 없는 일이어서 부대에 두고 갈 생각은하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아침도 먹이지 못했는데 상관의 전령병이 해피를 데리러 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보내주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이상한 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해피가 목에 새끼줄이 감기고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부대에 도착해서야 상황(죽음)을 알았는지 사력을 다해 뛰처 나온 것 같았다. 애처로워 눈시울을 적시며 고깃국에 밥을 배불리 먹였다. 주인을 찾아 그 먼 길을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집을 찾아 온 해피, 재발 보내지 말아 달라는 듯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던 슬픈 눈빛에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해피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고 마음이 쓰라리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렀다. 수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지만 신혼 초 전방에서의 힘들었던 생활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그리워지는 것은 해피와의 인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다 떠나고 둘이 남은 집안이 쓸쓸하다. 강아지를 기르자는 남편의 의견에, 어쩌면 해피가 환생하여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니, 해피와 닮은 강아지를 한 마리를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오늘따라 해피생각이 간절해진다.
첫댓글 요즘 동물보호라는 일을 하다보니 눈에 번쩍 띄는 글입니다.
상상하는 다른 일이 더 생긴건 아니죠?..^^ 선생님 ~ 행복한 연말이길 바랍니다..
"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보내주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이상한 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해피가 목에 새끼줄이 감기고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부대에 도착해서야 상황(죽음)을 알았는지 사력을 다해 뛰처 나온 것 같았다. 애처로워 눈시울을 적시며 고깃국에 밥을 배불리 먹였다. 주인을 찾아 그 먼 길을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집을 찾아 온 해피, 재발 보내지 말아 달라는 듯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던 슬픈 눈빛에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해피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고 마음이 쓰라리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참 영리하고 똑똑한 개인 것 같네요, 정들면 모든지 사랑스럽지요, 개는 개대로 주인은 주인대로 교감 말입니다. 정을 떼기가 쉽지가 않았던 몬양입니다.내가 즐거우면 저도 즐거운지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부리고, 내가 슬프면 저도 슬픈지 조용해지며 눈치를 살피던 영리하고 사랑스런 해피였다.강아지를 키워보자는 남편의 의견에, 어쩌면 해피가 환생하여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니, 강아지를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오늘따라 해피생각이 간절해진다.감상 잘했습니다.
저도 어린시절 누렁이와 슬픈 이별 때문인지 그후 나도 모르게 짐승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해피와 행복한 추억 그리고 역시 가슴 아픈 기억도 새롭고요, 신혼 시절 아기랑 해피와 즐거웠던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아련한 신혼시절의 추억이 전해옵니다.글을 읽는 내내 노래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아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공해없는 전원을 거니는듯한 신선함을 느끼며 갑니다.선생님 건필하시고 행복하세요.
영리해서 사람과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동물이 개라고 들었습니다. 내게도 있었던 어린날의 아픈추억이 떠오르네요.
사람과 개는 가까운 사이지요. 저도 강아지를 기른 추억이 있습니다. 아이들 이름도 다 기억하더군요, 선생님의 해피사랑은 정겨운 사랑였군요.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역시 집에서 기르던 개' 백구'와 이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추억이지요 선생님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해피와의 행복한 추억이 가슴아픈 추억이 될 뻔 하였군요. 선생님의 고운 마음을 엿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스럽고 잔잔한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해피에 대한 추억, 두번째의 작은 해피와의 정을 쌓아가 보세요~
저도 강아지를 기르고 있습니다. 모퉁이 돌기 전부터 주인이 보이지 않는데도 애교부리듯 낑낑대는 우리 수니, 항상 웃음을 주지요. 그리고 전에 기르던 개와 헤어지는 아픔도 겪었답니다. 글 읽으며 내가 키웠던 개들을 모두 떠올렸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