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향 (1절)
계5:8절에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시141:2절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라고 했으니 유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유향처럼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신다.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3가지 요소는 첫째, 성경을 읽고 듣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다. 둘째, 깨달은 성경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 성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성경을 생활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위선자(바리세)가 된다.
고여 있는 물이 썩는 것처럼 성경을 실천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생활이다. 죽은 신앙생활은 썩은 냄새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기도는 성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하는 힘과 용기를 준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성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자기를 복되게 한다. 오늘날 기도원이 사라지고, 새벽기도회가 사라지는 것은 실천신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기도를 할지라도 성경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힘과 용기를 얻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여 구하는 기도는 도리어 사회를 타락시키고 부패하게 한다. 이러한 기도 때문에 교회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지탄과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하나님은 유향빠진 소제(감사)는 받지 않으신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예배 순서에도 기도를 빼서는 안 된다. 기도의 순서는 영광, 감사, 회개, 도고, 간구의 순으로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다.
4) 누룩(yeast)과 꿀은 넣지 말라(1절).
소제는 누룩과 꿀은 넣지 말아야 한다. 빵은 누룩과 꿀(설탕)을 넣으면 부드럽고 달콤하여 맛이 한층 더하는데 소제(떡)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첫째, 누룩은 썩히는 것으로 부패를 상징한다. 성도가 자기의 신덕(身德)을 하나님께 드릴 때, 즉 성도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욕심과 죄를 억제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욕심과 죄를 억제하지 못하고 죄를 범하면서 사는 것은 누룩을 넣은 소제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죄악을 품고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는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기도는 항상 회개를 한 후에 도고와 간구를 해야 한다.
고전 5: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성도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날 때 누룩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지체가 되었다. “묵은 누룩”이란 예수 믿기전에 행하던 죄악과 구습과 풍습을 말한다. 예수 믿고 누룩 없는 새로운 덩어리(지체)가 된 성도는 죄악과 구습과 풍습을 버리고 예수님과 연합된 지체로 살으라는 말씀이다.
둘째, 바리세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16:11절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말씀은 바리세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말씀이다. 바리세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인간들이 고안하여 만들어낸 교훈이기 때문에 그 교훈이 금장옥구 라도 석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설교가 성경이 아닌 여러 가지말로 짜깁기 하다가 마지막에 본문 한 구절로 결론을 짓고 마치는 설교를 하는데 이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탄의 술수에 걸려들어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있는 것이다, 교회는 금장옥구로 세우는 것도 아니요, 현란한 지식으로도 세우는 것이 아니요, 힘과 능력과 돈으로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세우는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니 담대함을 얻어 말씀을 전하니 4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영감)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있고, 말씀이 없는 곳에 성령이 없다. 그런의미에서 오늘날 강단은 성령의 역사가 없고 바리세인과 사두개인의 교훈만 있을 뿐이다. 말씀이 없는 교회가 몇 만명이 모인들 성령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겠는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고 목사의 고안으로 만들어 낸 교훈으로 설교하는 교회는 목사만 좋다. 여기서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부흥을 위해서 바리세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전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교회 나오겠다고 약속하면 죽은 사람을 장로와 집사로 세우는 목사도 있다. 주님께서 인자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꿀도 석지마라 꿀은 달다. 단것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러나 단것을 많이 먹으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켜 생명을 죽인다. 반대로 쓴것은 사람의 기뿐을 상하게 한다. 그러나 쓴 것을 먹으면 약이 되어 병을 고치고 생명을 건강하게 한다. 여기서 꿀을 석지마라는 것은 신앙생활을 인본주의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떠나서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마음에 맞춰 사람이 듣기 좋게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목사와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단것을 찾아야지 하나님의 말씀 아닌 것에서 단것을 전하고 찾는 것은 인본주의요, 인본주의는 실제적 무신론이다. 딛1:16절에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 했으니 이 말씀을 고 박윤선 목사님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실제적인 무신론자라고 했다. 오늘날 강단에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꿀을 먹임으로 성도들을 실제적 무신론자로 만들고 있다.
대형교회로 성장한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는 경북 교갱협의회가 주최한 세미나 강사로 초빙되어 자신의 축척된 설교를 통해서 교회를 성장시킨 노하우를 설명하면서 “설교자들이 Text(본문)에 대한 열정은 있는데 Context(문맥)에 대해서는 등한히 여긴다고 하면서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하여 ”시대를 아는 자가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현대인의 상황은 세속주의와 멀티미디어에 빠져 살고 있으며 상대주의와 실용주의에 교인들이 물들어 있다고 하면서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설교라”고 했다(인용: [교회와 신앙] 제109호 2005년 3월 9일자) 그가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봐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이다. 딤후4:3-4절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