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에서 일하던 여성이
흙인과 사랑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
혼혈아이며 사생아로 자라는 아들을 기르며
돌아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는
끊질긴 그리움의 집념은 사람으로 여성으로
감당키 어려운 시련으로 몰아 부치는데
성장하는 아들의 이방인으로서의 번뇌와
행방조차 모르는 사람의 기다림은
존귀함도 수치심도 잃은 타락의 늪이었다.
미군용 폐차에서 기거하며
차 지붕위에서 빨래를 너는 여인네의 치맛자락에
벌레처럼 휘감아오는 뭇 사내들의
배꽃 향취에 욕정을 채우는 싸구려
여인네로 낙하 하면서도 연정을 담은
단 한사람에 대한 화두로 일생을 점찍으려는
아집으로 편지를 쓴다.
자신이 보낸 편지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어 오는것을
번번이 손에 쥐면서도.
사랑한 날보다 헤어진 날이 더 많아
헤어진 날 보다 그리움으로 얼룩진 날이 더 많아
그리움 보다 진한 아픔으로 있는
아들, 아들아...
되돌아 오는 편지를 쓰고 또 쓰는 어머니를
보다 못한 아들은 더운 목욕물 되펴
어머니의 몸을 닦아주는데 잡초 같이 엉크러진
이방인의 눈에도 눈물은 살아 있구나.
날카로운 칼날을 든다.
여성의 상징을 도려내야 한다고
그래야만 돌아 오지 않을 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버릴수 있음이라고
어미의 젖가슴을 도려내는 아들..
가슴을 도려 낸다고 삭아질까
도련당한 어미의 상처는
칼을 든 아들의 가슴에 꽂히는 것을.
내가 죽어 어머니의 피지 못한 사랑을 펼 수 있다면
기꺼이 죽어 드리오리.
눈쌓인 논밭에 거꾸리 곤두박질쳐
머리에서 무릎까지 눈덮인 땅속에 쳐박고
어미의 그리움을 잘라 버렸다.
두 발만이 하늘을 향해
아버지를 부르고 있다.
속세의 덧없음에 몰두하는
어머니를 가로막고 있다.
덧없는 것을 의미 있는것으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인간인양 외면한 타인에게로 향한 의미 부여는
파멸에 이르는 불멸이었다.
-지난 2월에 비디오로 <수취인 불명>을 보았습니다.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히 이 영화를 보며 후막이 포르티시모로 남아서
써 놓았던 감상문이 있어서 답글로 달아 봅니다.-
- 나탈리아-
키페 콘테에서 퍼온 글입니다.
--------------------- [원본 메세지] ---------------------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유는 이 영화에 대한 소개기사들로 보건데 어떤 의식지향적이면서도 지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선입견이 있었나 봅니다.
한데.. 이 영화는 김기덕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 자질을 가지고 있나 감탄할 수밖에 없게 하는 탁월한 재미를 선사하더군요. 많지 않은 영화예산과 짧은 영화제작기간을 감안할 때 김기덕감독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공간의 소외된 주변부인생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자회의 주류일 수 없듯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또한 일반인들의 성향과는 한참 거리감이 있는 모습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등장인물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신들의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양식을 펼쳐보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러니가 되고 웃음이 되는 묘한 영화더군요.
등장인물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국(양동근 분) --흑인과 양갈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틔기로서 태생적 특징으로 인해 고통받고 자신을 차별하는 사회에 알 수 없는 증오심이 뿌리 깊은 20대 초반의 남자. 자신의 고통이 마치 낳아준 어머니의 책임이란 듯이 어머니를 학대하면서 자신의 분을 삭이곤 한다.
사회는 온통 자신을 틔기로만 보고 불신하며 받아주지 않는다. 개눈을 증오하면서도 그의 밑에서 밥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양곡집(?)에서 막일꾼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
그는 개눈에게는 당하진 못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선 완력에 자신이 있다. 그러기에 친구 지홍(?)이 힘이 없어 당하는 일이 생기면 우정을 과시하기도 하고, 죄없는 강아지들을 죽이는 걸 참지 못하는 착한 인간미도 간직하고 있다.
창국모 -- 양갈보출신으로 자신을 두고 떠난 흑인 미병사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싶은 욕망으로 끝없이 되돌아오는 수취인불명 편지를 보낸다. 잠재 의식 속에선 미국은 강한 나라이며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길도 거기에 있다고 믿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영어로 말하면서 자신의 미국지향(우월)의식을 표출하곤 한다.
개눈 (조재현분)-- 비록 개벽정으로 살고는 있지만 미군의 개가 되어 살고싶지는 않은 주체의식도 강한 편이다. 창국모와는 애인 사이이며, 애인을 끊임 없이 패는 창국에게는 분노하기 일 수이다. 세상은 힘의 지배하에 움직인다는 믿는 이 사내, 약자에는 한 없이 강한 척 힘을 과시하는데, 개 죽이는 것이 본업이다 보니 창국을 다루는 방법도 개다루는 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은옥 -- 어릴때 오빠의 실수로 오른쪽 눈을 다쳐 항상 머리칼로 가리며 컴플렉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청순한 미모와 날씬한 각선미의 여고생이지만 자신의 성적 욕망을 강아지의 애무로 달래는 숨겨진 면도 있다.
자신을 순수한 사랑으로 좋아해주는 지홍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녀는 불량청소년들에게 강간 당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미군의 도움으로 눈수술에 성공하여 그의 애인역할을 하게 된다.
지홍 :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은옥을 좋아해서 그녀의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는 항상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고 결국 자신의 부족한 완력을 활로써 만회하려고 하며,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복수욕을 참을 수 없다.
미군병사 : 고향의 드넓은 평야지대에서 살다가 답답한 산악국가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약에 빠지며 은옥에게서 마음의 도피처를 찾고자 한다. 그럼에도 그는 군인의 길을 걷기엔 너무나 나약한 사나이이기에 결국 일탈행위를 벌이고야 마는데...
불량학생들 : 현실에 만족하지 못함일까 ? 그들은 자신들의 완력을 이용해 약한자들을 등쳐먹고 괴롭히는 짓을 삼가하지 않는다. 한데 그들 사이에도 엄연한 힘의 우열은 있었고 차별이 있었으니.. 약한자의 분노는 언젠간 시한폭탄이나 지로가 되어 터지고야 만다.
영화는 초중반까지 이러한 다양한 소외자들을 소개하며 여러가지 애피소드들을 전개해 나간다. 강한작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약육강식의 문화를 펼쳐보이며.
그러나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반전이 시작된다. 약자들이라고 인간이 아니고 감정이 없으랴.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울분을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해 나가는데... 약자들의 대반란이 이 영화의 재미를 한층 드높이고 세상의 모순을 터트리며 원초적 본능의 종말을 보여주고야 만다.
이 재밌는 작품의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 구하려하는 자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복선과 상징들을 숨겨놓았다. 그래서 해석을 하자면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해를 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많은 것을 구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을지 ? 작가도 그것까지는 원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다만, 김기덕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독특하고 신선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세계가 재미있는지는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의 영화로 파란대문, 나쁜 남자에 이어 이 작품을 보았다. 각 작품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흐르는 어떤 정서나 특질은 이제 대충 잡히는 기분.
인간이라는 벌거벗은 원초적 동물성과 그들이 이루는 사회성에 대해 그가 어떤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펼쳐보이는 세계는 분명 우리 인간들과 사회의 진면목의 일부분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의 동물성을 재인식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실이 건강하고 보람된 것이라 믿을 순 없으리.
인간의 역사는 항상 동물적 속성을 초월한 고귀한 인감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었기에, 결코 피할 수도 없고 가끔은 확인해봐야만 하는 동물적 인간성이라 할지라도, 여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결코 건강하지 못하고 바람직하지는 못하리라 믿는다.
그의 영화세계는 확실히 재미는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어떤 일탈성과 비상식적 속성에서 나오기에 불량기호식품적 속성을 안고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평가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