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각산 - 고래 등에 솟아난 뿔의 형상 풍요로운 들녘 감싸 안은 아버지 산
정복규 - 2013.04.10 20:15
[정복규의 새전북신문‘완산승경 시리즈’]
4.경각심홍(鯨角深紅)
경각심홍(鯨角深紅)은 <경각산의 짙은 단풍 모습>이다. 경각산(鯨角山)은 전북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으며 해발 659미터다. 심홍(深紅)은 깊을심(深), 붉을홍(紅)으로‘짙은 단풍’을 뜻한다. 단풍 중에서도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홍엽(紅葉)이라 부른다. 단풍은 가을을 대변한다. 경각산의 짙은 단풍은 이곳을 찾는 행락객들에게 즐거움을 한층 더해 준다.
<경각단풍로 승어이월화(鯨角丹楓老 勝於二月花)-경각산 짙은 단풍빛은 이월 꽃보랄가 수줍겠어> 태봉(胎峰) 벗어나 고래산(경각산)을 찾아든다. 수백년씩 깎듯이 하늘을 이고 산다는 아람드리 괴목들을 데불고 오두막에 빗댈만한 거창한 거북들은 땅을 누구럭거리며 금방 기어갈 듯 천고로 엎드려 있다. 과연 구이동(龜耳洞)이란 이름을 낳은 진원답다.
나그네는 고래산과 거북돌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다 임당수(臨塘水) 용궁 길 산호림 속에 두루루 미끄러져 두 팔은 지느러미로 물창치는 한 마리 물고기로 태어난 착각을 느끼는 웅심(雄深)한 유경 다웁다. 고대산은 봄 여름도 뛰어난 경관(景觀)이지만 아무래도 깊은 가을 단풍 속이 도연(陶然)하다. 산의 중턱 정각사(正覺寺)는 성난 고래를 달래는가 달빛 싣고 뚝뚝 지는 낙엽마다 달빛 괴어 법당 도량은 더욱 푸르다.
고대산 허구리 너부장한 언덕바지는 열무밭의 명소로 알려진 효간재(孝澗峙)다. 그리고 꼬리 쪽 고달산의 잡을 듯 놓친 천고의 허구리(空洞)는 용녀(龍女)가 부치는 파초선 바람이 솟는 부성의 만수대(萬壽臺)라 했다. 이곳 육각정(六角亭)에 올라 내다보면 한창 여름인데도 가을이 지나가는 소식을 피부로 느낀다는 절경이다.
경각산 주변에는 태봉과 창암 이삼만의 묘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완주군 구이면 태실리(胎室里)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태봉(胎峰)은 조선조 예종(1469)의 태를 묻었던 데서 부른 것이 유래이다. 본래는 전주류씨(全州柳氏) 종산(宗山)이던 것을 나라에서 유연대(油然臺) 한쪽과 교환조로 얻어 예종의 태(胎)를 묻었다. 그 후 1935년 을해년에 와서 다시 류씨 문중으로 환원됐다.
한편 조선시대 왕가의 태반(胎盤)을 항아리 속에 넣어 묘를 썼고 그 묘를 썼던 산을 모두 태봉(胎峰)이라 불렀다. 지금도 왕가의 태반을 묻은 태실은 명산에 남아 있다. 경북 성주의 누진산(樓鎭山)에는 세조의 태실을 비롯 광평대군 등 13위가 있으며, 경남 의령군 칠곡면 외조리에는 중종 태실이 있다. 태항아리는 태반을 담은 백자내합(白磁內盒)과 그 내합을 다시 넣는 백자외합(白磁外盒) 등을 가리킨다. 이것을 화강석합(花崗石盒)에 넣어 묻었다. 중종의 태항아리 백자외합의 용적을 보면 높이 135cm에 둘레는 20cm이다.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하척리)에는 명필 창암 이삼만의 유택지(幽宅地)가 있다. 풍한서습에 이끼 젖은 빗돌에 <명필창암완산이공삼만지묘-名筆蒼岩完 山李公三晩之墓>라 새긴 글씨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필지(筆誌)다.
김정희가 1840년 제주도로 귀양갈 때 전주에 이르러 관찰사 이목연에게 부탁하여 객사에서 이삼만을 처음 만났다. 그 때 김정희가 이삼만의 글씨를 청해보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추사는 창암을 못잊어 따로 밝혀 놨다는 이런 필지(筆誌)가 있다. <공필법 관융동 노익신화 명파중국 제자수십인 일상 시습역 다천명우 세취계제자 위후 어의(公筆法冠戎東 老益神化 名播中國 弟子數十人 日常 侍習亦 多薦名于 世取季弟子 爲后 語義)-공의 글씨는 해동(조선)의 으뜸이요, 늙어감에 따라 더욱 완숙함이 신묘하여 그 이름은 중국에까지 떨쳤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제자 중 세상에 그 이름을 나타낸 자가 많았다. 그런데 다만 후사(後嗣)를 이을 아들이 없어 아랫동생의 아들인 조카로서 후사를 이었더라> 추사의 이 필지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창암의 만년이 적적했음을 짐작하겠다.
경각산은 행정구역상 전북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임실군 신덕면 조월리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구이 저수지에서 상관 저수지 방향으로 단층선(斷層線)이 추정된다. 서쪽으로 모악산이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경각산이 자리잡고 있다.
경각산은 고래경(鯨), 뿔각(角)을 써서 고래 등에 난 뿔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전주 시계를 벗어나 구이면으로 들어서면 구이저수지 동북쪽에 솟아 있는 암산으로 모악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이 경각산이다. 지형도와 달리 산경표에는 경각산이 정각산으로 나와 있다. 서쪽 산허리에 있는 정각사에서 연유된 성싶다.
한 때 경각산에 귀신이 붙었다 하여 등산객의 발길이 뜸했다. 그러나 몇몇 호남정맥 종주팀과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동호인들 사이에 알려지며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경각산은 모악산의 명성에 가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호젓한 산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순창으로 뻗은 27번 국도를 따라 가다 구이 저수지 전에서 덕천리로 들어서야 한다.
경각산 정상에서는 북동으로 굽이치며 갈미봉으로 흐르는 능선과 구이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에 불쑥 솟은 것이 모악산이며 멀리 북동쪽으로 만덕산이 모습을 보인다. 경각산은 서쪽 광곡 마을에서 바라보면 모악산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고래 모습이다. 정상의 바위 두 개가 마치 고래 등에 솟아난 뿔의 형상이다. 모악산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의 쉰길바위, 또는 고어(古語)로 엄뫼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을 연상케 하는 모성적인 산이다.
반면 경각산은 머리에 뿔이 난 동물의 수컷, 또는 해중대어(海中大魚)로 강인한 남성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구이저수지와 풍요로운 들녘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는 경각산을 아버지 산, 모악산은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경각산(鯨角山)이 풍요로운 들녘을 감싸 안은 아버지 산이라면 모악산은 인자한 어머니 산인 셈이다.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 주화산에서 호남정맥을 이루며 남으로 곰티, 만덕산, 슬티, 갈미봉를 지나 옥녀봉 부근에서 북쪽으로 고덕산 줄기를 살며시 내려놓고, 고도를 올리다가 경각산에 닿는다. 물줄기는 산 서쪽으로 구이저수지와 삼천을 통하여 만경강을 이루다가 서해에 몸을 섞고, 동쪽으로 옥정호를 통하여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로 흘러든다.
경각산은 낮은 산이지만 불재에서 오르는 울창한 송림과 구이저수지를 휘돌아가는 능선 코스, 정각사에서 오르는 암벽 코스,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하산 코스 등이 백미다. 동적골 삼거리에서 749번 지방도에 접어들어 신덕 방향으로 15분쯤 달리면 경각산 정각사(正覺寺) 입구다.
정각사(正覺寺)는 한자로 바를 정(正), 깨달을 각(覺)을 써서 올바르게 깨달음을 얻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정각사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임실군 신덕면 조월리의 경계지역에 있다. 정각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뒤 서산대사가 중창했고 후백제 견훤이 전주에 도읍지를 정하고 천도(遷都)와 국가 번영을 위하여 기도한 곳이다. 250여 년 전에 학암선사가 중창하였고, 극락보전, 요사체, 삼선각의 중창과 범종각, 일주 1.2문은 오벽송당(혜운)스님이 창건했다.
옥녀봉을 향해 미끄러운 내림막을 가노라면 평평한 능선길에 접어들게 되고, 어느덧 효관치에 이른다. 효관치는 옛날 효관마을에서 임실군 신덕면 조월리로 넘나들었던 고갯길로 지금은 호남정맥 종주객들의 휴식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동쪽의 쑥재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쑥재부터는 조림이 잘돼 있는 임도를 30여분 걸으면 죽림온천과 송산온천이 있다.
/수석 논설위원