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하다는 소리를 각오하고 이 글을 쓴다.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내년 설에 순수 서민 생계형 범죄에 대해 특별사면을 하겠다고 했다.
여론조사 지지을 하락의 대책이라니 사면받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 넘을 수 있다.
사면은 범죄를 봐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사면은 정말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경우에 실시된다.
거기에도 생계형 범죄가 있다.
관용을 베푸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러나 법 집행이 흐지부지되면 일시적으로 베푼 온정의 몇 십, 몇 백 배의 禍를 부른다는 진리를 안다.
그 진리대로 실천해서 오늘의 선진국이 된 것이기도 하다.
나중에 봐줄 것이라면 애초에 법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규제가 필요해 법을 만들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법이 무겁게 느끼게 되고, 신뢰가 서로 통하는 사회가 된다.
어려운 논리도 아니고 다 아는 상식이다.
작은 범죄를 처벌하는 것을 심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고 대통령이 그들에게 동조한다 해도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진국 사회로 올라서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생계형 범죄 사면에는 먹고 살려고 법 좀 어긴 게 뭐 그렇게 대수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이번 특별사면에서 자가용 음주운전은 사면 안 하고 택시나 트럭 음주운전은 사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음주운전 처벌법이 있는 것은 음주운전이 다른 사람의 차량에 치인 사람이 안 죽거나 덜 다치는 것이 아니다.
택시나 트럭의 음주운전은 자가용 음주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음주운전이 줄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처벌법을 가볍게 보고 범죄행위라는 의식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질서는 생계형이든 아니든 술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그 차에서부터 무너진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했더니 그 주변에서 犯法이 횡행하더라는 이론이 바로 이 얘기다.
속도위반도 트럭의 과속은 대형 폭탄의 질주와 같다.
생계형 트럭의 속도위반을 봐준다는 것은 그 트럭에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수많은 생계형 서민들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생계형 서민 범죄를 봐주면 그 피해는 주로 생계형 서민에게로 돌아온다.
무허가 노점상들도 단골 사면 대상이다.
먹고살기 위해 노점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사정은 딱하다.
그러나 무질서한 노점이 허가받은 노점과 같은 다른 상인들과 시민들에게 주는 피해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규제 법규를 만든 것이다.
무허가 노점상들이 다른 생계를 찾지 않고 법 집행 공무원들에게 달려들며
폭력까지 쓰는 것은 법이 별것 아니라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무질서는 길거리의 이 작은 無法에서부터 출발한다.
부도수표 사범(부정수표단속법 위반)도 사면 대상이라고 한다.
부도 내고 싶어서 낸 사람은 없다.
경제가 어려울 떄 부득이 하게 부도가 난 사연은 안타깝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보다 신용 질서를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
신용 질서는 꺠지기 쉬운 유리 그릇이다.
그 유리그릇을 지키려면 법 집행에 예외가 없어야 한다.
부도수표 낸 사람들을 봐주려면 그 피해자들도 국민 세금으로 구제해야 형평에 맞선다.
부도수표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과하다고 본다면 법을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법 잡행을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니 신용사회가 될 수가 없다.
1998년에 대통령 취임 축하라면서 교통법규 위반자 500만 명을 사면했다.
세계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어기고도 면탈되는 걸 경험한 사람에게 그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게 된다.
그 500만 명에게 그날로 교통법규는 죽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 질서가 엉망이라고 모든 사람이 개탄한다.
엉망인 교통 질서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
무질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계산도 안 된다.
다수가 저지르는 작은 범죄들이 모여서 사회의 기초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큰 범죄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지금 교통법규를 꼭 지켜야 하는 법으로 알고 있는 국민이 몇이나 되는가.
솔직히 필자도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다.
교통법규만 법대로 집행했어도 우리 사회의 질서는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드웨어로는 거의 선진국 근처에까지 왔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아직 멀었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선진국에서 며칠만 있어보면 우리 사회와 학연히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그게 무엇인지를 따지고 들어가면 늘 그 끝에는 '살아 있는 법'이 있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만들지 않는다.
일단 만든 법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집행한다.
이것이 선진 시민, 선진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를 그렇게 바꾸려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철도 노조 파업도 그중 하나다.
철도 노조 행태의 바탕엔 우리사회의 법 경시와 무질서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바탕의 근본 문제는 더 키우면서 꼭대기에 있는 철도 노조를 바로잡겠다고 한다.
성공한다 해도 우리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양상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